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맛있는 이야기 .2] 국수의 도시 대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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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17   |  발행일 2015-11-17 제12면   |  수정 2015-11-17
백자처럼 심플한 대구식 국수…씹기보다 후루룩 국물처럼 들이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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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은 전국 전통시장 중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국수 난전이 형성돼 있다. 여기에는 잔치국수를 비롯해 안동식 건진국수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영남일보 DB


스토리 브리핑
대구는 전국 최고의 국수소비 도시. 국수 종류도 A부터 Z까지 다양하다. 80년대말까지만 해도 대구가 전국 국수시장의 50% 이상을 독점했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공장도 현재 대구에 있다. 바로 북구 노원동에 있는 ‘풍국면’(대표 최익진). 올해 82년 역사다. 부산의 최고 국수공장인 구포국수는 72년 역사. 얼마전 종합편성채널인 채널A의 ‘이영돈의 먹거리X파일’ 검증팀이 전국에서 가장 착한 국숫집을 수소문했다. 어렵사리 한 곳을 찾아냈다. 바로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우리밀원조할매칼국수’인데 직접 밀을 키워서 그걸로 국수를 만든다. 게다가 서문시장 국수 난전은 전국 시장 중 가장 많은 국수 가게가 몰려 있다. 이 정도면 대구 국수가 ‘금메달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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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투명하고 담백한 육수맛과 고명을 자랑하는 대구식 국수의 대표 중 하나인 중구 계산동 금와식당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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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건진국수의 진수를 보여주는 합천할매칼국수. 양념이 고명보다 더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대구식 ‘누른국수’ 명칭은 異說 많아
칼국수와 달리 면발 가늘고 가지런해

1970년대 도심에 공장표 국숫집 성업
90년대 접어들며 칼국수에 흐름 내줘

서문시장, 국내 시장 중 국숫집 ‘최다’
노원동엔 국내 最古 국수공장도 자리



#1. 국수 전성시대의 서막

한말만 해도 밀가루보다 메밀·도토리·전분가루가 더 풍부했다. 국수는 너무 귀해 다들 메밀국수(냉면)·묵·잡채에 더 길들여졌다. 1950년대 미국산 밀가루 수입 덕분에 ‘국수전성시대’가 개막된다.

사람들은 국수와 칼국수를 구분하지 않는다. 국수는 보통 ‘공장표’를 말하고 칼국수는 홍두깨로 밀어 만든 ‘수제국수’다. 일제강점기 남해안 멸치 마케팅 전략으로 기획된 잔치국수는 일제 때 ‘왜국수’, 한국 공장에선 ‘세면(細麵)’으로 불린다. 흥미롭게도 대구는 국수, 부산은 잔치국수, 시골은 칼국수가 강세였다. 시골발 칼국수는 1980년대부터 도심속에서 전성기를 맞는다. 1970년대 대구 공장표 국수가 타지로 팔려나갈 때는 포장지에 반드시 ‘대구명산 국수’란 검인이 찍혔다.



#2. 대구발 국수공장 춘추전국시대

일제강점기 대구를 주름잡은 대표적 국수 공장이 있었다.

삼성그룹을 일군 이병철 창업주가 중구 인교동에 세운 ‘별표국수’와 옛 부민극장 맞은편 ‘닭표국수’였다. 광복 직후 국수공장이 난립한다.

1948년 닭표에 대적하기 위해 권팔수씨(1962년 작고)가 북구 침산동 1501에 ‘소표국수(대양제면)’를 세운다. 이어 왕관 국수, 내당동 봉표국수가 각축전을 벌인다. 이어 말표, 곰표, 백양표, 영양국수, 새농촌, 금성, 달성, 종표, 제비표, 학표 등 무려 30여개가 난립된다. 하지만 다 사라지고 현재 대구에는 풍국면을 축으로 좌우에 소표와 금성 국수 정도가 있다.

풍국면의 전신은 1933년 3월18일 서구 내당동 현재 내당파출소 동편 마루요시(丸吉) 제분·제면 공장. 이때 시스템은 반자동. 1973년 6월 풍국면 노원 공장 준공식을 갖는다. 현재 풍국면은 한 해 6천700만명분의 국수를 판다.



#3. 대구식 국수를 아시나요

1970년대부터 대구에 ‘국수의 봄날’이 찾아 온다.

수제 칼국숫집과 공장표 국숫집으로 양분된다. 물론 처음엔 공장표가 압도한다. 특히 대구 국수 옆에는 항상 암뽕·간·돼지수육이 실과 바늘처럼 붙어다닌다. 노보텔 자리에 있었던 국세청 옆에 국수거리가 처음 형성된다. 국수 및 분식 장려운동 때문에 근처 시청 공무원 등이 특수를 일으킨 것이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범어네거리에 ‘고향집칼국수’, 들안길 ‘봉창이칼국수’,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이 흐름을 수성구 ‘참깨국수’와 신천동 ‘태양국수’ ‘바르미샤브샤브칼국수’ 등이 이어받는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아직 ‘대구식 국수 스타일의 원형’을 잘 모른다. 현재 대구십미에서는 ‘누른국수’로 표기하고 있는데 명칭부터 이설이 있다.

일부에서는 양념장을 넣어서 맛을 낸다고 해서 ‘장물국수’라기도 하고 홍두깨로 반죽을 눌러 국수를 만들어서 ‘누름국수’, 국수 빛깔이 누렇게 보여 ‘누른국수’라는 얘기도 있다. 참고로 안동에는 두 종류의 국수가 있다. 귀한 손님에게 내는 ‘건진국수’와 평소 해먹는 ‘제물국수’다. 건진국수는 꿩육수에 한번 삶아 찬물에 헹궈낸 면발을 메밀소바처럼 먹는다. 제물국수는 육수와 면을 분리하지 않고 한꺼번에 끓여낸다.

