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31] 충남 청양 하동정씨 종가 ‘구기주’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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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27   |  발행일 2015-08-27 제22면   |  수정 2015-08-27
“지고는 못 다녀도 배에 넣고는 다녀”…강장효과 뛰어난 불로장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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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주 재료인 구기자나무 뿌리, 재래종 국화, 구기자나무 열매, 구기자나무 잎, 감초.(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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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주 빚는 누룩. 통밀로 만든 누룩(아래)과 쌀·녹두로 만든 누룩 두 가지를 쓴다.


충남 청양은 우리나라의 구기자 명산지다. 전국 구기자 재배면적의 60%, 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청양은 일교차가 크고 물 빠짐이 좋은 토양 등 적절한 자연조건 때문에 최고 품질의 구기자를 생산하고 있다. 현재 1천여 농가에서 연간 200t의 구기자를 생산하고 있고, 구기자 술과 구기자 한과 등 다양한 가공제품도 생산하고 있다.

구기자는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되어 있으나 청양은 기후와 토양이 구기자 재배에 가장 적합해 청양 구기자는 최고 품질로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 한약재인 구기자는 달여 먹는 한약 조제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약재임은 물론이고, 차를 끓여 마셔도 좋다. 부드러우면서도 상큼한 맛과 그윽한 향이 좋은 구기자는 피로회복, 시력보호, 성인병 예방 등 그 효과도 뛰어나다.

청양 운곡면 광암리 하동정씨 종가에서는 이 구기자를 주재료로 이용한 ‘구기주’를 150여년 전부터 집안의 전통 가양주로 빚어오고 있다.


최고 품질 자랑하는 청양 구기자
인삼·하수오와 3대 보약재 꼽혀
뿌리·열매·잎 모두 사용 술 빚어

10세손 종부가 가양주 비법 전수
“시어머니·남편 밤낮없이 마셔도
술병 한 번도 앓은 적이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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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 하동정씨 가문의 가양주로 전해 내려온 구기주.


◆하동정씨 종가에서 150년 동안 빚어온 ‘구기주’

‘구기자주(枸杞子酒)’가 아니라 ‘구기주(枸杞酒)’라 줄여 말하는 것은 보통 구기자나무 열매를 말하는 구기자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열매는 물론 잎과 뿌리를 모두 활용하기 때문이다.

애주가들은 옛날부터 구기주를 ‘불로장생주(不老長生酒)’라 불렀다. 특유의 향과 감칠맛, 그리고 뛰어난 강장효과 때문이다.

현재 구기주를 빚고 있는 사람은 청양 하동정씨 가문의 10세손 종부 임영순씨(1942년생)다. 임씨의 며느리 최미옥씨도 시어머니로부터 구기주 담그는 법을 배워 함께 술을 빚고 있다.

임씨는 이 구기주로 1996년 정부로부터 전통식품 명인 제11호로 지정받았으며, 2000년에는 충남도 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받았다.

임씨는 청양의 하동정씨 종가에 시집오기 전에는 구기자를 본 적도 없었다. 구기자로 담근 술도 본 적이 없음은 물론이다. 그런 임씨는 21세 때 시집와서 20대에 혼자가 된 시어머니 경주최씨로부터 구기주 빚는 법을 배웠다. 최씨 또한 시어머니인 동래정씨로부터 가양주인 구기주 담그는 법을 물려받았다. 구기주는 이렇게 최소한 150년 넘게 하동정씨 종가 맏며느리에 의해 전해져 오고 있다.

청양의 하동정씨 가문에는 “구기주를 지고는 못 다녀도 배에 넣고는 다녀야 한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이 가문의 사람들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이 구기주를 얼마나 즐겼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종갓집이기에 제사가 1년 내내 끊어지지 않는 데다 시어머니와 남편도 술을 좋아해 구기주 담그는 일이 임씨에게는 가장 큰일이었다. 보름에 한 번꼴로 구기주를 빚었다.

