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에 산다…대구 最古 마라톤 동호회 ‘대구시청마라톤클럽’ 同走취재

  • 이춘호
  • |
  • 입력 2014-04-04   |  발행일 2014-04-04 제34면   |  수정 2014-04-04
20140404
대구시청마라톤클럽 월드컵경기장 지부 회원은 6년째 매주 토요일 오전 6시30분 운동장을 출발해 진밭골과 욱수골을 거쳐 성암산 초입으로 들어오는 하프 구간을 2시간 남짓 달리고 있다. 이들은 ‘달리면서 봉사한다’는 슬로건을 걸고 뛰면서 시민과 눈높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140404
대구시청마라톤클럽 월드컵경기장 지부 회원들이 운동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기록보다 재미가 우선

비가 내리는 데도 모두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다.

기자의 눈엔 이들이 조금은 실망스러워 보였다. 일단 정식 러닝셔츠와 팬츠 차림이 아니었다. 상당수가 일반 트레이닝 긴바지에 윈드재킷을 입었다. 배드민턴 동호회 회원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건 ‘오해’였다. 다들 내공이 출중했다. 100㎞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해 완주한 회원이 7명. 풀코스를 3시간 내에 완주하는 ‘서브3(Sub-3)’의 기록 회원도 이창호, 김석용 등 4명. 풀코스 50회 완주 회원 1명 등 12명의 자체 명인까지 배출했다. 이들은 한 해 평균 15~20회 각종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다.

“초창기엔 무조건 빠르게만 질주했죠. 젊어서 그런지 다들 남보다 더 좋은 기록을 갖고 싶어했죠. 하지만 여건상 아무리 잘해도 프로급으로 상승할 순 없죠. 자기 수준을 알고 나서야 제 분수도 알았죠.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대회를 기점으로 우리도 기록경쟁에서 벗어나 ‘즐마(즐기는 마라톤)’ 버전으로 선회했습니다. 비로소 마라톤이 뭔가 좀 알겠더라고요.”

기념촬영 후 오전 7시15분쯤 골인지점을 향해 달렸다.

달리기에 ‘잼병’인 기자도 동참한다는 의미로 좀 뛰어봤다. 800여m를 지나자 코에서 쇳가루 냄새가 났다. 나는 1㎞도 못 달리는데 저들은 어떻게 42.195㎞를 달릴 수 있지?

회원들은 20여분 달려 삼덕동 요금소 근처 농로로 접어든 뒤 10분간 스트레칭을 한다. 이들은 이상하게도 출발선에서 다이내믹하게 준비운동을 하지 않는다. 몸이 충분히 예열된 뒤 본격적으로 관절과 근육을 길들여준다.

수성구 범물동 진밭골 정상부로 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 다리가 잘 올라가지 않을 정도다. 그래도 절대 멈추지 않는다.

“저희의 목표는 빠르게가 아니고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진다.

되레 갓 피어난 개나리·벚·진달래꽃 향기가 이들의 다리를 더욱 향기롭게 문질러준다. 이 맛을 누가 알리요?

약 18㎞를 달렸다. 2시간여 만에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왔다.

100㎞ 울트라회원만 7명
한 해 20회 각종대회 출전
폐암 투병 김영규 회원
마라톤으로 건강 회복
“등산 가면 하루가 깨지죠?
우린 2시간 뛰고 남은 시간
가족과 나들이도 가지요”


◆토달의 마침표는 쇠고기국밥 한 그릇

근처 모 쇠고기국밥집에서 이들을 다시 만났다.

이날 아주 뜻깊은 회원이 참석했다. 폐암 투병 중인 김영규씨(54)였다. 2001년 2월 마라톤에 입문한 그는 골수 마라톤맨이다. 대구육상선수권대회 사무국에서도 일을 했고 축구, 테니스, 검도 등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스포츠맨 시청공무원. 2003년부터 3년간 총무였던 그는 ‘토달’ 프로그램까지 마련했다.

체력만은 자신있다고 믿었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쳤다. 2009년 폐암선고를 받은 것. 하지만 2010년 항암치료 중 목숨을 건 레이스를 한다.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춘천 조선일보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풀코스를 4시간40분에 달렸다.

“제 몸은 암한테 지고 있는데 제 정신은 암을 극복하고 있었습니다. 6번 항암치료를 무사히 넘겼고 건강도 많이 회복했어요. 마라톤이 날 살렸던 거죠.”

초창기엔 기록에 너무 치중해 비슷한 기록대의 회원을 이기기 위해 몰래 레슨을 받기도 했다. 어떤 회원은 자기보다 몇 수 위인 여성 마라토너를 무턱대고 추월하려다가 실신해 병원으로 후송되기도 했다. 마라톤 때문에 아내와 불화를 일으킨 회원을 위해 화해프로그램도 만들어 주었다. 토달 시간도 일부러 이른 아침으로 잡았다. 그래야 오후 일정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회는 한 번 나서면 하루가 다 깨지죠. 그런데 우린 아침 일찍 2시간 정도 뛰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 오후에 애경사는 물론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할 수 있습니다.”

모두 태연한 척 해도 마라톤과 관련 나름 아픈 기억 한두 가지 없는 회원은 없다.

이 지부장은 2년째 35㎞ 징크스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작년 대구국제마라톤 대회는 물론 재작년 대회에서도 연거푸 35㎞ 근처에서만 쥐가 나서 중도에 하차했습니다.”

박학정씨(의료산업과)는 작년 대구국제마라톤대회에서 다른 주자가 특정 시간대에 들어올 수 있게 도와주는 ‘페이스메이커’를 자청했다. 이준탁씨(상수도사업본부)는 너무 힘들어 다시는 안 뛰겠다고 다짐해놓고는 여전히 대회에 출전하고 있어 마라톤 중독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케 해준다. 정권규씨는 2002년 전국에서 가장 힘겨운 대회로 악명이 높은 포항 호미곶 마라톤대회에서의 일을 잊지 못한다. 진눈깨비에 돌풍까지 부는 영하의 날씨에 밀려 결국 5시간40분 만에 꼴찌로 들어왔다.

이 지부장(기계장치과)과 정권규씨(체육시설관리사업소)는 한 해 50여회 출전할 정도의 극성파. 이날 참석자 중 이 지부장은 풀코스를 3시간10분대, 황병홍(중구청 건축과)은 3시간15분대, 이수동 대시마 회장(관광문화과장)은 3시간30분대. 안 뛰어 본 사람은 마라톤선수의 기록인 2시간 초반대를 운운하며 과소평가할지 모르지만 아마추어로서는 고수급 기록이다.

“하나 알아야 될 게 있습니다. 보통 풀코스 마라톤대회를 하면 5시간대까지는 기록을 체크해 줍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들어오면 기록을 인정 못 받습니다. 8시간 이후에는 결승점 관계자까지 철수합니다. 일반인에게 5시간 안에 들어오는 게 꿈이죠.”

2002년 대구유니버시아드 직후 마라톤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폭증됐다. 이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로 인해 마라톤붐이 절정에 이른다.

대시마는 동아·조선일보 마라톤대회 못지않게 매년 이 무렵 개최되는 대구국제마라톤대회에 더 관심을 갖는다. 개인 기록보다도 시정홍보에 중점을 둔 탓이다. 올해도 오는 8일 109명의 회원이 제1팀 풀코스 36명, 제2팀 10㎞ 35명, 제3팀 10㎞ 38명 등 3개팀으로 나눠 ‘국제육상도시-대구’ 문구가 적힌 홍보 유니폼을 착용하고 달릴 계획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