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남명 조식의 칼과 방울

  • 백승운
  • |
  • 입력 2014-02-17   |  발행일 2014-02-17 제31면   |  수정 2014-02-17
[자유성] 남명 조식의 칼과 방울

선비와 칼은 좀체 어울리지 않는 상극이다. 무릇 선비는 붓을 들어야 하고, 칼은 무(武)의 상징처럼 여겨왔다.

하지만 남명 조식(1501~1572)은 달랐다. 선비였던 그는 평생 칼을 차고 다녔다. 책상에 앉을 때마다 시퍼런 칼을 턱 앞에 받쳐두고 한 순간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았다. 졸음이 쏟아지면 칼을 어루만지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그의 칼에는 검명(劍銘)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안으로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은 경이요(義內明者敬), 밖으로 시비를 결단하는 것은 의다(外斷者義)’. 검명은 평생과업으로 삼았던 경(敬)과 의(義)를 실천하려는 남명의 의지나 다름없었다. 칼의 이름을 경의도(敬義刀)라고 붙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 ‘남명선생 별집(別集) 언행총록(言行總錄)’에는 그가 “칼을 차는 것을 좋아했다”고 전한다.

남명은 칼과 함께 쇠로 만든 방울을 항상 품고 다녔다. 방울 역시 ‘성성자(惺惺子)’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스로 경계하며 깨어 있겠다는 성성(惺惺)의 뜻이 담긴 이름이었다.

몸이 움직일 때마다 방울은 요란하게 울렸다. 그때마다 남명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았다. 방울 또한 그의 칼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로 삼았던 것이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성호 이익은, 남명이 위대한 학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성성자’ 때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훗날 남명에게 바치는 시를 지어 존경의 마음을 표할 정도였다.

남명은 스스로를 경계하며 깨어 있는 삶을 살았다. 선비였지만 칼을 차고 자신을 경계했다. 옷고름에 쇠방울을 매달아, 깨어 있는 삶을 지향했다. 그것은 남명이 한평생 권력에 무릎 꿇지 않고 직언할 수 있었던 힘이기도 했다. 그 속에는 개인과 더불어 공동체를 완성하려는 유학의 꿈이 숨어있다. 남명의 자기성찰은 ‘개인’을 넘어 ‘우리’를 살피는 확장된 에너지나 다름없다. 자기성찰은커녕 개인의 물욕에만 눈먼 이 시대에, 칼과 방울을 찬 남명의 모습이 그립다. 백승운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