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서구의 명소 ‘선사시대로’ A·B·C코스 걸어보니…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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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29   |  발행일 2015-05-29 제34면   |  수정 2015-05-29
“월성동 구석기 유적 주변 아파트 1층 활용 소규모 선사박물관 건립하면 좋을듯”
■ 대구 거석문화를 찾아서-性穴·선돌·선사시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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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달서구 월암동 입석 2호. 심후섭 전 달성교육장이 선돌의 재질을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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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411호인 진천동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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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구지역의 선사시대로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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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동 구석기유적지에서 출토된 좀 돌날 몸돌.


대구시 달서구는 구석기~청동기시대 ‘대구의 수도’라 할 만하다. 2006년 달서구 월성푸르지오 아파트건설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대구지역 최초로 확인된 구석기시대 유물은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구에선 북구 서변동과 수성구 상동 등지에서 신석기시대 유적과 유물이 확인됐을 뿐이다. 고고학계에서는 대구의 5천년 역사를 2만년으로 확장시킨 ‘대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 ‘월성동 777-2번지 유적’으로 명명된 이 지역은 현재 달서구 조암공원 일대다.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에 견줄 만한 유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 밖에 월배선상지를 중심으로 대천동, 진천동, 유천동 등지에서 신석기시대 유물도 대구지역에서 가장 많이 출토됐다. 청동기시대도 마찬가지다. 유적의 다양성, 독창성, 밀집도에서 독보적이다. 청동기 유적만 해도 상인동, 진천동, 유천동, 대천동, 월성동, 월암동, 대곡동 등지에서 64군데나 발굴됐다. 이 가운데 1998년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11호)로 지정된 진천동 입석유적을 비롯해 최대 지석묘무덤군인 대천동 511-2유적이 있다.

지난 15~16일 대구시 달서구가 웃는얼굴아트센터, 선사유적공원, 한샘공원 등지에서 제1회선사(先史)문화학술대회 및 선사문화축제를 열었다. 달서구는 이를 토대로 ‘선사시대로(路)’라는 유적안내 탐방코스를 만들었다. 지난 22일 기자는 달서구청 김철균 문화관광팀장, 문화체육과 정순범 담당의 안내로 심후섭 전 달성교육장과 함께 A·B·C코스를 답사했다.


암각화·성혈 발견 국가지정문화재
진천동 입석으로 유명한 A코스
인도 없고 이정표 부실 헤매기 십상

C코스 월암동 5기의 입석군 대표적
일부 인근 선돌공원으로 옮길 계획

달서구지역 다양한 구조물 활용
선사인 생활 그림 그리면 홍보 효과
선사문화축제 명품화에도 도움될듯

◆A코스-진천동입석~진천동고인돌 구간

이 코스는 청동기시대로(路)다. 진천동입석(立石·선돌)은 2012년 10월 위클리포유 대구지오(GEO)가 ‘대구의 고인돌’을 소개하면서 달서구의 대표적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선돌은 크고 길쭉한 자연석 등을 다듬어 똑바로 세운 기념물 또는 원시신앙 대상물이다. 취락지의 경계석으로도 쓰였다. 전국 곳곳에 입석과 관련한 지명이 많다. 진천동 선돌이 국가지정문화재가 된 이유는 동심원 암각화와 5개의 성혈이 동시에 발견됐기 때문이다. 또 주변에 장방형석축과 석관묘 5기가 함께 발굴돼 선돌을 중심으로 제단에서 공동제의(祭儀)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이 제의유적은 국내에서 처음 발굴됐으며 매장, 제의 제단, 암각화 등 원시신앙의 흔적이 모두 나타나고 있다.

유병록 우리문화재연구원 부장에 따르면 월배선상지의 선정부인 해발 80m 지점에 상인동입석이, 선상지 중간 선앙부(해발 36m)에 진천동입석이, 그리고 선상지 하단 선단부(해발 25m)를 따라 월암동입석이 줄을 지어 들어섰다고 했다. 이 가운데 상인동입석과 진천동입석이 제사 공간이며, 월암동입석은 경계를 나타내는 표식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진천동입석이 위치한 선사유적공원 인근 진천동 지석묘 소공원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1983년까지 이곳엔 4기의 지석묘가 있었으나 2기는 주택단지가 생기면서 사라지고 2기만 남았다. 98년 달서구청이 주변에 있는 상석 1개를 옮겨 3개를 한 장소에 모아 쉼터이자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1호와 2호는 각각 현무암과 화강암으로 돼 있다. 둘 다 받침돌이 없는 남방식 고인돌이다. 주민 김갑수씨에 따르면 고인돌이 일반 가정집에 놓여있어 빨래 말리는 바위로 활용했다고 한다. A코스는 주택과 아파트단지 이면도로여서 인도가 따로 없는 게 흠이다. 이정표가 부실해 초행길이면 길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B코스-대천동 청동기유적(한샘공원)~월성동 구석기유적(조암공원)

이 코스는 대천동 한샘공원에서 출발한다. 대천(大泉)의 우리말이 한샘이다. 월배들 중간에 가뭄에도 마르지 않은 큰 샘이 있어 마을이름의 유래가 됐다. 공원 안에 350년 수령의 회화나무가 있으며 옆으로 팽나무, 느티나무와 같은 노거수가 줄지어 서있다. 돌칼 모양의 탑에 ‘대천동 선사유적지’라고 쓰여 있으며 큰 항아리가 공원 한가운데 있다. 유적의 유래와 설명이 그림과 함께 잘 전시돼 있다. 또 고분군을 복원해두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문화유산해설사가 탐방한 어린이집 원생들에게 선사유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신종환 대가야박물관장에 따르면 대천동 선사유적은 지금까지 월배선상지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 유적 가운데 지석묘, 석관묘 등 매장유구가 가장 집중적으로 확인돼 매장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했다. 2006~2007년 영남문화재연구원 조사 결과 원형, 방형 등의 주거지 16동과 석관(곽)묘 68기 등이 확인됐다. 또한 각종 무문토기와 돌칼 등 부장품도 다량으로 출토됐다. 신 관장은 인근 대구지역에선 보통 10여기가 군집돼 있는 반면, 68기의 무덤이 한꺼번에 발견된 것으로 봐 취락민의 공동묘지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심후섭 전 교육장은 “넓은 들에 지하수가 용출하는 곳이라서 취락이나 경작지가 입지하기에 좋은 조건”이라고 했다.

