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의 술과 음식 이야기 .36] 전주 한양조씨 가문 ‘이강주’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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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05   |  발행일 2015-11-05 제22면   |  수정 2015-11-05
배·꿀·생강·울금·계피 넣어 빚은 ‘藥酒’…조선 상류층이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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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주 소주를 내리며 시음하고 있는 조정형씨. <전주 이강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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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이강주에 들어가는 재료들(배, 생강, 울금, 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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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 중인 이강주.

한양서 벼슬하다 전주 정착한 6대조
손님 대접하려 가양주로 빚기 시작

옅은 노락색에 달콤하고 매콤한 맛
많이 마셔도 잘 안 취하고 뒤끝 없어

조정형 명인, 전통주 복원해 대중화
알코올 19·25·38도 세 종류로 출시


세시풍속 상식사전이라 할 수 있는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이라는 책이 있다. 육당(六堂) 최남선이 1937년 1월30일부터 9월22일까지 매일신보에 160회에 걸쳐 연재한 ‘조선상식’을 재정리해 1946년에 간행했다. 조선의 풍속과 전통에 대해 문답형식으로 쉽게 쓴 것이다.

술에 대해서는 술의 격을 ‘로(露)·고(膏)·춘(春)·주(酒)’ 순으로 구분하면서, 이강고(梨薑膏)를 죽력고(竹瀝膏)·감홍로(甘紅露)와 함께 조선 3대 명주로 꼽았다.



문: 우리나라 술로 유명한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답: 가장 널리 퍼진 것은 감홍로(甘紅露)이니 소주에 단맛나는 재료를 넣고 홍곡(紅穀)으로 발그레한 빛을 낸 것입니다. 그다음은 전주의 이강고(梨薑膏)이니 배 물과 생강즙, 꿀을 섞어 빚은 소주입니다. 그다음은 전라도의 죽력고(竹瀝膏)이니 푸른 대를 숯불 위에 얹어 뽑아 낸 즙을 섞어서 고은 소주입니다. 이 세 가지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던 것입니다. 이 밖에 금천의 두견주, 경성의 과하주처럼 부분적으로 또 시기적으로 좋게 치는 종류도 여기저기 꽤 많으며, 누구 집 무슨 술이라고 비전(秘傳)하는 것도 서울과 시골에 퍽 많습니다마는 근래 시세에 밀려 대개 없어지는 것이 매우 아깝습니다.



1935년 조선주조협회가 발행한 자료집인 ‘조선주조사(朝鮮酒造史)’에도 이강고에 대해 조선 상류사회에서 애용되어오던 술로 설명하면서 제조법을 설명하고 있다. 서유구(1764~1845)가 지은 농업백과사전 ‘임원경제지’에도 이강고에 대한 주방문(酒方文)을 싣고 있다. ‘배의 껍질을 벗기고 돌 위에서 갈아 즙을 고운 베 주머니에 걸러서 찌꺼기는 버리고, 생강도 즙을 내어 받친다. 배즙, 좋은 꿀 적당량, 생강즙 약간을 잘 섞어 소주병에 넣은 후 중탕한다.’

이강주(이강고)는 이처럼 조선 상류사회에서 빚어 마시던 대표적 명주로 전라도와 황해도에서 주로 빚어왔다. ‘이강’이라는 이름은 전통 소주에 배(梨)와 생강(薑)을 넣어 만들었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약소주(藥燒酒)인 셈이다.

지금 이강주는 1987년 전북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96년에 전통식품 국가명인 9호로 지정된 전주의 조정형씨(75)가 빚어 판매하고 있다. 이 ‘전주 이강주’도 전주의 한양조씨 가문에서 대대로 빚어오던 가양주였다.



◆전주 한양조씨 가문에서 빚어오던 이강주

조씨의 6대조가 한양에서 벼슬하다 전주로 내려와 정착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이강주를 가양주로 빚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할아버지가 전주부사, 즉 군수를 하셨어요. 그때는 완산부사라 했는데, 물론 다른 지역 부사도 하셨지요. 족보를 보면 당시 집안 식솔이 60명이었습니다. 그때 술을 많이 빚었는데, 이강주와 함께 다른 술도 빚었지요. 식솔도 많고 손님도 많으니까 약주를 많이 빚었겠지요. 그래서 맑게 거른 것은 제주로 쓰고 고급 손님에게 대접하며, 탁한 것은 농사일 하는 사람들이 마시고 했지요. 그리고 당시는 냉장고도 없는 시절이라 장기간 보관하며 마시기 위해 소주로 내려놓았지요. 그런데 소주로 만들 때 배·생강·울금·계피를 넣어 약소주로 만든 것입니다.”

