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22] 의령 탐진안씨 백산종가 ‘망개떡’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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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23   |  발행일 2015-04-23 제22면   |  수정 2015-04-23
“동지들 먹여야 해” 고향집 다녀갈 때면 늘 白山의 손엔 망개떡이 …
[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22] 의령 탐진안씨 백산종가 ‘망개떡’
경남 의령 백산종가의 망개떡. 백산 안희제의 손녀인 안경란씨가 대를 이어 만들고 있다.


[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22] 의령 탐진안씨 백산종가 ‘망개떡’
경남 의령군 입산리의 백산고택 전경.


[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22] 의령 탐진안씨 백산종가 ‘망개떡’
백산종택 장독대에서 소금에 절인 망개잎이 담긴 항아리를 열어 보이는 안경란씨.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는 탐진안씨 마을이다. 탐진안씨 가문 인물 중 근세의 인물로는 백산(白山) 안희제(1885~1943)가 우뚝하다. 독립운동가인 안희제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했다. 영민했던 그는 배우는 것을 쉽게 터득하고 문장에도 뛰어났다. 하지만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안희제는 집안 어른에게 신학문을 익힐 뜻을 밝혔다. “옛날 서적을 읽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모르는 것만 못합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학문은 오히려 나라를 해치는 것이니, 경성으로 올라가 지금 세상에 맞는 학문을 배우겠습니다." 그는 풍전등화 같은 조국의 상황을 헤아려 과감하게 신학문을 받아들였다. 양정의숙(養正義塾)에 재학하던 중 교남교육회(嶠南敎育會)를 창립해 형편이 어려운 지방 학생에게 학비를 지원하면서 배움의 기회를 갖도록 해주었다. 1909년에는 영남의 젊은 청년을 주축으로 대동청년당을 결성했다. 이 조직은 광복될 때까지도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독립운동 비밀결사단체였다.

死地로 가는 남편에 건네던 아내의 情
망개잎 절이는 소금독마다 서려 있어
이젠 손녀가 빚어 전국민에 별미 선사


◆독립운동에 매진한 백산 안희제

1911년 봄, 안희제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한 뒤 만주와 시베리아를 유랑하면서 독립투쟁의 처절한 현장을 보고는 독립을 위한 싸움도 결국 경제적 뒷받침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귀국한다. 그 후 1914년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동지들과 함께 부산에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세운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피하고 비밀리에 국내외 독립운동세력과 연락망을 구축해 각종 정보와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려는 의도였다.

1919년 1월, 파리강화회의가 열리자 독립운동 봉기를 촉구하기 위해 상하이 신한청년당이 국내에 파견한 밀사 김순애가 찾은 곳도, 도쿄 2·8학생독립운동을 국내에 전파하기 위해 김마리아가 찾은 곳도 바로 백산상회였다.

백범 김구가 “상하이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운동자금의 6할이 백산의 손을 통해 나왔다"고 했을 정도이니, 백산의 자금 동원력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백산상회는 결국 독립운동자금 공급처라는 것을 눈치챈 일제의 탄압으로 1927년 문을 닫게 된다.

안희제는 언론에도 관심을 가져 1920년 4월 동아일보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동아일보 부산지국장으로 활동했으며, 최남선이 창간한 시대일보를 인수해 중외일보로 변경해 항일투쟁을 지원하기도 했다. 안희제는 1943년 8월 일본 경찰의 혹독한 고문 후유증으로 별세한다.

이 같은 삶을 산 백산 안희제가 평소 좋아했고, 또한 독립운동을 하던 동지들에게도 많이 나눠주었던 떡이 망개떡이다. 백산종가의 이 망개떡은 현재 안희제의 손녀인 안경란씨(76)가 대를 이어 만들고 있다. 일반인에게도 판매하고 있다.

입산리에는 안희제가 태어난 생가인 백산고택이 있다. 은초(隱樵) 정명수가 쓴 ‘백산고택(白山古宅)’이라는 편액이 달린 백산종택의 장독대에는 안경란씨가 망개떡을 만들기 위해 망개잎을 따 소금에 절여놓은 대형 독들이 있다.



