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자유학기제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 .2] 안산·대전 사례

  • 백경열,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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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07 07:27  |  수정 2015-10-07 07:30  |  발행일 2015-10-07 제5면
‘학부모를 전문강사로’ ‘지역사회를 주제로’ 친숙하고 알찬 수업

학교 현장에 ‘자유학기제’라는 DNA를 주입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털어놓는 이유 중 하나가 “환경이 안 따라준다”는 것이다. 무슨 의미일까. 이른바 환경이 열악한 곳에 위치한 학교는 자유학기제를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때 지역사회의 도움이 가장 절실하다. 학교 역시 적극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도움만 바랄 때, 자유학기제는 보여주기식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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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대전 한밭여중 강당에서 진행된 방송댄스반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함께 율동을 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경기 안산시 신길중

전문양성가과정 거친 ‘학부모지원단’
소비·먹거리 등 실습 겸한 수업 신선
수업 때 만든 물품 판매해 지역 기부도


경기도 안산시 신길중은 2009년 개교한 뒤 현재 재학생 850여명 규모의 ‘젊은’ 학교다. 2013년 교육부의 요청으로 자유학기제 연구학교에 지정된 이후, 다양한 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다른 학교를 선도하고 있다. 지정 첫해에 자유학기제 운영 우수학교로 표창을 받았다. 특히 학생과 교사, 여기에 지역사회와 학부모까지 힘을 모아 진행하는 학교 수업이 눈에 띈다. 현장에서 확인한 신길중은 ‘자유학기제의 진화된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갖게 했다.

지난달 24일 신길중 한 교실에서는 ‘건축학개론’이라는 수업이 진행됐다. 대학에서 이뤄질 법한 수업이지만, 의외로 주제는 친숙했다. 우리 마을의 지도를 만들어 보는 주제. 단, 나만의 지도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학생들은 색연필과 형광펜으로 줄을 긋는가 하면 녹색, 빨간색, 파란색 등의 작은 원 모양 스티커를 이리저리 붙이며 자신의 집과 자주 가는 곳, 등굣길 등을 지도 위에 표시하는 데 열중했다.

이날 강사로 나선 인물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사와 YMCA 활동가였다. 강사는 “내가 사는 마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이뤄지는 수업이다. 실제 건축물을 지을 때 기본 절차이기도 하다”며 “아이들은 나중에 직접 표시한 곳의 사진을 찍은 뒤 다시 토론을 한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주인공이 경험했던 일과 같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각 다른 교실에서는 ‘녹색환경 만들기’ 수업이 진행됐다. 독특한 점은 교사 이외에 4명의 학부모가 강사로 나섰다는 것. 이들은 소비, 진로, 먹거리, 에너지 등 4개 분야에 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뒤 아이들에게 실습을 겸한 수업을 진행했다.

신길중이 자랑하는 ‘학부모지원단’이 힘을 발휘하는 장면이다. 학교가 2013년부터 꾸려나가는 학부모지원단은 현재 50여명의 학부모가 조를 이뤄 학교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학교 허은숙 교육과정부장은 “예전 일회성 활동에 그쳤던 ‘명예교사’와는 다른 개념이다. 전문 양성가 과정을 거친 뒤 강사로 활동하게 된다”며 “자유학기제를 시행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강사 경험은 학부모의 만족감을 높여준다는 평가다. 윈윈 전략인 셈이다.

윤기득씨(39)는 “내 아이에게만 집중하던 데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정말 행복한 경험”이라며 “아이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왠지 서먹서먹했지만, 지원단 활동을 한 뒤 관계가 좋아졌다”고 했다.

학부모지원단의 활동은 요리반에서도 이어졌다.

‘집밥 민선생’ 수업이 이뤄지던 가사실에서는 곧 있을 추석을 맞아 전을 부치고 있었다. 최근 요리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많다는 점에 주목해 꾸려진 수업이다. ‘민’선생인 이유는 수업을 주도하는 학부모의 성이 민씨이기 때문. 수업에서는 샌드위치나 피자, 햄버거는 다루지 않는다. 그야말로 집에서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간단한 한식 위주로 가르치자는 게 수업의 모토다.

