수필가 구활의 풍류론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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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3-22   |  발행일 2013-03-22 제35면   |  수정 2013-03-22
“풍류의 세 요소는 詩·酒·色
그 배경은 바람 부는 정자와
달 밝은 강, 물 흐르는 계곡”
수필가 구활의 풍류론

현재 대구에서 가장 풍류스럽게 살아가는 문인은 누굴까.

다들 수필가 구활(71)을 거론한다. 폼나는 자리를 싫어한다. 맹목적으로 사람 몰고다니는 것도 싫어한다. 기분 내키면 계절꽃 곁으로 달려가 펜화를 그리고, 영혼 맞는 이와 ‘철야주담(徹夜酒談)’을 피운다. 유머와 위트는 물론, 항상 중절모를 착용할 정도로 패션감각이 남다르다. 그러면서 올해 10권의 수필집을 펴냈다. 허물어지면서도 올곧다는 평.

그의 풍류는 2000년 작고한 국내 민속계의 대표적 풍류가였던 에밀레박물관 조자용 관장을 만나면서 작렬된다. 80년대초부터 매년 10월2일에는 속리산 자락, 조자용의 집으로 달려갔다. 80년대 최고의 풍류카니발이었던 국중제(國中祭·개천절 전야제)에 지역 대표로 참가했다.

당시 무당 김금화, 사물놀이의 창시자인 김덕수 등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풍류패가 다 모였다. 그 무렵 천하의 호인인 구상 시인과 걸레스님 중광과도 호흡을 맞춘다. 그는 아호는 없고 그냥 ‘팔할이 바람’을 아호로 삼는다. 최근 그가 ‘풍류의 샅바’란 수필집을 냈다. 거기서 그의 풍류론을 발췌했다.

◆ 구활의 풍류론

사전에 나와 있는 ‘풍류(風流)’라는 낱말만큼 멋스럽고 넉넉한 것이 또 있으랴. 사랑, 추억 등과 같은 단어들도 물론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지만 그 격이나 값은 풍류에는 미치지 못한다. 풍류는 ‘점잔’을 벗어나 ‘난봉’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속되지 않고 그렇다고 성스럽지도 않다. 그래서 ‘중용’이다.

‘풍류’는 가르침을 받아 배워지는 인문과학이나 자연과학 같은 당대에 이뤄지는 학문이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피의 소리’이기도 하고 ‘끼의 맥박’이기도 하고 나아가 ‘기질의 숨결’이기도 하다. 풍류의 매체는 술이다. 술 없이는 풍류를 논할 수가 없다.

풍류의 세 요소는 ‘시주색(詩酒色)’이다. 그 배경은 ‘풍월수(風月水)’이다. 풍류는 바람부는 정자, 달 밝은 강, 물이 흘러가는 계곡 등이 산실이다. 정조때 사람 임희지는 손바닥만한 집에 살았다. 그렇지만 두 채를 사고도 남을 옥으로 만든 붓걸이를 가질 정도로 검소한 가운데도 사치를 부릴 줄 알았다. 그는 마당 한구석에 작은 연못을 파고 쌀뜨물을 부어 물을 채웠다. 물빛 탁한 호수에는 달이 잘 빠지지 않는 법이지만 임희지는 거기서 달구경을 했다.

풍류에도 질서가 있고 도덕이 있다. 청빈과 낙천, 우애가 반드시 바탕이 되어야 한다. 부자가 풍류적 삶을 즐기지 못하란 법은 없다. 단, 조건이 있다. 우선 풍류는 사치스럽게 흐르지 않아야 한다. 사치는 언제나 방탕과 난잡을 불러오기 때문에 경계해야 된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儉而不陋),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아야 한다(華而不奢). 풍류는 여럿이 노는 데서 참 즐거움을 느낀다. 풍류도 어떻게 보면 ‘두레정신’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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