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때 전축 만들어…대금·가야금 등 국악기 일렉화에도 도전하고 싶다” ②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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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29   |  발행일 2016-01-29 제34면   |  수정 2016-01-29
■ 대구·경북 이색 악기의 선구자들
◆ 전기 악기 전문 제작자 대구 유재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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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에 비해 아코디언에 전기장치를 장착해 원음의 사운드를 발생하게 하는 건 음향공학적으로 까다로운 절차가 요구된다. 유재업씨가 직접 아코디언을 해체, 내부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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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스트라우스 전기바이올린 DVFE-505 모델은 일명 ‘유진 박 모델’로 불린다.

원음 가까운 소리 전기 해금 아랑이
대구시와 전국 공예품대전에서 특선

착수 2년만에 전기아코디언도 개발
세계 첫 아코디언 내부 마이크 장치
다양한 음질·사운드 일률적 흡수해

1997년 그가 대원악기에 입사할 당시 국내는 ‘일렉 악기’란 단어조차 생소했다. 제작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유진 박이 전기 바이올린으로 대박을 친 것이다.

하지만 클래식 애호가는 ‘고전악기에 웬 전기증폭장치’라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유진 박이 그걸 극복했다. 마침 유진 박과 양대 산맥을 이룬 싱가포르 출신 바네사 메이가 전기바이올린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대원은 OEM(주문자생산방식) 전기바이올린을 생산하고 있었다.

“통상 전기악기란 기존 악기의 브릿지에 픽업장치를 달아서 사용했는데 질적으로 결함이 많았다. 공연에도 영향을 주었고 회사에서도 그다지 수익이 되지 않았다.”

그는 기술개발부 부장으로 있으면서 경영진을 설득해 자체개발을 하자고 권유해 박종학 사장의 재가를 받아낸다. 그는 건축에는 나름 안목이 있었지만 전기전문가는 아니었다. 고교시절부터 전축을 자작할 정도였고 교류와 직류 등과 같은 전기공학에 대한 기본기는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일렉 악기 개발은 불가능했다.

강호의 고수한테 한수를 구걸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 파고다공원 옆 악기백화점인 낙원상가에 숨어 있는 전기회로 전문가를 찾아다녔다.

“전기악기와 전자악기를 일반인은 잘 구별하기 어렵다. 난 전기악기 전문가다. 일반 신시사이저 같은 전자악기는 센서 등을 이용해 기계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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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첼로는 뭔가 발파력있는 이미지를 전하기 위해 해머드릴같이 디자인했다.

로 만들어진 악기별 숱한 음원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전기악기는 원래 있는 악기에 흐르는 음의 전류를 채집해 자유자재로 증폭하는 게 차이점이다.”

전기만 갖고는 악기를 만들 수 없었다. 전자공학에 대한 기본 상식도 갖고 있어야만 했다. 수소문해서 당시 <주>서호의 박모 사장을 찾아간다. 당시 서호는 기타류부터 엠프까지 개발·생산하던 업체였다. 대원과 이 업체가 의기투합해 1년여 공을 들여 유진 박이 사용하게 될 스트라우스 전기바이올린을 국내 기술로 처음 개발하게 된다. 대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개발은 불가능했다. 유진 박에 이어 2002년 무렵 국내에 ‘클래식 탱고’의 돌풍을 몰고 온 ‘오리엔탱고’의 바이올린 주자 성경선씨에게도 전기바이올린을 기증했다. 자신의 존재를 국제무대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결국 유명 연주자만 더 유명해질 뿐이었다.

◆ 집안 우환 때문에 다시 대구로

전기 악기 개발로 들떠 있을 때 집안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막내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지역에서 베이스캠프를 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남구 대명동 경북예고 근처 파가니니 악기사 지사장이 된다.

그는 대구로 내려오기 전 DVFE-505 모델로 ‘남북 전자교향악단 창단’이란 거창한 프로젝트를 암암리에 진행 중이었다. 505 모델은 바이올린 좌우에 공명용 구멍인 ‘F홀’ 모양을 모티브로 디자인했는데 한반도 모양이었다. 통일을 상징하는 악기로 보였다. 그래서 이 모델을 북한에 은밀하게 기증하려고 했다. 남북합동의 꿈은 결국 자식 때문에 무산되고 만다.

꿈을 딛고 다시 대구에서 그만의 독자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전기해금 ‘아랑이’다.

