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해양 실크로드 .3] 대한민국 최초 세계인 혜초의 발자취를 찾아서

  • 진식
  • |
  • 입력 2014-08-20   |  발행일 2014-08-20 제12면   |  수정 2014-08-20
“왕오천축국전은 이슬람 정복 전 중앙아시아史의 결정적 자료”
● 2014 해양 실크로드 글로벌 대장정 닻을 올리다
코리아 해양 실크로드
20140820
혜초가 723년부터 727년까지 4년 동안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순례한 뒤 쓴 ‘왕오천축국전’이 처음 발견된 중국 간쑤성 둔황 막고굴의 상징인 높이 35m의 불대불전. <경북도 제공>

고승 혜초(慧超)는 704년 신라 계림에서 태어나 성덕왕 18년(719)이던 16세에 당나라로 갔다. 그는 광저우에서 인도 남천축국 출신의 밀교승인 ‘금강지’를 만나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다. 723년엔 스승인 금강지가 떠나온 바닷길을 따라 인도 천축국으로 구법의 길을 나섰다. 광저우에서 배를 타고 하이난 섬을 지나 베트남·말레이반도·벵골만을 거쳐 인도로 들어갔다. 4년 동안 인도의 5개 천축국(중·동·서·남·북인도)과 서역,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 구자국을 순례하고 727년 당나라 장안(시안)으로 돌아왔다. 오늘날 인도·파키스탄·아프카니스탄·이란·터키·러시아 등 6개 나라의 땅을 밟은 것이다. 이 기록을 담은 여행기가 바로 ‘왕오천축국전’이다. 혜초는 한민족 최초의 세계인이자 탐험가였으며 민족의 선지자였던 것이다.

승려 혜초의 2만2958㎞ 대장정
150명 탐험대 ‘한바다호’로 답사
경주∼상주∼문경∼충주 국내육로
관광자원화 가능 스토리텔링 소재

 


◆혜초의 바닷길을 찾아서

내달 16일 혜초가 다녀간 바닷길과 육로를 1천300년 만에 다시 따라가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경북도가 계획한 해양실크로드 탐험대다.

한국해양대, 경북대 해양관련 학과 학생, 교수 등 150여명으로 구성된 탐험대는 포항 영일만항에서 한국해양대 실습선인 ‘한바다호’에 승선해 중국 광저우∼베트남 다낭∼인도네시아 자카르타∼말레이시아 말라카∼미얀마 양곤∼인도 콜카타∼스리랑카 콜롬보∼오만 무스카트∼이란 이스파한에 도달하는 해양실크로드 글로벌 대장정에 나선다. 해로(1만8천797㎞)와 육로(4천161㎞)를 합쳐 9개국 10개항을 거치는, 장장 2만2천958㎞에 이르는 여정이다.

탐험대는 인도 콜카타에 도착해선 육로를 따라 혜초의 길을 찾아나선다. 콜카타 빅토리아 궁전에서 출정식을 갖고 출발해 파트나~라즈거~부다가야~바라나시~나시크~뭄바이에 이르는 육로 2천206㎞ 구간이다.

인도국립공과대 파트나 캠퍼스에선 혜초 도서관 현판식을 갖고 혜초-간디 세미나를 개최한다. 한·인도 대학생 간 문화교류 한마당 행사도 연다.

바라나시에서는 ‘녹약원(석가모니의 최초 설법지)’에서 혜초 기념비를 제막하고, 일출 땐 갠지스 강변 인도문화 체험 행사도 갖는다.

탐험대는 이처럼 왕오천축국전에 기록된 혜초의 흔적을 찾아 대한민국 역사·문화의 우수성을 재조명한다. 이를 통해 답사 구간 거점 도시와 우호협력을 맺고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한다.

20140820
코리아 해양실크로드 탐험대가 답사할 혜초의 육로 구간.
◆고된 구법의 길을 따라

혜초는 구법자의 길을 걸었다. 죽음의 사막도 험준한 산맥도 그를 막지 못했다. 외롭고 힘든 구법 행로를 살펴보면, 오늘날 실크로드에 해당하는 핵심 지역을 관통하고 있다. 동양에서 혜초에 앞서 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해로와 육로로 일주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아시아 대륙의 끝인 서단까지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이라는 견문록을 남긴 전례는 더더욱 없다.

혜초는 불교에 대한 것 못지않게 정치, 경제, 사회상도 왕오천축국전에 빼곡히 기술했다. 인도·중앙아시아 각 나라의 기후, 토지, 문화, 산물, 병력 및 주민의 생활상과 신앙, 언어 등을 정확히 기록했다.

이슬람 문명이 정복하기 전의 이른바 ‘잃어버린 역사’ ‘복원돼야 할 역사’인 중앙아시아의 역사에 대한 비무슬림에 의한 마지막 기록을 남겼다. 그래서 왕오천축국전이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세계사적 의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왕오천축국전이 불국기, 행천축기, 대당서역기, 남해기귀내법전과 함께 5대 여행기로 평가받는 이유다.

왕오천축국전은 또 다른 구법자나 탐험가를 인도와 중앙아시아로 끌어들이는 단초 역할을 했다. 혜초는 용기만 앞세운 수행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혜초가 신라를 떠나 당나라로 간 국내 발자취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혜초의 흔적은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충분해 관광자원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지리지 서문엔 ‘상주는 왕성의 북쪽에 있는데 당은포로 가는 길목에 있다’고 기술했다. 당은포는 당시 ‘견당사(遣唐使·신라에서 당나라로 보낸 사신)’가 주로 다니던 서해의 대표적인 포구였다. 상주가 견당사 길의 중요한 거점이며, 혜초는 이곳을 거쳐 당나라로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근거로 혜초가 당나라로 간 국내 육로를 유추해 보면, 경주~선산~상주~함창~계립령(현재 소백산 하늘재)~문경~연풍~충주~당은포 노선을 들수 있다.

삼국사기에선 경주~당은포 사이를 왕래하던 신라인의 경유지로 상주를 분명히 꼽고 있다. 계립령은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의 경계에 있는, 국내 최초로 개통된 높이 525m의 고갯길이다.

경주는 물론, 상주와 문경은 혜초의 역사적 가치를 스토리텔링화해 역사·문화·관광 사업을 벌일 수 있는 최적지인 셈이다.

진식기자 jins@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