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 그곳 .4] 봉화 양원역(하)

  •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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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1-11   |  발행일 2014-11-11 제13면   |  수정 2014-11-21
“역을 지키자”… 주민들은 돌아가며 열차에 몸을 실었다

‘간이역, 그곳’은 중부내륙 관광열차(O-트레인과 V-트레인)가 경유하는 경북지역 주요 간이역의 변천사와 서민의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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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오지의 작은 간이역이던 양원역은 지난해부터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하루 6회 정차하면서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연일 북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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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역 대합실 옆에는 열차가 설 때마다 작은 장터가 열린다. 짧은 정차시간 동안, 외지 손님들은 원곡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든 음식들을 먹고 마시고 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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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역 대합실 내부는 정갈하고 소박하다. 긴 의자와 시계, 열차 시간표, 거울뿐인 대합실 풍경은 산골 오지 주민들의 순박한 모습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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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역에 정차한 백두대간 협곡열차에 올라서면 창문 사이로 산골 오지의 비경이 펼쳐진다. 이러한 비경 덕분에 전국의 관광객이 양원역으로 몰려들고 있다.

#1. 5일에 한 번 세상구경, 참 고마운 양원역

양원역은 6.6㎡의 시멘트 단칸 건물에 파란 슬레이트 지붕이 얹혀 있다. 정면 입구에는 ‘양원역 대합실’이라고 적힌 현판이 세로로 걸려 있다. 안에는 간이 의자가 놓여 있고 시계와 열차 시간표, 거울이 걸려 있다.

정갈함으로는 세계 일등일 것 같다.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는 화장실이 있다. 콘크리트로 지은 화장실은 높이가 어깨 정도에 문도 없다. 들어가 일을 보려면 엉거주춤 허리를 숙이고 찔끔찔끔 후진해야 한다.

양원역에는 아침저녁 하루 두 번 기차가 섰다. 동이 트자 마을 주민들이 하나 둘 역으로 향한다.

“춘양장 가요. 오늘 장날이에요.”

“실도 사고, 장갑도 사고, 머리도 하고.”

“순댓국도 사먹고, 국밥도 사먹고, 온갖 필요한 거 사야지요.”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춘양장날은 양원역을 지나는 영동선 기차가 가장 북적이고 바쁜 날이다. 산골 사람들이 5일에 한 번씩 세상 구경을 나가는 날이기도 하다. 승부역에서 먼저 탄 반가운 이웃도 만난다. 역무원이 없으니 차표는 열차 안에서 산다.

“철길을 걸어 다니다가 기차를 타니 얼마나 좋아요. 춤을 췄지요.”

“장터 병원에 있는 보고 싶은 이들에게 가는 것조차 망설여야 했는데.”

“집 앞에 내려주니 얼마나 좋아요. 옛날에는 분천서 내리면 걸어서 한 10리는 더 갔지. 이고 지고.”

참 고마웠다.

“옥수수 삶아서 차장에게 올려주고 그랬지요.”


#2. 2006년의 감동 실화, 여섯 살 진슬이 어린이집 통학 작전

여섯 살 진슬이는 세 살배기 동생 한비와 함께 원곡마을에 살았다. 도시에서 살았지만 엄마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원곡의 외할머니 댁에 맡겨졌다.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지만 자동차로 15분 걸리는 인근 초등학교의 병설유치원은 통학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춘양의 어린이집까지 기차로 통학하는 것이었다.

“친구 하나 없이 산골에 사는 외손녀가 얼마나 안타까워.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춘양역장님하고 어린이집 원장님을 만나 통학문제를 상담했는데 쾌히 입학 승낙을 받았어.”

진슬이는 매일 오전 10시 양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춘양역에 내린다. 역에는 어린이집 원장이 마중 나와 계신다.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하루를 보낸 진슬이는 오후 6시22분 원장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탄다.

“기차에 어린아이를 혼자 태울 때는 유기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어요. 얼마나 민망했는지.”

열차에 타고 있는 동안은 승무원이 챙긴다. 지친 아이가 잠이 들면 안고 내려 할머니 품에 안겨줬다. 춘양역 직원들도 아침저녁 아이가 열차에 타고내리는 것을 살펴주었다.

원곡 마을의 단 한 명뿐인 유치원생을 춘양까지 통학시키기 위해 아이의 가족과 춘양역 직원, 열차 승무원들이 힘을 모았던 이 일화는 2006년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2008년 1월 시간표가 개정되면서 진슬이가 타고 다니던 완행열차는 운행을 멈췄다. 대신 동대구역까지 가는 열차가 아침저녁으로 양원역에 서게 되었고 양원마을 사람들은 더 먼 곳까지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3. 위기의 양원역을 구하라, 주민들의 격일제 탑승 사연

그러던 중 양원역에 위기가 찾아온다. 산골마을 간이역은 북적이는 날보다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는 날이 더 많았다. 열차에 손님이 없는 간이역을 모두 없앤다는 말이 들려왔다.

2011년 10월5일, 전라선 KTX 개통과 동시에 이루어진 열차 시간표 개정으로 양원역은 정차역에서 제외될 예정이었다. 주민들은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양원역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기차를 탔다. 격일제로 돌아가며 열차에 올랐다. 결국 정차역 제외 예정은 취소되었고 무궁화호 취급역으로 계속 남게 되었다. 양원역은 원곡마을 사람들이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이 역을 없앤다는 소리를 몇 번 했는데 모두가 힘을 모아서 그대로 놔두니 고맙죠.”


#4. 사람과 사람을 잇는 길, 노선도에는 없다

2014년, 양원역에는 무궁화호가 하루 왕복 4회, 새마을호 등급의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하루 6회 정차한다. 오랫동안 타고 내리는 이는 마을사람들뿐이었지만, 이제는 전국에서 이 작은 간이역을 찾아온다.

열차가 서면 수많은 사람이 이 작은 역을 가득 채운다. 작은 역 앞에는 작은 장터가 열린다.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은 원곡의 손 거친 사람들이 맑은 골짜기에서 키우고 얻은 것들을 먹고 마시고 사간다. 철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지게 했다.

원곡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양원역에서 열차를 타고 춘양장이나 철암장에 가서 생필품을 구입한다. 여전히 열차 노선도에는 양원역의 이름은 없다. 그러나 기차가 선다. 전국에서 가장 작고 아름다운 양원역에….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사진=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공동 기획: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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