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 최저임금으로는 주당 66시간 꼬박 일해야 빈곤서 겨우 벗어나

  • 이은경
  • |
  • 입력 2015-07-09 07:37  |  수정 2015-07-09 09:58  |  발행일 2015-07-09 제5면
(2014년 기준 시급 5천210원)
'저녁이 없는 삶'…강요받는 연장 근로
20150709

# 1
2013년 10월5일. 구미산단에서 주 68시간 넘게 일하던 파견사원 유성우씨가 사망했다. 대학 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학비도 벌고 사회생활을 경험해보겠다며 공장으로 떠난 지 3개월 만이다. 휴대폰트리밍 파트에 배치되어 일하던 유씨는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일했다. 주간에서 야간으로 교체될 때는 20시간, 야간에서 주간으로 교대될 때는 16시간씩 근무했다. 휴게시간은 하루 4차례 10분씩, 식사시간은 30분이었다. 8월에는 하루를 쉬었고 추석 연휴에는 휴일 특근을 했다. 시급 4천860원, 250여만원의 월급과 바꾼 목숨이었다.

# 2
박형진씨(가명)는 취업 관문을 뚫고 지난해 대기업에 입사했다. 박씨는 매일 오전 8시에 출근해 밤 8시에 퇴근한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일이 밀려 밤 10시에 퇴근한다. 주말에도 잔무가 있어 출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주말 근무를 제외하더라도 주당 근무시간은 64시간을 넘는다. 근로기준법상 법정근로시간인 40시간을 초과하는 24시간에 대해서는 연장근로수당을 받아야 하지만 박씨는 포괄임금제로 계약해 야근을 하더라도 수당을 받지 못한다. 주 단위의 법정 노동시간은 연봉이라는 말 앞에 무력하다.


실제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휴일’한도 채워야 풀칠

우리나라 근로자 8명 중 1명꼴
최저임금 안돼…2년 새 57만 ↑
“장시간 노동 줄여 일자리 나눔”
대선 공약이 무색해지는 형국

성서産團 30% 60여시간 노동
저임금 정책선 시간감축 불가

올들어 정부가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한 각종 제도개선에 나서면서 노동 시간 이슈가 주요한 사회적 의제로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산업현장에서 장시간 노동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사회적 공론화는 어려웠다. 장시간 노동과 관련된 근로자의 건강, 일과 가정의 양립, 일자리 창출, 정년연장 등의 문제에 둔감했기 때문이다.

주 40시간제(5일제)는 2011년 7월부터 모든 규모의 사업체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로 주 40시간제의 적용을 받고 있는 근로자수는 전체 근로자의 53.9%에 불과하다. 10인 미만 사업체 근로자 적용률은 24.6%에 불과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국가별 연간 노동시간에서 최상위권에 속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취업자의 주당 근로시간은 43.1시간이었다. 연간으로 따지면 2천163시간으로, 멕시코에 이어 2위다. 평균 1천770시간은커녕 2천시간의 벽을 허무는 것도 지금으로선 기대하기 어렵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에서도 연장근로가 12시간 이상이면서 휴일에 일하는 근로자 비율은 12.6%에 이른다. 주 12시간 연장근로에 휴일 근로를 포함하지 않는 경우 최장 주당 68시간을 일하는 셈이다. 휴일근로 일수는 월 평균 3.8일, 휴일근로 시간은 주당 평균 7시간에 이른다. 장시간 노동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겠다는 박근혜정부의 대선공약이 무색한 형국이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장시간 근로는 제도와 직장 생활의 잘못된 관행 등의 원인과 더불어 저임금과의 연관이 깊다.

통계청이 지난해 8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2014년 기준 시급 5천210원, 월 108만원)의 90~110%를 받는 근로자는 121만명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이 빈곤선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주당 66시간을 일해야 한다. 빈곤선은 중위소득(총 가구 중 소득 순으로 순위를 매긴 다음 정확히 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의 50%를 뜻한다. 현재의 최저임금 수준으로는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12시간)와 휴일근로(16시간) 한도를 모두 채워 일해야 겨우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셈이다.

이뿐 아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는 전체의 12.1%에 달했다. 전체 근로자 1천878만여명 가운데 227만명으로 8명에 1명꼴이다. 최저임금 미달률은 이명박정부 말인 2012년 9.6%였던 것이 2013년 11.4%로 뛰었고 지난해는 비중이 더 늘었다. 2년 만에 57만명이 늘어난 것.

성서산업단지 근로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6천515원. 일주일에 20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해야 월 150여만원을 받는다. 200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밤 늦게까지, 휴일에도 일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조사에서 10명 중 5명은 법정제한 근로시간 한도를 초과하고 있었고, 그 중 3명은 60시간을 넘는 초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었다.

장시간 근로관행의 근본 원인으로 노진철 경북대 교수(사회학과)는 “사용주와 근로자의 서로 다른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용주들은 임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장근로라는 카드를 사용하고 있고, 근로자들은 연장근로를 하지 않으면 생활 유지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비자발적 장시간 노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 이러한 상황이 ‘저녁이 없는 삶’과 ‘가족과 소외된 가장’을 만들고 있다.

노 교수는 “기존 저임금 정책 자체가 기업 즉 사용주를 위한 정책”이라고 지적하면서 “정부가 OECD에 가입하면서 장시간 연장 근로 문제가 계속 제기되니 근로시간 감축 정책을 현재 밀어붙이고 있지만 저임금 정책 기저에서 근로시간 감축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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