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한국어 공부 위해 파계사에 갔다…한달 동안 머무를 방 한칸을 빌렸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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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02   |  발행일 2015-10-02 제34면   |  수정 2015-10-02
(1900년 9월)
)■ 헨리 먼로 브루엔 선교사의 일기·편지‘한국생활 40년’완역
20151002
브루엔(왼쪽)이 대구정착 초기에 그의 요리사, 애완견(마크)과 함께 자신이 거주하던 초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궁이 앞 모여앉은
남녀 어린이는
그림처럼 아름다워

산골 마을 들렀다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호랑이를 사냥했다

◆브루엔, 대구에 정착하다(1899년 10월)

“20피트(6m) 높이의 대구읍성 성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이 나 있다. 적군이 쳐들어오면 수비대가 화살을 쏠 수 있는 구멍이다. 읍성 안에 위치한 우리 단지는 6피트(1.8m) 높이의 진흙담이 둘러져 있고 대문이 있다. 아담스 선교사 가족은 기와지붕으로 된 방 5개를 차지했고, 그 옆집에는 존슨 가족이 거처한다. 그 집은 진흙으로 된 벽과 초가, 그리고 방이 2개이며 부엌이 붙어있다. 여기선 밤에 이상한 소리가 많이 들린다. 무수히 많은 개들이 짖는 소리, 여성들이 다듬이질 하는 소리, 그리고 무당들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굿을 하는 소음은 끔찍하다. 한국인은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아 고양이 울음소리는 들을 수 없고 개들은 음식물 처리용으로 키운다.”


◆브루엔이 그의 애인 마사(부마테)에게 쓴 글(1899년 11월2일)

“내 방은 9X12피트 혹은 14피트 정도로 아늑하고 자그마하다오. 미닫이식 창문에, 벽은 한지로 도배가 돼 있소. 바닥은 기름칠한 장판이고 훌륭한 담요가 깔려 있소. 온돌방은 뜨겁소. 그 밑으로 불을 때는 구들이 깔려 있기 때문이오. (중략) 한국의 주막은 돌담 안에 마당이 있소. 그곳은 매우 분주했고 아궁이 앞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모여앉은 아이들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다웠소. 주막에 숙박비는 낼 필요가 없지만 말 먹이나 짐꾼에게 제공되는 음식값은 지불했소. 이 나라는 골짜기가 끊이지 않고 비옥한 논과 계단식 논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소. 들판에 있는 남녀 어린이는 모두 정말 아름다웠소. 나는 대구읍성 바깥 언덕 위(현 동산)에 있는 새로운 부지를 살피기 위해 성 밖으로 나갔소. 그곳에는 넓은 들판과 우물, 석양까지도 내려다볼 수 있다오. 사람들은 그 아래쪽에 살지만 그곳은 외딴 곳이라 공기가 맑고 자연스러운 비탈(청라언덕)이 있소. 그 아래쪽에 공터가 있어 그곳에 과수원과 정원을 만들 작정이오.”


◆브루엔의 한국어 공부(1899년 11월경)

“아담스 목사가 두 명의 한국인과 논의를 하더니 나의 이름을 ‘부해리’로 정했다. 한자로는 스승 부(傅), 바다 해(海), 얻을 리(利)였다. 나는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 한글 선생님 이내경에게서 한국의 알파벳인 언문을 배웠다. 한국의 알파벳(한글)은 얼마나 배우기 쉬운지 정말 놀랍고 기뻤다. 날이 저물 무렵 비록 뜻은 알 수 없었지만 드디어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됐다. 한글은 며칠만 공부하면 배울 수 있을 만큼 쉬웠지만 여성들조차 읽을 수 있다는 이유로 원로학자는 한글을 경멸했다. 1884년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연구해 실제 그런 알파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우수성을 증명하기까지 한글은 멸시당하고 문서로만 남아 있었다. 기독교 신앙이 널리 퍼지고 성장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한국인이 지식을 숭상한 덕분이다.”


◆설날을 맞이한 브루엔(1900년 1월31일)

“한국의 설날은 봄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모든 일을 멈췄다. 사람들은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조상께 제사를 지낸 후 서로 방문해 인사를 나누며 놀고 먹었다. 산책을 나섰는데 여자 아이의 옷차림은 머리부터 발 끝까지 형형색색이다. 하지만 남자 아이는 녹·청·적·분홍·자주·흑·흰색 상의를 입었다. 여자 아이가 6~15세가 되면 어떤 아이는 약혼을 했고 혹은 결혼을 했다. 시소놀이같이 널빤지를 놓고 양쪽에서 한 사람씩 차례로 공중으로 뛰는 놀이를 했다. 소년과 젊은 사내는 온종일 어른을 찾아 무릎을 꿇고 얼굴을 바닥에 맞대는 절을 했다.(브루엔은 이듬해 설도 대구에서 보냈다. 그때 쓴 일기에는 한국 아이들이 입은 색동옷이 뉴욕 5번가에서 볼 수 있는 부활절 꽃보다 화려하 다고 했다. 그는 또 구약성경에 야곱이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혔다는 기록을 언급하며 요셉이 한국인이고 요셉이 입었던 색동옷이 한국 가문의 문양이 됐다고 했다.)”


◆호랑이 사냥에 참여한 브루엔(1900년 초)

“두 번째 동학난이 진행됐고 폭동이 일어나 한 마을을 습격했다. 나는 그 지역에 다시 갈 수 없을 것 같아 요리사와 함께 짐을 질 조랑말을 데리고 걸어서 갔다. 중간에 산골 교회 지도자와 몇몇 교인이 동행했다. 한 곳에 들렀는데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를 사냥한다면서 매우 흥분해 있었다. 호랑이 사냥에 동참해 호랑이를 잡았다. 가죽을 벗겨낸 뒤 가죽을 구입했는데 주막집 주인에게 맡겼다. 하지만 전도를 하고 다시 주막집에 가니 주인이 ‘산적(동학당)을 잡으려고 군졸이 이곳에 들렀는데 그 중 한 명이 호랑이가죽을 가지고 가버렸다’고 했다. 후에 지방수비대에 찾아가 신고했더니 하루가 지나 군인 한 명이 호랑이가죽을 들고 집에 찾아왔다. 하지만 이빨과 발톱은 약으로 쓴다며 뽑힌 상태라 보기가 흉했다.”


◆파계사에 간 브루엔(1900년 9월)

“한국어 선생님과 함께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파계사에 갔다. 대구에서 13마일 떨어진 산 속 사찰이다. 주지스님은 숙박을 제공해 주겠다고 했지만 처음엔 마당에 텐트를 치고 캠핑을 했다. 다시 갔을 땐 한 달 동안 머무를 방 한 칸을 빌렸다. 오전에는 한국어를 공부했고 오후에는 마크(애완견)를 데리고 산(팔공산)을 돌아다녔다.”

글=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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