아무튼 대구식은 칼국수 스타일은 아니다. 대다수 수제가 아니고 계약된 제면소의 면을 받아서 사용한다. 칼국수는 면발이 거칠다. 대구식은 칼국수보다 면발이 가늘고 가지런하고 곱고 심플하다. 해물육수 대신 멸치 육수, 채소도 얼갈이·청방배추가 선호된다. 고명은 다진 소고기, 볶은 호박채, 김 정도만 들어간다. 여느 업소의 칼국수가 뚝배기 같다면 대구식은 ‘백자’ 같다. 씹어먹는다기보다 후루룩 국물처럼 들이켠다.

이런 속성을 가진 업소는 명덕네거리 근처 ‘명덕 할매집’, 대백 근처 ‘경주할매칼국수’, 경상감영공원 옆 ‘상주전통칼국수’, 계산동 ‘금와국수’, 동산동 ‘별미국수’ 등이 있다.



#4. 전국 최고 서문시장 국수전

전국 시장 중에서 가장 많은 국숫집이 포진해 있는 곳은 서문시장이다.

잔치국수와 건진국수 두 종류가 3군데 구역에서 팔린다. 동산상가 및 주차타워 바로 옆에는 잔치국수 코너, 4지구와 1지구 사이에는 모두 13개의 ‘포차형 국숫집’이 운집해 있다. 점심 때 2층에서 아래를 보면 장관이다. 가격도 일반 업소에 비해 2천원 정도 싸고 특히 고추를 아끼지 않고 내민다. 서남빌딩 뒷골목에는 합천할매, 미광, 진미, 선아, 초선, 삼미, 남양, 손가, 할매2 등 11개가 몰려 있다. 예전에는 가방골목이었는데 너무 후진 곳에 있어 다른 곳으로 옮겨간 뒤 ‘국수골목’으로 변모했다. 모두 안동식 건진국수 스타일.

서문시장의 전설적 국숫집 ‘왕근이’의 하창직 사장은 모친이 지키던 북구 구암동 왕근이(대요식당)로 갔다. 왕근이란 ‘억수로 많이, 푸짐하게’란 의미의 대구 사투리. 칠성시장에는 ‘보문칼국수’가 대표격.

#5. ‘대구 국수 맛 유람’ 이곳부터…

대구의 유명 국숫집을 유람하는 방법은?

워낙 숨은 고수가 많아서 족보를 정리하면서 방문해야 된다. 일단 ‘3대 할매 칼국수’부터 공략하라.

역사가 가장 오래 된 곳은 ‘동곡할매칼국수’, 그다음은 대백 옆에 있는 ‘경주할매칼국수’, 마지막엔 명덕네거리 근처 ‘명덕할매칼국수’. 경주와 명덕은 멸치 육수를 베이스로 하지만 동곡은 육수 대신 면수를 그대로 사용한다. 세곳 모두 양념장이 맛의 원천이다. 여느 칼국숫집에서는 겉절이배추가 양념장 구실을 한다.

동곡할매칼국수는 달성군 하빈면 동곡리 동곡막걸리 공장 맞은편에 자리한다. 여기에 가면 일단 유명 냉면집의 온육수 같은 ‘면수’를 맛봐야 한다. 물이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은 막 칼질이 끝난 생 칼국수를 쉬지 않고 삶아댄다. 면 삶은 물이 숭늉 이상으로 구수하다. 손주연 할머니에서 4년전 단골인 류애경씨가 대를 이은 명덕은 꽁보리밥을 덤으로 준다.

대구 약전골목에는 ‘원조국수’란 작은 간판을 단 주막 같은 칼국숫집이 있다. 바로 김순자씨가 꾸려가는 집인데 이 집은 주문과 동시에 숙성된 밀가루 반죽을 떼어내 홍두깨로 밀고 칼로 잘라 면을 만든다. 이 집 육수는 게를 사용해서 뺀다. 참고로 대구 해물육수의 시작은 90년대 후반 들안길 봉창이해물칼국수다. 최근 그 골목 서쪽에 ‘밀밭국수’가 도전장을 냈다. 정말 비좁고 허름하다. 안동 출신인 여사장이 직접 반죽을 미는데 안동반가의 기품을 갖고 있다.

가창댐에서 헐티재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가다보면 동재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양지마을 초입이 보인다. 길가에 꼭 허물어질 듯 앉아 있는 앉은뱅이 집이 있다. 수십년째 혼자 사는 할머니가 직수굿하게 국수를 끓인다. 국물도 면발도 요란하지 않다. 멸치 육수에 건진국수 스타일이며 김치와 깍두기가 범상치 않다.

콩국수 마니아는 어디로 가야할까.

도청 방향으로 가다가 도청교 건너기 전 침산교회를 끼고 아래쪽길로 우회전하면 보이는 ‘칠성동 할매칼국수’. 이차연 할매의 내공이 담긴 ‘대구 콩국수의 지존’으로 불린다. 콩물에 땅콩가루 등을 섞어낸다.

그 밖에 영남대병원 옆 골목에 있는 ‘미원칼국수’, 팔달교 지나 강북 쪽에선 태전동 ‘순애집’, 달서구 쪽에는 도원동 보훈병원 옆 듬북칼국수와 부산 굴칼국수, 달서구 송현동 참한손칼국수는 즉석 수육이 소문이 났다. 향촌동 성인텍 골목에 가면 대구에서 가장 싸서 실버 데이트족에게 ‘인기짱’인 2천원짜리 잔치국수를 만날 수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공동기획: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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