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 소리 내는 피리 ‘가송삭스’ 이상한 이름만큼 놀랍다 ③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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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29   |  발행일 2016-01-29 제35면   |  수정 2016-01-29
■ 대구·경북 이색 악기의 선구자들
20160129
이호용 가송공방 대표는 대금제작자로 활동하다가 향피리에 색소폰을 결합한 것 같은 가송삭스를 개발했다.

‘가송삭스’. 경산시 진량읍 당곡리에서 대금 전문인 ‘가송공방’을 꾸려가는 이호용 가송국악원장(61)이 최근 출시한 색소폰과 향피리를 섞어놓은 것 같은 이색 관악기다. 꼭 반으로 잘라놓은 클라리넷 같이 생긴 이 악기는 국악기 같으면서도 색소폰 소리를 낸다. 피리만 하지만 실제 소리는 거의 색소폰 음량이라 듣는 이를 놀라게 한다. 연습공간 확보가 어려운 색소폰 동호인들이 휴대하기 쉽고 장소와 상관없이 향피리처럼 불 수 있어 색소폰 연주자 사이에 ‘새끼 색소폰’으로 입소문이 났다. 현재 이 악기는 상표·디자인 특허를 취득했다.

학창시절 캠퍼스 그룹사운드 활동도 했지만 결혼 이후 생업 때문에 음악의 꿈을 접은 이 원장. 그는 생활이 조금 안정된 마흔에 대금에 도전한다. 그는 대금 특유의 소리가 그 어떤 악기보다 매력적이었지만 한정된 음역과 200만원에 육박하는 비싼 악기값이 항상 불만이었다. 이게 대금 대중화를 방해한다고 믿었다. 그는 대금대중화를 위해 2005년 가송공방을 연다. 당시 대금 전문 제작자는 거의 유명 연주자였다. 그는 20여년 전부터 본격화된 쌍골죽(일반대의 변형종으로 여느 대나무보다 훨씬 야물고 좌우에 좁은 홈이 파여 있는 게 특징) 대금 시대와 함께한다. 쌍골죽 전문 채집꾼인 죽돌이를 통해 재료를 사들인 뒤 진을 빼고 불을 가해 굽은 걸 바로 펴서 최대 2년여의 자연건조과정을 통해 최적의 대금용 대나무를 장만했다. 연주자마다 자신이 사용하는 대금의 구조가 조금씩 달랐다. 전국 명인 대금의 차이점을 분석하고 그걸 토대로 표준화된 대금 제작 매뉴얼을 만든다. 대나무의 구멍은 지름도 들쭉날쭉했다. 그걸 17㎜ 안팎으로 만들기 위해 덧댐죽을 붙이는 내경보강술까지 개발했다. 대나무 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여러 대나무 산지를 돌아다녔다.

지난 세월 워낙 많은 쌍골죽이 무분별하게 베어졌다. 충분히 자라지 않은 1~2년산도 마구 벴다. 씨가 말라갔다. 대금 제작만으로는 생계가 어렵다. 전국에 전문 제작자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는 어느 날 쌍골죽 대금도 중요하지만 다른 재료로 만든 대금, 하모니카처럼 키(조)별로 된 퓨전대금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나무 이외에 플라스틱, 흑단, 알루미늄, 황동 등으로도 대금을 만들었다. 조별에 맞는 매난국죽 문양을 대금에 새겼다. 대금 국제화를 위해 소리 못지않게 디자인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5년전 광주의 한 연주자가 흥미로운 악기를 연주하는 걸 목격했다. 바로 미국의 색소포니스트 브라이언 휘트만이 하와이언 악기인 대나무로 만든 색소폰 ‘뱀부색소’를 모티브로 ‘포켓색소’를 개발했고, 국내에도 소개된다. 광주의 그 연주자는 포켓색소의 불편한 점을 이 원장에게 하소연했다. 더 잘 불 수 있게 튜닝을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개발된 게 바로 가송삭스다.

일단 포켓색소를 분석했다. 이건 PVC 파이프에 소프라노 색소폰 마우스피스를 장착한 스타일이었다. 마우스피스가 너무 굵어 불기가 불편했다. 소리도 너무 투박했다. 그래서 마우스피스를 가늘게 갈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진척이 없었다. 작년에 청주에서 열린 악기전시회에 출품을 했다. 하지만 음정이 불안했다. PVC 대신 PLA 소재를 3D 방식으로 스캔해서 만들었는데 역시 소리가 별로였다. 급기야 쌍골죽으로 몸체를 교체했다. 구멍 굵기도 15㎜로 했다. 오리지널 모델의 취공의 순서도 바꾸었다. 향피리 연주 때 사용하던 반음 내는 방식을 이 악기 연주 때 사용하게 했다. 결국 가송삭스를 위해 재료, 음공위치, 구멍 굵기, 지공크기, 마우스피스 크기에 맞는 표면 처리, 도색 등 여러 제약조건을 극복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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