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문국 멸망시기 논란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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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19   |  발행일 2015-08-19 제13면   |  수정 2015-08-19 08:18

“아들 즉위연도 310년이라면
석우로 253년 죽음 납득안돼”
삼국사기 기록과 100년 시차

감문국의 신라편입 이후를 고찰하기 전 감문국의 멸망시기를 정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감문국 멸망시기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는데, 그 시간차가 100년에 가까운 탓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감문국은 서기 231년(조분왕 2년) 신라 대장군 석우로에 의해 멸망했다. 석우로의 사망연대 또한 253년으로 기록돼 있으며, 석우로가 신라를 침공한 왜인(倭人)에 의해 죽임을 당할 때 아들 흘해의 나이가 아주 어렸다고 덧붙이고 있다.

하지만 석우로의 아들이자 신라 제16대 왕인 흘해이사금(訖解尼師今)의 즉위시기를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흘해의 재위연도는 310~356년으로 아버지의 사망 시점보다 한참 이후다. 대부분 옛 기록이 15세 미만을 ‘어리다’고 칭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석우로가 사망 당시에 흘해가 태어났다 가정하더라도 흘해는 무려 103년이나 산 것이 된다.

학계는 왕의 즉위 순서를 뒤집는 것이 어려운 만큼 석우로의 사망시기가 늦춰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석우로의 사망시기가 253년보다 훨씬 후대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석우로에 의해 멸망한 감문국의 존속시기 또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감문국의 멸망 시점이 삼국사기 기록보다 후대로 추정되는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신라가 본격적인 정복활동을 펼친 것은 4세기 이후부터이기 때문이다. 학계는 이러한 연대의 오류를 사실상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계명대 사학과 노중국 명예교수는 “(연대오류는) 삼국사기를 집필한 김부식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역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묶여져나오면서 시간적 충돌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는 대개 4세기 이전의 기록을 ‘초기기록’이라 하는데 사건 간 연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흘해의 즉위연도가 서기 310년이라면, 그의 아버지 석우로는 253년에 죽어서는 안될 인물이다. 이런 이유로 석우로가 멸망시킨 감문국의 멸망시기 또한 3세기 말에서 4세기 초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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