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주권 지킬 수 있나···수입 농산물 대대적 공세, 우리의 논밭은 초토화 위기

  • 노진실,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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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22 07:23  |  수정 2014-11-22 08:19  |  발행일 2014-11-22 제2면
[y스페셜] FTA의 불편한 진실, 울고있는 농업
20141122
한·중FTA가 전격 타결된 가운데 경산농민회원들이 지난 10일 경산시 중방동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서 ‘쌀 전면 개방 저지, 나락값 보장’ 등을 촉구하며 나락을 적재하고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농민들의 울분

농사 지어본 사람이 대책 만들었는지 의문···농촌을 버리나요

“정녕 농촌을 버리란 말입니까?”

한·중FTA 타결 이후 만난 경북지역 농민들은 하나같이 “희망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영양에서 20여년간 고추농사를 지은 남호길씨(60)는 “한·중FTA 발효 후 중국산 김치가 대량으로 들어오면, 국내산 김치공장이 점점 사라지고, 그 여파로 영양 고추농가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고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지금도 국내에서 중국산 고추 판매량이 국내산 고추 판매량을 넘어섰는데, FTA 이후에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는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영양에서 고추농사를 지었지만, 더 이상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것은 장담할 수 없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농사도 어느 정도 수지가 맞고, 돈이 돼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죠. 지금 1만6천㎡(약 5천평) 고추농사를 짓고 있는데, 내년부터 농사 면적을 줄여야 할지 고민입니다.”

남씨는 정부에서 내놓은 FTA 대책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 농사를 지어본 사람이 대책을 만들었는지 의문입니다. 6차 산업에 승부를 걸 여력이 있는 농민이 몇이나 될까요. 좀 더 현실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합니다.”

의성에서 마늘농사를 짓는 윤문석씨(48)도 절망감을 토로했다.

“지금도 보따리상이 중국에서 들여오는 마늘 양이 만만치 않습니다. 의성 인근의 식당도 질 좋은 의성 한지마늘보다 절반 이하 싼 중국산 마늘과 김치를 쓰는 형편이죠. 마늘이 한·중FTA 개방에서 제외됐지만, 김치나 다대기 형태로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올 겁니다. 마을에는 연세 많은 어르신밖에 안 남았고, 정말 희망이 없습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최근 기자가 취재를 위해 방문한 프랑스의 국민은 자국 농산물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았다.

프랑스 주부는 가격이 싸고, 크기도 더 큰 스페인산 딸기 대신 가격은 비싸더라도 프랑스에서 재배된 딸기를 고집했다. 또 유기농 바람이 불면서, 가급적 주거지와 가까운 농장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구입한다. 그런 프랑스에서도 이달 초 농민들이 ‘수입 농산물 때문에 못살겠다’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자국민이 의식적으로 국산 농산물을 소비한다 해도, 수입품의 물량공세를 당해내긴 어려웠던 것.

우리는 어떨까? 단가 문제로 식당 등지에선 이미 값싼 중국산 김치와 수입 농산물을 쓰고 있다. 중국, 뉴질랜드 등지와의 FTA가 발효되면, 수입 농산물 의존도는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농민들의 피해와 함께 우려되는 것이 식량주권의 문제다.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FTA에 따른 농민피해를 최소화하는 작업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FTA의 ‘불편한 진실’을 알아본다.


국민 입맛도 길들여져 가
수입품 의존 갈수록 커져
농민 생존방안 마련 시급


◆ 신선 농산물 지켰다지만…

정부는 이번 한·중FTA 협상에서 농업을 최대한 보호했다는 입장이다. 우려가 컸던 쌀을 비롯해 주요 농축수산물(고추, 마늘, 양파, 사과, 감귤, 배, 조기, 갈치, 쇠고기, 돼지고기 등) 대부분을 양허대상에서 제외해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민감한 농축수산물 548품목을 양허 제외시켰다고 해도, 이들 농축수산물이 가공한 형태로 국내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다.

고추와 마늘, 양파는 양허 대상에서 제외돼 개방의무가 없지만, 김치는 관세율이 낮아지며 중국산 수입이 더 늘어나게 됐다. 현재 국내산 마늘, 고추, 양파를 가장 대량으로 소비하는 곳이 바로 국내 김치공장이다. 국내산 김치의 수요가 줄어들면 마늘, 고추, 양파 수요도 줄어드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사과, 감귤, 딸기, 복숭아 등 국내 주요 생산·품목과 가공품인 사과, 감귤, 딸기, 복숭아 주스는 양허에서 제외됐지만, 또다른 가공품인 잼과 젤리 등은 단계적으로 관세가 감축돼 수입된다.

포도는 양허제외 품목에 이름을 올렸지만, 포도로 만드는 포도주는 FTA 발효 10년 후 관세가 철폐된다. 사과주는 15년 뒤 관세 철폐된다. 돼지고기는 양허제외됐지만, 돼지고기가 주원료인 소시지는 관세 철폐 품목이다.

이 밖에도 지금까지 이른바 ‘보따리상’에 의해 음성적으로 거래되던 참깨가 FTA 발효 후에는 TRQ(저율관세할당, 정부가 허용한 일정 물량에 대해서만 저율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높은 관세를 매기는 것) 협약에 따라 일정 부분 양성적 거래가 가능해졌다.

경북의 한 농민은 “소비자들 입장에선 FTA로 인해 농식품의 종류가 더 늘어나는 것뿐이지만, 농민 입장에선 생업을 포기해야 한다. 잇단 FTA 체결로 인해 국내 농민은 설자리가 없게 됐다”고 토로했다.