“시어머니가 술을 좋아하셨습니다. 남편도 그렇고요. 시집을 오자마자 술을 빚으라고 해요. 그래서 싫은 소리 안 들으려고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시어머니의 손맛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집안에 술이 떨어진 날이 없었어요. 보름에 한 번씩은 술을 빚은 것 같습니다.”

임씨는 구기주가 건강에 특별히 좋은 술인 것 같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생전에 밤낮없이 구기주를 드셨어요. 그런데 보통 사람이 술을 마시면 숙취도 있고 해서 다음 날 아침에 해장국을 찾는데, 시어머니와 남편 모두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술을 많이 드셨지만 술로 몸을 버리지도 않고 술병도 한 번 앓은 적이 없었는데, 술 담글 때 듬뿍 넣는 구기자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구기자나무 열매·잎·뿌리, 두충 껍질, 국화, 감초 사용

구기주는 밑술과 덧술 과정을 거치는 이양주다.

밑술은 멥쌀과 누룩으로 빚는다. 누룩은 통밀을 깨끗이 씻어 빻아 만들고 45∼50일 정도 띄운다. 독특하게 녹두와 쌀로 만든 누룩도 사용한다.

밑술을 4일 정도 발효시킨 뒤 찹쌀 고두밥과 누룩을 넣어 덧술을 담근다. 이때 구기자나무, 두충나무 껍질, 감초, 재래종 국화 등을 넣는다. 구기자나무는 열매와 잎, 뿌리(지골피)가 다 들어간다. 농사를 직접 지어 수확한 뒤 말려 두었다가 사용한다. 다른 재료도 모두 직접 재배해 사용한다. 구기자나무 열매는 옛날에는 삶아서 사용했으나 지금은 말린 것을 그냥 빻아 사용한다.

이렇게 완성된 구기주의 알코올 도수는 16도. 구기주는 구기자 특유의 독특한 향이 있는 데다 달착지근하며, 새콤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것이 특징이다.

◆구기자 이야기

구기자는 주요 강정제로 쓰이며 중국에서는 2천년 전부터 각종 약방서에 그 효과가 비법으로 전해져 올 만큼 효능이 탁월하다. 중국 속담에 ‘집 떠나 천리(千里) 길에 구기자는 먹지 마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구기자를 여행할 때 먹으면 정기가 넘쳐 혹시 실수할 수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일본에서도 ‘독신자는 구기자를 먹지 마라’는 말이 회자되어 왔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호서지방을 여행하던 한 관리가 청양 고을을 지나다 15~16세로 보이는 여자가 80~90세 되어 보이는 백발노인을 때리는 것으로 보고 그 이유를 묻자, 여자아이는 노인을 가리키며 ‘이 아이는 내 셋째 자식인데 약을 잘못 먹어 나보다 먼저 머리가 희어졌다’고 대답했다. 이에 깜짝 놀라 말에서 내려 나이를 물으니 395세라 하였다. 그 비결을 물으니 구기자술에 있다며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줬다. 그래서 그 관리도 집에 돌아가 구기자술을 담가 마시니 그 후로 300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구기자는 특히 강정제와 간세포 생산촉진에 효과가 크다. 구기자나무 열매에 생산촉진에 필요한 베타인, 비타민, 아미노산 등의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피로회복과 강장 효과뿐만 아니라 해열, 기침방지, 원기회복, 알코올 해독, 고혈압 예방 등의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기자는 수천 년 전부터 인류를 위한 최고의 약초로 사랑받아 왔다. 동양에서는 인삼, 하수오와 함께 3대 보약재로 구기자를 꼽았으며, 중국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을 비롯하여 서태후 등도 구기자로 건강을 지켰다고 한다. 의서(醫書)에는 구기자에 대해 ‘몸을 가볍게 하고 노화를 견뎌 수명을 연장한다(輕身延年耐老)’ ‘구기자를 먹으면 어린이로 돌아간다(枸杞還童)’라고 표현하고 있다.

서양에도 마찬가지로 구기자의 효능이 잘 알려져 있다. 수년 전 가수 마돈나가 피부에 탄력을 주고 젊어 보이려고 구기자차를 장복(長服)한다고 영국의 BBC방송이 소개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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