◆백산이 독립운동 동지에게 나눠준 ‘망개떡’

“할머니는 종종 백산 할아버지가 망개떡을 참 좋아했다는 말씀을 하곤 했습니다. 독립운동 하느라 집에 계실 때가 잘 없었고 가끔 한번씩 집에 들렀는데, 그때 다시 집을 나설 때는 망개떡을 비롯해 많은 떡을 보자기에 싸 갔다고 들려줬습니다. 떡을 많이 가져간 것은 독립운동을 함께 하던 동지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였지요."

‘의령백산식품’을 설립해 망개떡을 생산·판매하고 있는 안경란씨의 말이다. 안씨는 “효심이 남달랐던 할아버지는 한번씩 집에 들르면 오랜만에 뵙는 자신의 어머니 방에 들어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러면 한창 젊은 할머니로서는 잠시 있다가 떠날 남편이 시어머니방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는 것이 매우 섭섭했던지 당시의 심정을 가끔 들려주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희제가 집을 떠날 때 항상 떡을 한 보따리씩 들고 나갔는데, 떡의 종류도 많았다고 한다. 망개떡은 그중 한 종류였고, 망개잎과 함께 뽕잎으로 싼 떡도 있었다고 한다. 안희제는 망개떡을 특히 좋아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안희제가 생전에 좋아했던 망개떡을 지금은 손녀인 안경란씨가 백산종택을 지키며 ‘의령백산식품’을 내걸고 ‘설뫼 망개떡’을 만들고 있다. 1999년에는 한국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망개떡은 경상도 지역에서 망개라 부르는 청미래 잎으로 감싸서 만드는 떡이어서 그렇게 불리는 떡이다. 멥쌀 반죽에 팥소를 넣어 만든 떡을 망개잎으로 싼 망개떡은 망개잎이 방부제 역할을 해서 떡이 오랫동안 상하지 않게 하고 또한 떡을 촉촉하게 유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망개잎의 독특한 향이 더해져 맛이 한결 좋아진다.

쌀로 만드는 망개떡은 요즘은 대중적인 떡이지만 옛날에는 가난한 서민은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떡이 아니었다. 그리고 망개잎을 딸 수 있는 여름철 한철에만 만들어먹을 수 있는 별미였다.

지금은 망개떡을 1년 내내 만든다. 여름과 가을에 주변 산에서 망개잎을 채취해 소금에 절여 보관하면서 다음해까지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깨끗하게 씻어 소금물을 빼낸 뒤 솥에 넣어 한 번 쪄서 사용한다.

안씨는 백산종택 장독대에 소금에 절여 둔 망개잎을 보여주었다. 커다란 독 2개에 망개잎이 가득 들어있었다.

떡 피는 멥쌀로 만든다. 팥소는 방부제 같은 첨가물 없이 순수한 팥 앙금만 쓰기 때문에 떡은 그날그날 만들어 소비한다.



◆망개떡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

망개떡의 유래와 관련해서 몇 가지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먼저 임진왜란 의병의 음식이었다는 이야기가 입에 오르내린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당시 의병들은 주로 주먹밥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하지만 더운 여름날에는 밥이 자주 상하기도 했는데, 그때 떠올린 것이 망개잎이었다. 망개잎이 방부제 역할을 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인들은 망개잎을 구해다 주먹밥을 싸기 시작했다. 곽재우 장군 부인도 밥이 아니라 떡을 망개잎에 싸서 의병들의 허기를 달랬다.

이것이 망개떡의 시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백산 안희제의 독립운동 당시 망개떡 이야기를 임진왜란 당시 의병에까지 연결시켜 각색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와함께 ‘가야 이바지 음식’ 이야기도 전한다.

백제 어느 귀족이 사냥에 나섰다가 길을 잃어 가야 땅까지 흘러갔다. 말에서 떨어져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산삼 캐는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 남자 집에서 건강을 추스르는 동안 그 집 딸에게 마음을 빼앗긴 귀족은 훗날 백제로 돌아온 뒤 그 여인에게 혼인을 청했고, 그 여인은 망개잎에 싼 망개떡을 혼인 음식으로 가지고 갔다는 이야기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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