당시 얼후(해금처럼 생긴 중국전통악기)란 악기로 12명의 중국 여성 연주자로 구성된‘12악방’이란 전문연주단체가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모 기획사에서 그걸 벤치마킹해 해금연주단을 만들겠다면서 그에게 전기해금 제작을 의뢰한다. 바이올린의 사운드와 농현 가득한 해금의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력이 요구됐다. 전기바이올린에 사용한 설계도를 다시 사용할 수 없었다. 악기마다 소리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전류화된 소리를 채집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전기국악기 개발은 그에게 엄청난 인내심과 새로운 안목을 키워줬다. 어렵사리 아랑이를 모두 13대 만들어 납품했다. 그렇지만 실전에서 사용해보니 다양한 결점이 발견된다. 그래서 같은 악기를 4번이나 제작한다. 처음에는 소리가 너무 날카로웠다. 음악이 아니고 ‘공해’였다. 7전8기 정신으로 밀어붙였다. 더 무르익고 원음에 가까운 부드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덕분에 아랑이는 2007년 제26회 대구시 공예품대전과 그해 중소기업청 주최 제37회 전국공예품 대전에서 특선으로 입상된다.

◆ 마지막 도전…일렉 아코디언

2013년 새로운 ‘화두’를 갖는다.

전기아코디언 개발에 착수한 것이다. 아코디언은 바이올린 개발에 비하면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일단 악기 특성상 소리군이 너무 많아서 이걸 한 가닥의 소리로 채집을 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클래식기타처럼 고성능 마이크를 앞에 대면 그만이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뭘 모르는 소리다. 그러면 연주자의 동선이 한 곳에 갇히게 된다. 아코디언은 베이스와 멜로디 파트가 악기 좌우에 붙어 있고 소리도 양 옆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앞에 마이크를 대도 베이스 부분이 항상 약하게 들리는 단점이 있었다.”

전기바이올린, 전기해금 제작 때는 진동 센서를 이용했는데 이 방식을 아코디언에 접목을 하니 진동 패턴이 너무 괴기스러웠다. 사운드가 최악이었다. 개발이 난관에 봉착했다. 5~6개 소리 섹션별로 다수의 센서를 부착해서 사운드를 흡수해봤는데 귀신소리가 났다. 고민을 하다가 진동센서를 포기했다. 대신 ‘핀마이크’로 전환을 하자고 결심한다. 핀마이크를 사용해보니 마이크 가까운 곳은 크고 먼쪽은 너무 약했다.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고민 끝에 다양한 각도와 다양한 음질의 사운드를 일률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난반사기법’을 이용했다.

개발에 착수한 지 2년 만에 세계 최초로 ‘단일 마이크를 이용해서 아코디언 내부에 마이크 장치’를 한 제품이 탄생된다. 지난해 4월10일이었다. 그가 개발한 특허기술은 모두 4가지.

첫째는 마이크 주변의 소리를 난반사시키는 기술이었다. 둘째는 베이스 부분을 멜로디 부분과 분리시키는 차음박스를 설치한 것. 셋째는 하울링(Howling) 발생을 차단하는 흡음기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마이크 주변에 바람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주변에 차풍기의 일종인 유니트를 설치한 것이다. 전기악기 개발사의 한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혼자 쾌재를 질러댔지만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원천기술은 그렇게 고독한 법이다.

물론 일본 롤랜드에서 만든 전자아코디언도 있다. 그런데 그 악기는 센서를 이용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사운드 구현이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그가 개발한 것은 마이크를 사용해 악기 본연의 사운드를 확보할 수 있게 했다. 또 다른 회사의 전기아코디언 역시 멜로디 부분에 마이크가 3개, 베이스 부분에 3개 정도를 장착해서 겨우 음 밸런스를 잡을 정도였다. 이 또한 뚜껑에 설치돼 외부 잡음이나 하울링에 아주 취약했다. 그런데 그는 센서가 아닌, 마이크도 여러 개가 아니라 단 하나만 내부에 설치했고 단일 마이크 하나로 다양한 음역대의 소리를 맘대로 채음할 수 있게 했다.

2014년 9월 아코디언 마이크장치 개발로 국내 특허를 취득한 데 이어 지난해 8월 PCT 국제 특허를 출원, 세계적 전기 악기 제작자로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악기만 개발했지 주머니는 더 홀쭉해졌다. 이를 대중화하고 사업화하는 게 더 난제였다.

최근 그의 기술력을 인정한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했다. 조만간 국가프로젝트로 지원받을 계획이다. 지난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열린 세계 최대 악기쇼인 2016 남쇼(NAMM SHOW)를 상대로 마케팅을 시작했다. 향후 대금, 가야금, 태평소 등 국악기 일렉화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의 마지막 꿈은 뭘까.

“우리는 현재 피타고라스 평균율 음계를 사용하는데 나는 유재업표 ‘코스모스 음계’를 만들고자 한다. 태양계는 8개의 행성이 있으니 부피와 질량을 이용하면 분명히 우주적 음계를 만들 수 있고 관련 악기 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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