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을 넘어 공화국 대한민국으로 .5] 의료 갈등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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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2-04   |  발행일 2016-02-04 제7면   |  수정 2016-02-04
“의료기기 쓰겠다” “안된다” 또 싸우는 한·양방…중국을 본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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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보건복지부의 직무유기에 대한 대한한의사협회의 입장 기자회견에서 김필건 회장이 초음파 골밀도 측정기기를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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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오트마 클로이버 세계의사회 사무총장이 한의사의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문제를 둘러싸고 양·한방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한의학의 치료 효과를 높이고 그 효능을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초음파 등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한의사 측의 요구에 의사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 문제는 양측의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두 단체의 감정 싸움에 국민만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정부의 적극적 지원하에 양·한방 협진으로 국민에게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중국을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한의학을 없애야 한다?

지난달 12일 의사단체인 의료혁신투쟁위원회(의혁투)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초음파 골밀도 측정기를 기자들 앞에서 시연한 대한한의사협회 김필건 회장을 무면허 의료 행위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의혁투는 “김 회장은 의사 면허가 없는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는 골밀도 검사기를 많은 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용했다"면서 “의료법 제27조1항 무면허 의료행위 금지조항을 어겼다"고 고발 사유를 밝혔다.

양측 간 감정싸움도 이어졌다. ‘한의학을 없애야 한다’는 등의 도를 넘는 한의학 비방에 대한한의사협회는 모든 공식자료에 ‘양의사’ ‘양의사단체’ 등 ‘양’자를 붙이는 식의 대응을 벌인 것.


의료장비 시연놓고 갈등 격화
무면허 행위 고발에 서로 비방

한의사協 “2월중엔 본격 사용”
의사協 “정부허용땐 강력투쟁”
해묵은 갈등에 국민들만 피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 쾌거 中
원칙적으로 중의·서의 같이 중시


이에 맞서 의사단체는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절대불가’라는 입장이다. 심지어 한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를 사용할 소양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발언까지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국민의료현안협의체를 만들어 여섯 차례 협의를 진행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한한의사협회는 “협회는 2월 중 의료기기교육센터 운영 등을 통해 본격적인 의료기기 사용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고, 대한의사협회는 “현대의료기기를 한의사가 쓸 수 있도록 허용하면 의료계는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 말기암 환자 고통 외면하는 의료계

양측의 갈등은 이뿐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련)는 ‘한방 암치료제 넥시아(Nexia) 양방 버전 아징스 75(AZINX75) 비소세포폐암 유지요법 임상시험 방해사건 진실규명 촉구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한의사협회 전 정책이사의 방해 때문에 넥시아 효능에 대한 검증 작업이 불발됐다는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넥시아는 최원철 단국대 부총장이 옻나무 추출물을 이용해 만든 한방 암치료제로, 2006년 ‘암치료 근거중심의학 심포지엄’에서 최 부총장이 넥시아로 치료한 말기 암환자 216명 중 114명(52.7%), 그중 4기 말기 암환자 22.4%가 5년 이상 생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그러나 발표된 임상연구사례의 환자들은 병원에서 방사선치료 등의 항암치료와 병행하거나 치료를 마친 뒤 넥시아를 복용했기 때문에 넥시아의 독자적 효과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에 최 부총장은 2009년 임상시험계획을 승인받아 임상연구를 진행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임상시험 역시 2013년 중단된 상태다.

환련에 따르면 최 부총장 측 법률대리인은 “당시 의협 정책이사인 한정호 교수가 병원의 관계자에게 임상시험에 협조하면 고발하겠다고 협박해 (임상시험이) 중단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기종 환련 대표는 “환련은 한정호 교수가 이 같은 행위로 임상시험을 중단시킨 적이 있는지 조사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의협에 요청할 것”이라며 “환자들이 바라는 것은 임상시험을 통한 효능 검증뿐이다. 의혹이 해결돼 효능 검증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넥시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한 알 가격이 3만원에 달한다. 최소 1년 동안 복용해야 효과가 나타나고 하루에 두 개씩 복용해야 하므로 한 해 약값만 약 2천290만원이 소요된다. 의료계의 갈등으로 말기암 환자와 가족들이 검증되지 않은 약을 고가에 사고 있는 현실이 10년 넘도록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이웃 국가인 중국은 헌법에 ‘중의학을 육성·발전시키라’는 문구를 넣을 정도로 전통의학 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나아가 양방과의 통합으로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평도 나온다.

◆‘중의’와 ‘서의’ 중시하는 중국

대한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중의학을 담당하는 위생부 중의약관리국의 지난해 예산은 1조3천634억원으로 한국 보건복지부 한의약정책관실의 220억원보다 60여배나 많다. 중국중의과학원 연구원은 6천여명으로 산하병원 6개, 관련 연구기관도 8개다. 반면 한국 한의학연구원은 143명에 불과하고 임상연구를 위한 산하 한의병원은 없다.

중국정부는 중의(한국의 한의사)와 서의(의사)를 같이 중시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중의학은 내과, 외과, 신경과 등 대학병원에서 다루는 모든 과가 망라돼 있다. 또 중의는 초음파, MRI 등 최첨단의료기기를 자유로이 사용해 진료데이터를 축적해 치료 효과를 검증한다.

중의병원은 치료와 연구는 물론 임상과 중약제제 개발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중약을 양약과 같이 제형화한 중약제제는 6만여종에 달하고, 해외로 수출되는 중약제제 규모는 연간 4조원을 넘는다.

이 덕분에 지난해 중의과학원 소속 투유유 연구원 개똥쑥(한약재명 ‘청호’)에서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투유유 연구원은 수상 소감으로 “중국의 전통의약이 인류에게 준 선물”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개발한 말라리아 특효약인 아르테미시닌과 관련된 기록이 서기 4세기 동진시대 의학자 갈홍이 지은 ‘주후비급방’이란 의서에 ‘한 줌의 개똥쑥을 즙으로 만든 후 마시면 학질에 효험이 있다’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중의학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한의학은 양방과의 갈등과 정부의 무관심으로 오히려 퇴보하는 모양새다.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한의약의료서비스 선진화, 한약품질관리체계 강화, 한의약 연구개발핵심기술 확보, 한의약산업 글로벌화 등 4개 부분에 5년 동안 1조99억원을 투자하는 2차 한의약육성발전계획(2011~2015년)을 짰다. 그러나 실제투자는 5천732억원에 그쳤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한약의약품에 대한 전체 급여등재품목수 역시 1987년 56개 이후 28년간 한 건도 늘지 않았다. 반면 양약의 경우 최근 3년간 1천여개가 등재되는 등 2015년 1월 현재 급여등재 양약 수는 1만7천115건에 이른다. 의료정책 자체가 양방에 치우쳐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국의 의료전달체계 마지막 3단계를 담당하는 종합병원은 의사만 개설이 가능해 한의학이 의료전달 체계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의대 교수는 “작년 메르스 사태 당시 중국은 환자 발생시 중의학 치료를 병행한다는 진료지침을 발표했다. 반면 국내에선 한의사협회가 메르스 공동치료를 제안하자 의사협회가 거부한 바 있다”며 “뛰어난 한의학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양·한방 갈등과 정부의 무관심으로 한의학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국민”이라고 말했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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