정 담당은 “제의 관련 유적은 진천동으로, 지석묘는 대천동으로, 선돌은 장미공원으로 모아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월성동 구석기유적은 B코스의 하이라이트다. 2006년 발굴 당시 약 2만년 전 후기구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좀 돌날, 긁개, 새기개, 찌르개 등과 같은 석기가 1만3천184점이나 출토됐다. 이 가운데 흑요석 4천888편이 포함됐다. 월성동구석기 유적발굴에 참여했던 이상목 울산암각화박물관장에 따르면 흑요석은 시베리아, 몽골, 일본 규슈지역에서 발굴된 것으로 한반도에선 서해안 일대를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고 했다. 흑요석은 유리 성분의 화산석으로 화산지대에서만 발견된다. 이 관장은 “‘맥가이버 칼’ 같은 신비의 이 돌은 한반도에선 백두산이 유일하고, 일본의 규슈가 주산지다. 한반도 북부에선 백두산 계통의 것이, 남부지역에선 규슈 계통이 발굴되는데 특히 월성동 흑요석은 이 둘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했다.

경북대 지질학과 암석광물학연구실 발표에 따르면 제3의 흑요석산지에서 유입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유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대구국립박물관에 있다.

이 관장은 “프랑스 테라-아미타 선사박물관이 신축아파트 1층에 건립됐듯 달서구에서도 이를 활용해 월성동에 소규모 선사박물관을 건립해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김 팀장은 “우선 다음 주중에 구석기시대 생활상을 담은 그림과 안내판을 조암공원 내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코스-A·B코스 외 문화유산

이 코스는 A·B코스를 제외한 선사문화 코스다. 대표적인 것으로 월암동 입석군과 상인동 입석이다. 월암동 입석은 월성동 구석기유적 북쪽 평야에 위치해 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 남쪽 연변을 따라 동~서로 5기가 배열돼 있었으나 북동쪽 2기는 도로개설로 매몰되거나 유실됐다. 90년대까지만 해도 고속도로를 통과하면서 조망이 가능했으나 도로 확장 등으로 현재 지표면보다 1m 이상 아래에 위치해 있다.

세종문화연구원 김은경 연구원에 따르면 이들 입석은 취락집단의 생활영역을 표시하는 경계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각각의 입석은 300~400m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공통적으로 입석에 성혈이나 암각화는 발견되지 않았다. 높이는 160~205㎝로 화강암, 혈암, 현무암 등으로 보고됐다. 이 입석은 인근 대덕산에서 채취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팔공산 등지서 채취돼 낙동강 물길로 가져왔다는 설도 있다. 이 관장은 이 입석군의 서쪽으로 청동기유적이 확인되지 않은 점으로 볼 때 시기에 상관 없이 취락의 공간적 경계가 당시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2011년 입석 주변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문화재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선사문화축제를 계기로 인근 선돌공원에 1~3호기를 옮겨 전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상인동 입석은 처음 달배마을 어귀의 밭에 위치했으나 지금은 94년에 조성한 당산어린이공원으로 옮겼다. 입석 바로 옆에 고사목이 있고 작은 선돌이 눈길을 끈다. 돌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높이 250㎝다.

◆선사유적 활용 방안

달서구의 선사문화축제는 지난해 10월에 기획됐다. 지난 16일 열린 축제를 계기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중구는 근대골목, 남구는 앞산, 북구는 팔공산과 금호강 동화천, 달성군은 비슬산과 낙동강을 중심으로 문화유산 홍보에 힘을 쏟고 있는 데 비해 출발이 늦었다. 하지만 달서구가 대구의 역사를 5천년에서 2만년으로 앞당긴 것을 계기로 가장 명품이 될 수 있는 문화축제로 만들 수 있다.

신종환 대가야박물관장은 “달서구지역 아파트단지와 학교 같은 대형건물이나 고가도로, 계단, 하천 벽면 등 구조물에 선사인들이 야생동식물을 수렵하거나 채취하는 그림을 그린다면 달서구가 선사시대 수도였다는 것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달서구지역을 통과하는 고속국도 방음벽이나 경부고속철 교각에 선사문화와 관련한 ‘색동방음벽’을 설치해도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 달서구에서는 선사문화탐방을 남부교육청과 연계해 학생들의 역사교육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고 있다. 신 관장은 이와 더불어 ‘우리 동네 유적 순례’ ‘차 없는 선사문화거리’ ‘함께 걷는 선사시대길’ 등을 만들어 달서구만의 독특한 길거리문화로 정착시키자는 발의를 했다. 한편으로 구석기~청동기시대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성서지역의 토기가마유적을 포함해 역사시대까지 아우르는 콘텐츠도 개발할 것을 주문했다.

달서구는 성서지역뿐만 아니라 가능하다면 남구와 달성군까지 월경하는 문화콘텐츠 구축도 가능하다. 달성습지와 화원유원지 일대 자연과 원삼국시대 고분군, 신라시대 토성도 연계해 볼 만하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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