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민은 위원참여 배제 ‘형식적인 공론화’ 불보듯

  • 송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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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30 07:35  |  수정 2019-05-30 07:54  |  발행일 2019-05-30 제3면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委 출범
20190530
경주 월성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인 ‘맥스터’ 전경. 현재 저장률이 90.6%로 2021년 11월 포화가 예상된다. <월성원자력본부 제공>

사용후핵연료(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를 놓고 대국민 의견수렴 절차를 주관할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29일 출범하자 경주시민들은 대단히 우려스럽다는 표정을 나타냈다. 정부가 과거 ‘2016년까지 월성원전 내 사용후핵연료를 중간저장시설을 지어 옮기겠다’고 약속해 놓고 이전은커녕 뒤늦게 재공론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위촉장 수여 후 가진 간담회에서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해 원전부지 내 저장 중인 사용후핵연료를 옮기겠다는 과거 정부의 약속이 이행되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이라면서 “사용후핵연료 정책은 소통과 사회적 합의 형성 노력이 핵심이지만, 과거 정부에서 의견수렴이 다소 충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월성원전 공론화 ‘발등의 불’

경주시민들은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저장률이 90.6%로 2021년 11월 포화가 예상돼 건식저장시설(맥스터) 건설 공기(최소 19개월)를 감안할 때 추가 건설 여부를 조속히 결정해야 한다”면서 “월성원전 공론화를 별도로 우선 추진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경주시민들은 사용후핵연료 저장 포화로 2021년 중반 월성 2~4호기 가동을 정지시켜야 할지도 모르는 ‘시급하고 중대한 현안’을 정부가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월성원전(중수로형 4기) 사용후핵연료가 전체 원전의 53%를 차지하는 특수성을 감안, 다른 원전과 분리해 검토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정부 임시저장시설 타지 이전 약속 어겨
지역주민·시민사회 강한 불신감 드러내

고준위핵폐기물 전국회의 정부 규탄시위
“기계적 중립만 좇아 계획안 도출 가능성
수십년 겪은 여론수렴 부족 고착화 우려”



남홍 경주시원전범시민대책위원장은 “정부가 2016년까지 사용후핵연료를 경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 임시저장시설을 지어 옮기겠다는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아 경주시민들이 정부에 대해 큰 불신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 배제된 재검토위원회

산업부는 재검토 추진 방안에 대한 사전협의를 위해 지난해 5~11월 ‘재검토준비단’을 운영했다. 준비단엔 원전 소재 지역주민, 시민사회계, 원자력계 등 14명이 참여했다. 하지만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는 재검토위원회에 위원으로서 참가하지 못한 점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고준위핵폐기물 전국회의’는 29일 재검토위 사무실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를 배제한 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회 출범을 규탄한다"고 반발했다.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는 지역주민과 시민사회의 요구사항이었음에도 중립적 인사로 위원을 선정한다는 이유로 재검토위 위원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고준위핵폐기물 전국회의는 “위원 구성은 핵폐기물 문제를 둘러싼 그간의 문제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인 중립만을 좇게 될 것"이라며 “그동안 원자력업계와 지역주민·시민사회가 수십년간 경험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욱 고착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제대로 된 사용후핵연료 관리계획을 수립하기보다는 대책 없는 임시저장고 증설을 통해 원자력 발전을 지속하려는 공론화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지역주민과 시민사회가 없는 재검토위원회는 기계적인 중립으로 계획안을 짤 가능성이 있다"며 “일방적이고 형식적인 공론화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역주민과 시민사회가 참여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용후핵연료 논란 역사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리장은 1978년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를 건설한 이후 지난 수십년간 국내 원전의 ‘뜨거운 감자’로 여겨져 왔다. 산업부에 따르면 1989년 경북지역 3개 후보지 조사가 논란 끝에 중단된 데 이어 1991년 안면도, 1994년 굴업도 폐기물 처분장 지정이 백지화됐다. 2003년엔 결국 주민과의 갈등이 극으로 치달은 부안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1998년 9월 원자력위원회는 2016년까지 원전 외부에 중간저장시설을 건립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기로 발표했지만 이 또한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노무현정부 때인 2005년에야 경주에 작업복·장갑·폐필터 등 중저준위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폐장 부지를 짓기로 주민투표를 통해 어렵게 확정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엄두도 못 냈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의 연료로 사용된 핵연료 물질을 일컫는다. 현재 사용후핵연료는 발전소 임시저장시설에 저장하고 있는데 월성원전본부의 경우 2021년 11월 포화상태에 이를 전망이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어서 원전 확대 정책을 폈던 이명박정부에서도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정권 말기인 2012년 말에야 논의를 하자는 수준의 발표를 하는 데 그쳤다. 이후 박근혜정부 들어 20개월간 공론화를 거쳐 2016년 7월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기본계획은 사용후핵연료를 처분할 부지 선정, 용지 확보 후 중간저장시설 건설 및 인허가용 지하연구시설(URL) 건설·실증연구, 영구처분시설 건설 계획과 시기 등을 담았다. 그러나 국민과 원전지역 주민·환경단체 등 핵심 이해 관계자에 대한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따라 이번 정부에서 기본계획에 대한 재검토를 다시 추진하게 된 것이다.

경주=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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