옛날에는 완주 봉동의 생강이 제일 유명해 진상도 했다. 울금도 전주에서 특별히 재배해 왕실에 진상을 했다. 울금은 중국 황실에서 혈압과 당뇨를 조절하고 정신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용되던 것인데, 조선 왕실로 도입돼 재배하기에 적당한 환경인 전주에서 특별 재배되었다. 전주 배도 물론 유명했다.

진상품이던 이런 좋은 것들을 모두 넣어 이강주를 빚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주 한양조씨 가문의 며느리들에 의해 이렇게 가양주로 빚어오던 이강주는 조씨에 의해 그 맥이 이어져 가양주를 넘어 세상 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선보이게 되면서 대중화되었다. 조씨는 1980년대 초부터 이강주 빚기에 나섰다. 이강주뿐만 아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전통주 연구를 시작해 민속주 200여 가지를 직접 빚으며 전통주 살리기에 매진했다.


◆최고 품질의 진상품을 재료로 빚은 약소주

이강주는 전통 소주를 빚은 다음 배와 생강 등의 추출액을 더해 숙성하는 방법으로 완성한다.

먼저 밀 누룩과 멥쌀 고두밥, 물로 술을 담근다. 잘 발효시켜 거른 약주를 소주고리에 넣어 소주를 내린다. 이 35도 소주에 배·생강·울금·계피·꿀(한봉꿀)을 넣어 1년 이상 숙성시킨 후 거른다. 이렇게 해서 완성되는 전주 이강주는 알코올 도수 19·25·38도 세 종류의 이강주로 출시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강주의 알코올 도수는 25도이나, 전통의 맛을 유지하면서 서구인의 취향에 어울리는 맛과 향을 조화시킨 19도 이강주와 높은 도수를 선호하는 중국인들을 위한 38도 이강주를 출시함으로써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강주 재료에 대한 동의보감의 약효 설명이다. ‘배는 폐를 보하고 신장을 도우며, 담을 제거하고 열을 내린다. 종기의 독과 술독을 푼다. 생강은 따뜻한 성질이 있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소화를 돕는다. 울금은 성질이 차며 맛은 맵고, 간장 해독 촉진과 담즙 분비 작용 등 효과가 있다. 계피는 속을 따뜻하게 하고 혈맥을 통하게 하며,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위와 장을 튼튼하게 한다. 벌꿀은 오장육부를 편안하게 하고 기운을 돋우며, 비위를 보강하고 아픈 것을 멎게 하며, 독을 풀 뿐 아니라 온갖 약을 조화시키고 입이 헌 것을 치료하며 귀와 눈을 밝게 한다.’

이런 약재를 쓴 이강주는 옅은 노란색을 띠며, 맛은 달콤하고 매콤한데 많이 마셔도 잘 취하지 않는 편이고 뒤끝이 깨끗한 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통주 복원과 대중화의 선두 주자인 조정형 명인

조정형씨는 전통주를 복원하고 대중화시킨 대표적 주조 명인이다. 전주 이강주는 한때 연 매출이 50억원 정도 되던 때도 있었고, 지금도 10여억원대는 유지하고 있다. 엄격한 유교 집안에서 자란 조씨는 전북대 발효학과를 졸업하고 삼학소주 실험실장으로 입사하면서 양조 인생을 시작한다. 이후 25년 동안 목포 삼학소주, 전주 오성소주, 이리 보배소주 등 양조회사 공장장을 하다가 1980년대 초부터 우리의 전통주 연구와 복원에 나선다. 회사와 집안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전국의 토속주와 가양주, 도서관 등을 찾아다니며 전통주를 연구했다.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가산을 탕진해가며 홀로 제주도로 내려가 그동안 채집한 전통주 비법으로 200여 가지의 술을 직접 빚기도 했다. 1989년에는 그간의 연구결과를 모아 ‘다시 찾아야 할 우리술’을 발간했고, ‘우리 땅에서 익은 우리 술’(2003)도 펴냈다.

가문의 술로 내려오던 이강주도 수없이 많은 제조실험을 거치며 품질을 향상시키고 표준화했다. 그는 이강주로 1987년 전북 무형문화재가 되고 1990년에는 이강주 제조 면허를 취득했다. 그리고 1996년에는 국가 전통식품 제조 명인(9호)으로 지정되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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