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기미 자동차 판매전략 ‘휘청’…금융·외환 단기 충격 불가피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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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07 07:42  |  수정 2015-07-07 07:43  |  발행일 2015-07-07 제8면
‘그리스 사태’ 한국경제 빨간불
20150707

그리스 국민들이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5일(현지시각) 실시된 국제 채권단의 긴축 제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결과 ‘반대’ 61.3%, ‘찬성’ 38.7%로 반대 의견이 22.6%포인트나 많았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6일 “국민투표 반대가 유럽과의 결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고 안전자산으로 간주되는 미국과 독일 국채 가격이 오르는 등 그렉시트에 대한 시장 불안감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내의 경우 유럽 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동차와 조선·해운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 자동차, 조선·해운업계 비상

우선 자동차업계에서는 그리스발 재정 불안이 유럽 전체 경기 위축으로 번질 경우에 대비해 결제통화 다변화, 다양한 환헤지 등의 대처방안을 강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엔저로 일본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스 사태는 자동차 수출에 분명한 악재”라며 “회복 기미를 보이던 유럽 자동차시장이 이번 사태로 다시 침체 국면에 빠지게 되면 유럽 판매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유럽 전체로 경기위축 번질 땐
車·조선·해운 투자수요 감소

유럽銀 국내 투자자금 회수 대비
정부, 그렉시트 비상플랜 검토

KDI “우리경제 영향 제한적
유로존 완만한 경기 회복세”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5월 대(對)유럽 전역의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동월 대비 1.4% 증가한 115만2천대, 1~5월 판매는 6.7% 증가한 600만대로 조사됐다. 유럽의 경기가 회복되면서 소비심리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기아차는 하반기에 신형 투싼과 신형 스포티지 등 SUV 중심으로 신차를 출시해 매출 증대에 나선다는 전략을 마련해 놓았지만, 그리스발 사태가 그렉시트 등 최악의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국내 조선·해운업계도 이번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리스는 안젤리코시스 그룹 등 세계적인 선주들이 포진한 나라로 조선업계 핵심 고객 중 하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그리스가 주로 발주하는 액화천연가스(LNG)선이나 유조선, 컨테이너선 등 상선 건조 비용은 대부분 정부의 지분 참여 없이 개별 회사나 각국 투자자들이 보유한 자금으로 마련된다”면서 “따라서 그리스 정부가 디폴트 위기에 빠지더라도 그리스 회사들의 선박 발주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리스발 금융위기가 유럽 전역으로 번진다면 전반적인 투자 수요가 감소하면서 궁극적으로 선박 발주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운업계 역시 그리스 디폴트 여파가 유럽 전역으로 퍼질 경우 물동량이 줄어 운임이 하락해 수익이 악화될 수 있다.

◆ 정부 긴급회의 열고 비상계획 수립

이 때문에 당초 그리스 국민투표가 구제금융 협상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론날 것으로 내다봤던 정부도 대책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주형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 주재로 6일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이 참여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가 우리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점검하는 한편, 그렉시트 등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비상계획(컨틴전시 플랜) 수립에 나섰다.

기재부 관계자는 “그렉시트 우려가 높아짐에 따라 주식·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비해 컨틴전시 플랜을 짜고 있다”면서 “금융·외환시장이 단기적으로 출렁일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필요한 조치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격상된 대응 태세를 갖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날 회의 후 내놓은 자료에서 “그리스 문제는 유로존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관계도 얽혀있어 시장 예상과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며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글로벌 금융시장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향후 상황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국민투표 이후 그리스가 혼돈 상태로 빠져들면 그리스 은행에 돈을 빌려준 프랑스, 독일 은행들이 한국에 투자한 자금을 빼내 갈 가능성이 있으므로 대비 체계를 한층 격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또 그리스 국민투표의 후폭풍이 앞으로 글로벌 금융시장과 주변국 실물 경제에 미칠 모든 가능성을 따져보면서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유럽중앙은행(ECB)이 그리스은행에 긴급 유동성지원(ELA) 한도를 증액할지, 독일·프랑스 등 주요 채권단의 입장이 변화할지에 대해서도 모니터링을 강화하기로 했다.

◆ 그리스 충격 제한적 전망도

그러나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날 발표한 ‘7월 경제동향’에서 “유로존의 완만한 경기회복세가 유지되는 한 그리스 사태가 우리나라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유로존에서 그리스가 차지하는 경제 비중이 낮은 데다 그리스 관련 불확실성은 국제금융시장에 이미 반영돼 있어 유로존 경기가 빠르게 위축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리스에 대한 우리나라의 총 익스포저(손실 위험에 노출된 금액)가 크지 않고 글로벌 유동성이 충분한 상황이어서 유로존 은행들이 국내에 투자한 자금을 급격하게 회수할 가능성은 적다”면서도 “다만 그리스 관련 사태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대외 불확실성은 당분간 높은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그리스 사태로 높아진 대외 불확실성은 국내 금융시장에 즉각 반영됐다. 지난 주말 2,100상단에 안착했던 코스피가 하루 만에 2,050선으로 밀려나며 3년여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6일 증시에서 코스피는 전주말 대비 50.48포인트(2.4%) 내린 2,053.93으로 마감했다. 전일종가 대비 현재 낙폭은 2012년 6월4일(-51.38포인트) 이후 3년1개월 만에 가장 큰 수준이다.

직접적인 원인은 그리스 국민투표 이후 외국인이 대거 매도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이날 2천875억원, 기관은 2천173억원을 매도했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도 대부분 내렸다.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3.00% 내렸고 SK하이닉스, 아모레퍼시픽, 제일모직, 삼성생명 등이 3~4%대 낙폭을 보였다. 업종별로는 모든 업종이 하락했다.

김범준 삼성증권 포트폴리오 전략팀 차장은 “현재의 불확실성 리스크를 피하고자 하는 심리에서 비롯된 일시적 현상”이라며 “그리스 리스크는 오래전부터 예견돼 온 만큼 유럽 전역으로 위기가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김 차장은 “7일 독일과 프랑스 정상이 요청한 유로존 긴급 정상회의의 결과를 기다려봐야 그리스 사태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좀 더 명확해질 듯하다”고 덧붙였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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