앞치마를 두른 채 학생을 맞이하던 정선영씨(41)는 “편하게 아줌마라고 부르라고 했는데도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불러준다. 뿌듯하고 고마우면서 보람된다”며 “어렵지 않은 메뉴를 다루니까 다른 어머니도 애착을 갖고 가르칠 수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오는 22일로 예정된 학교 축제 때는 수업에서 만든 고추장을 팔아 수익금을 복지관에 기부한다는 목표까지 세웠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비슷한 시각 창업반 아이들이 몸담고 있는 ‘비즈니스 스쿨’에서 신선한 사례를 목격할 수 있었다. 이날 학생들은 ‘신길 비즈쿨 창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실습 때 손수 만든 제품(아로마디퓨저)을 축제 때 어떤 방식으로 판매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판매 마케팅 전략을 짜고 있는 것. 학생들은 원가를 산정하고, 이를 얼마의 가격으로 어떻게 팔 때 수익이 날지 고민하고 있었다.

담당 교사는 “지난 1회 때 수익금으로는 배추를 사서 요리반에 준 적이 있다. 이를 다시 김치로 만들어 복지관에 전달했다”며 “지역사회에서 받은 도움을 다시 돌려주고 그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자는 의미”라고 밝혔다. 지역사회와 공생하고, 그 속에서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는 방식으로 자유학기제의 한 부분을 구성한 것이다.

지역사회와 공생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노력이 한몫했다.

허 부장은 “교사들이 이른바 ‘영업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학생 요구사항이 뭔지 파악한 뒤, 지역에 있는 여러 단체의 도움을 받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현재 도움을 주는 단체가 100곳은 넘을 것”이라며 “교사에게 분명 부담이지만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사실 외부기관에서는 어떻게 도와줄지 모르는 경우도 많지만, (학교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이때 상업적인 목적이 있는 곳은 배제하고 있다. 아이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파악한 뒤, 협의 과정을 거친 후 추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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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대전 한밭여중 골프연습실에서 진행된 수업 장면. 전문 강사가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대전 한밭여중

골프·방송댄스·만화일러스트반 등
예술·체육 집중수업…꿈·끼에 날개
교사들 손수 골프장 개조 예산절감도

지난달 21일 찾은 대전 한밭여중 역시 자유학기제 연구학교다.

이곳은 490여명이 다니는 소규모 학교로, 자유학기제를 활용해 학생에게 다양한 예체능 활동을 보장하고 있었다. 평소 접하기 어려운 활동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주려는 배려가 돋보였다.

이날 오후 학교 건물과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가건물에서는 난데없이 “딱, 딱” 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확인해 보니 학생들이 자신의 키만한 골프채를 들고 퍼팅 연습을 하고 있었다. 4명이 1개 모둠을 이뤄 실습을 하고 있었는데, 땅볼을 치는 학생도 있는 반면에 앞에 위치한 목표물에 정확히 공을 보내는 아이도 적지 않았다. 골프를 전문으로 배운 강사와 학교 교사가 아이를 지도하고 있었다. 강사는 “다리에 힘을 좀 더 주고…. 공을 끝까지 보고”라며 아이들에게 힘을 북돋웠다.

이 학교 이윤경 교무부장은 “당초 골프장 개조 비용이 1천만원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예산 절감을 위해 여름방학 동안 교사들이 직접 꾸며 300만원 정도에 만들 수 있었다”며 “교사들이 애쓴 사실이 알려지자 공과 골프채는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비슷한 시각 강당에서는 방송댄스반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오와 열을 맞춰 선 수십 명의 학생은 걸그룹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강사가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비록 학생의 얼굴은 앳되었지만 표정만은 아이돌 가수처럼 진지했다.

이 학교 자유학기제 수업은 만화일러스트반, 기타-우쿨렐레반, 피아노반, 사물난타반 등 다양하게 편성돼 있어 학생들의 호응을 받고 있었다.

이 부장은 “특히 예술과 체육 분야에 집중해 수업을 편성했다. 강사는 철저히 전문 교육을 받은 인물을 초빙하고 있다”며 “아이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데 공을 들였고, 악기 등 지역사회의 기부도 뒤따라 많은 힘이 된다”고 밝혔다.

백경열기자 bky@yeongnam.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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