◆ 수입 농산물 식탁 점령은 시간 문제

지난 20일 대구 A대형마트의 식품매장. 채소와 과일 등 신선 농산물과 쌀은 아직까지 국내산을 많이 팔고 있었다. 하지만 가공식품은 사정이 달랐다. A마트에서 파는 10여가지의 병 참기름과 들기름 중 재료가 국산인 것은 단 한 종류 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모두 중국 등지에서 수입된 참깨와 들깨를 원료로 하고 있었다. 당면도 중국 혹은 수입품이 대부분이었다.

대표적 기호식품인 라면에는 호주와 뉴질랜드산 쇠고기가 첨가돼 있었고, 전통식품인 쌀떡의 원료도 중국·수입품이었다. 쇠고기 코너에는 한우와 호주산 쇠고기가 같은 비중으로 나란히 판매되고 있었다.

이처럼 중국·수입 식품은 이미 가공식품 형태로 우리 식탁 깊숙이 침투해 있다.

FTA 발효로 빗장이 풀리게 되면 이들 수입 농축수산물과 농식품의 유통방식은 음지에서 양지로, 관세율은 고율에서 저율 혹은 관세철폐로 바뀌게 된다.

지난해 타결돼 발효를 앞두고 있는 한·호주FTA 협약에 따르면, 현재 40%의 관세가 붙은 호주산 쇠고기가 FTA 발효 후엔 매년 2~3%씩 단계적으로 낮춰져 15년차에는 완전 철폐된다. 2030년쯤엔 무관세로 호주산 쇠고기가 수입되는 것이다.

문제는 FTA 발효 전부터 국민의 입맛이 서서히 호주산 쇠고기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

국내 유명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판매되는 스테이크는 부위와 상관없이 대부분 호주산이다. 쇠고기 관세가 철폐되는 2030년쯤엔 어릴 때부터 수입 쇠고기맛에 길들여진 국민이 아무런 거부감없이 값싼 수입 쇠고기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 지자체·유관 기관, “농업을 보호하라”

정부는 한·중FTA가 농업인의 반대로 국회 비준동의를 받지 못할까봐 조마조마한 모습이다. 정부 산하이거나, 정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농업 유관기관은 FTA 발효 이후 국내 농업의 미래를 저마다 전망하고 있지만, 지나치게 긍정적이거나 추상적이다. 이 때문에 한·중FTA 타결 이후 정부와 농민 사이 불신과 불만이 점점 더 쌓여가고 있다.

이 와중에 농촌이 많은 지자체는 FTA 에 대응해 농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섰다.

지난달 대구경북연구원과 농어업인,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한·중 FTA대책팀을 발족한 경북도는 지난 20일 한·중FTA 대응을 위한 ‘경북 농식품 수출업체 및 유관기관 협력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 참석자들은 동시다발적 개방화와 국내외 농업여건 변화에 대응한 농식품 수출 확대 전략을 모색하고, 경북 농식품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회의의 결론은 지역 농민을 위해 경북도와 농업 유관기관, 농식품 수출업체가 똘똘 뭉쳐야 한다는 것.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대구경북지역본부는 세계 각국의 해외지사를 활용해 해외시장 정보공유, 신규시장 개척에 협력하기로 했다. 농협 경북지역본부와 대구경북능금농협은 농업인들의 수출 참여 확대를 도모, 규모화된 수출물량 확보를 통해 수출기반 구축에 역량을 쏟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경북통상<주>은 경북의 대표 전문 무역상사로서 선두에 서서 경북 농식품이 세계로 진출하는 데 교두보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경북도는 경북 농업 100년을 책임질 젊은 인재 양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정책적 지원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경북도는 조만간 연구기관을 통해 한·중FTA에 따른 피해액을 재추산해, 대책에 반영할 계획이다.

농업 전문가는 농업의 무한경쟁시대에 대비한 영농기술과 방식으로 농민의 적응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장희 경북도농업기술원장은 “생산단가를 낮추는 생력화 기술보급, 품질로서 경쟁할 수 있는 고품질 농산물 생산과 생산 이력 추적이 가능한 족보있는 농산물 생산, 건강과 안전에 중점을 둔 가공품 연구에 중점을 두고, 농민들이 수출을 목표로 계획적인 영농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 한·중FTA 우리 측 농산물 주요 양허 결과
양허 유형 주요 품목
(관세)즉시 철폐 소(번식용), 오리(번식용), 돼지(번식용), 대두(종자), 양배추(종자), 무(종자), 겨자씨 등
5년 철폐 해바라기씨유, 식혜, 사탕무, 스파게티, 양조식초, 라면 등
10년 철폐 꼬냑, 흰포도주, 붉은 포도주, 베이커리 제품, 쿠키 및 크래커, 소나무(분재용), 마요네즈, 아몬드 등
15년 철폐 해바라기씨유, 사과주, 바나나, 토마토 페이스트, 소시지, 팝콘(조제 저장처리) 등
20년 철폐(11년차부터 감축) 과실·견과, 기타 과실(잼, 젤리 기타) 등
20년 철폐(20년 선형 철폐) 도라지(신선/냉장), 소주, 맥주, 인삼음료, 춘장 등
TRQ(저율관세할당) 참깨, 팥, 대두, 사료용 식물성 부산물, 고구마 전분 등
부분감축(평균 20% 부분감축) 김치, 혼합 조미료, 당면, 고사리(건조), 들깨, 송이버섯(냉동), 채소(조제 저장처리) 등
양허제외 쌀, 보리, 팝콘용 옥수수, 감자, 쇠고기(신선, 냉장, 냉동, 식용설육), 돼지고기(냉동·냉장 삼겹살, 냉장 기타), 닭고기, 치즈, 버터, 감귤류, 사과, 배, 포도, 키위, 호박, 고추, 마늘, 양파 등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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