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영남일보·Y투어 韓中日 맛 기행…일본 오사카를 걷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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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03   |  발행일 2015-07-03 제33면   |  수정 2015-07-03
맛 투어, 해외여행 틀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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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성의 도톤보리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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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성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투어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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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기온 거리에 있는 마메엔의 콩알스시는 게이샤에게 적당하도록 기존 스시보다 훨씬 작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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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역사의 복어요리 명가인 도톤보리 즈보라야의 복어 샤부샤부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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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코스 게 요리 전문점인 도톤보리 가니도라쿠 중점 가게 입구 음식 샘플 진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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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대표 명물 간식인 다코야키

국내언론 최초 푸드 여행
다양한 직업의 식도락가
일본 명물 음식
여유롭게 맛보다

문득 그런 날이 있다. 열심히 살긴 살았는데 무엇인가 1% 부족한 것 같은. 그 1%가 곧잘 콤플렉스, 트라우마로 습격해온다. 우리의 일상은 매일 위너(winner)와 루저(loser) 사이의 칼날 능선을 걷는다.

그동안 일상탈출의 두 축은 취미와 관광이었다. 그런데 몇 년 사이 ‘푸드 투어(Food tour)’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머니 사정을 살필 수밖에 없는 관광족은 초저가 패키지 상품에 현혹될 수밖에. 그 탓에 관광사와 투어 가이드, 그들과 밀착된 쇼핑업자와 관광객은 신경전을 벌여왔다. 관광객은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쥐꼬리만 한 자유시간, 떠밀려 다니는 발걸음, 북적대는 관광객 전용 식당에서 허겁지겁 한 끼를 해결해야 했다.

지난달 26일 오전 대구국제공항 국제선 앞. 22명의 식객이 살랑거리고 푸릇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영남일보와 Y투어가 야심차게 기획한 국내 언론 사상 첫 푸드 투어인 ‘삼시세끼 한·중·일 삼국지 맛기행 1기’ 투어단. 부부, 친구, 외국인 부부, 식당주, 음식 칼럼니스트, 신경정신과 의사, 사업가 등 다양한 직업과 캐릭터를 가진 식도락가였다. 이들은 공포몰이 중이던 메르스를 비웃으며 티웨이 241 항공기에 탑승했다.

오전 10시20분 2015년발 장마전선을 뚫고 일본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메르스 때문에 한국 대신 일본으로 발길을 돌린 중국 관광객이 폭주했다. 설상가상 석 대의 항공기 탑승객이 한꺼번에 입국수속을 밟는 바람에 수속에 진을 뺐다. 하지만 투어단은 여유만만. 일본의 명물 음식을 2박3일간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설렘 때문인 것 같았다.

점심을 위해 맨 먼저 찾은 곳은 오사카역 근처 다이마루 백화점 14층에 있는 ‘치소 잔마이’란 뷔페 레스토랑. 행인의 표정에서 ‘불금(불타는 금요일 밤)’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진다. 오후 2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인 데도 빈자리는 별로 없다.

투어단의 이목이 집중된 게 있다. 일본의 모든 식당 입구에 있는 샘플용 음식 진열대다. 젤라틴으로 처리돼 실제 음식과 흡사하다. 예쁘고 실감나고 친절하다고 여겼는지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식당주는 이 샘플을 통해 행인과 간접 소통한다. 취급하는 모든 메뉴의 가격과 이름, 완성된 음식의 모습을 공개한다. 이건 일본 특유의 배려심. 일본은 ‘국부민빈(國富民貧)’의 국가. 나라는 부자지만 국민은 가난하고 살아가는 게 다들 빠듯하다. 우린 툭하면 30평, 40평 운운하지만 일본 평균 집 크기는 42.9㎡(13평). 철저하게 개인주의다. 게다가 자기가 먹은 음식 값은 각자 해결하기 때문에 식당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이 무슨 음식을 먹을 것인지 미리 결정한다. 일본인들은 식당에 들어와서 자기가 갖고 있는 액수보다 더 많은 음식 값이 나오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이런 낭패를 손님들이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1970년대 초부터 무슨 음식인지 알려주는 모형음식 진열장 제도가 전국적으로 퍼졌다.

가게 홍보 이상으로 손님의 주머니 사정을 겨냥한 것이다. 주머니 사정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친구 송별연에서도 더치페이를 한다. ‘분빠이(分配) 문화’ 때문이다.

점심 시각을 많이 넘겨서 그런지 다들 포식했다. 일본 뷔페는 일식을 ‘요점정리’해준다. 일본 음식인 줄 알고 먹지만 상당수 메뉴가 외국음식과 합쳐진 ‘퓨전 음식’이라는 걸 감지하지 못한다. 특히 프랑스를 비웃게 할 정도로 경지에 오른 디저트류는 투어단을 한없이 행복하게 해준다. 디저트는 일본말로 ‘미즈가시(水菓子)’라고 한다. 나가사키에서 탄생한 카스텔라, 도쿄 긴자에서 가장 오래 줄을 서야 살 수 있다는 기무라 단팥빵, 일본 사람만큼 많다고 하는 온갖 요캉(양갱)류, 푸딩류…. 예전에는 과일류에서 요즘은 푸딩류가 대세를 이룬다. 일본은 전통도 사수하지만 퓨전의 달인. 일본만큼 외국 음식을 자기 방식으로 잘 수정하는 국가도 드물다. 일본 맥도날드 1호점은 1971년에 오픈됐다.

어두워지자 낮 동안 숨 죽이고 있던 간판의 불빛이 고함을 질러댄다.

오사카의 밤 불빛. 그것보다 더 강렬한 건 식당가에서 뿜어내는 음식 냄새다. 오사카 식당 밀집거리인 도톤보리(道頓堀) 길거리를 주름잡는 다코야키(문어풀빵), 킨류(金龍)라멘, 야키니쿠(燒肉) 전문점에서 피워내는 불고기 냄새. 한껏 부푼 마음의 투어단 식객은 오사카의 밤 음식 앞에서 여행의 꽃이 관광지가 아니고 음식임을 비로소 느낀다.

글·사진=오사카에서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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