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대구 활로를 찾아서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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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1-19   |  발행일 2015-11-19 제31면   |  수정 2015-11-19
[영남타워] 대구 활로를 찾아서

글로벌 시대, 도시의 운명은 산업·기업의 성쇠와 연관성이 더 밀접해진다. 미국 디트로이트시가 2013년 파산 신청을 한 것은 자동차 산업의 몰락 탓이 크다. 국내에서도 수년 새 조선과 철강산업의 불황이 깊어지면서 이들 산업의 거점인 거제와 울산, 포항 등도 시쳇말로 죽을 쑤고 있다.

반면,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호두과자와 포도 산지로 알려진 천안·아산은 95년 이후 삼성그룹의 투자 덕분에 이젠 충청지역 산업을 주도하는 핵심 도시로 자리 잡았다. 삼성디스플레이와 SDI, 전자, 지난 5월 코닝으로 경영권이 이관된 옛 삼성코닝정밀소재가 자리 잡은 이후 일자리는 8만개 늘었고 연간 43조원의 돈이 도는 윤택한 도시로 변한 것이다. ‘기생도생(企生都生)’, 즉 기업이 살아야 도시가 산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대구는 어떠한가. 섬유산업 이후 뚜렷한 성장 모델을 찾지 못해 ‘잃어버린 20년’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밀라노 프로젝트, 삼성상용차 등 시행착오와 헛심만 쓴 사업도 적지 않았다. 밀라노 프로젝트의 경우, 감사원으로부터 돈만 쓰고 실효성이 없는 실패한 국책사업의 대표 사례로 지목당하기도 했다.

어찌 됐든 기계·금속·자동차부품의 강소기업을 중심으로 산업을 재편해 기반을 다져가는 형국이지만, 아직도 미흡하다. 대구의 퇴보를 막아줄 뿐 경제활성화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구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C-Auto(전기무인차)’ 프로젝트는 세계 초일류 기업이 앞다퉈 뛰어드는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마치 애플의 아이폰이 휴대폰 시장의 판(板)을 바꿨듯이 무인차는 IT·자동차산업 경계를 무너뜨리는 혁신산업으로 인식된다. 애플, 구글은 2020년쯤 무인차를 양산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으며, 다쏘그룹을 비롯한 IT기업 역시 무인차 개발 경쟁에 합류한 상태다.

대구도 이 대열에 살짝 발을 내디뎠다. 최근 르노, 다쏘와 협력해 무인차 거점도시로의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르노는 전기차 점유율 선두 그룹이며, 다쏘는 ‘린엔고’라는 무인차를 개발했을 정도로 이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는 기업이다. 여기다 구글 무인차에 핵심 기술을 제공한 발레오그룹과 손을 잡고 지역의 부품산업을 무인차에 맞춰 고도화시킨다는 게 대구시의 복안이다.

해외기업과의 연합을 통해 경쟁력을 갖춘 뒤 국내 대기업을 유치한다는 전략은 설득력 있어 보인다. 수도권에 눈을 맞추고 있는 정부와 지방 투자에 시큰둥한 국내 대기업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이라고 여겨진다.

대구는 사실 C-Auto 프로젝트의 최종 종착지로 내심 삼성그룹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컨트롤타워를 삼성이 지원하는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에 맡긴 것도 장기적인 포석인 셈이다.

삼성은 자동차 트라우마 탓에 “바퀴 달린 사업은 하지 않겠다”며 재진출설을 일축하지만, 상황은 삼성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이미 IT업체와 자동차 제조사는 무인차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한 기싸움을 펼치고 있다. 삼성 역시 무인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와 전기모터, 반도체 등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애플보다 앞서 무인차를 만들어 퍼스트무버(First mover)로 나설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다 C-Auto 프로젝트는 대구 입장에선 남다른 의미가 있다. 초거대 다국적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비수도권, 내륙도시라는 한계는 물론 국경과 언어의 경계를 넘어 글로벌 노마드(Nomade)로 나갈 수 있는 기회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이런 시도를 통해 얻어지는 노하우가 대구의 먹거리를 찾는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는 점은 부가적인 소득이다. 신세계를 찾아나선 권영진호(號)의 항해가 기대되는 까닭이다.
윤철희 1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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