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늑장행정이 초래한 혼란

  • 남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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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21   |  발행일 2016-06-21 제30면   |  수정 2016-06-21
[취재수첩] 늑장행정이 초래한 혼란

문경에는 삼국시대에 축성한 오래된 산성이 하나 있다.

오정산 자락의 고모산성으로 본성 둘레 1천300m, 익성인 석현성 400m 규모로 5세기에 군사방어용으로 만들어졌다. 각종 기록상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는 삼국시대뿐 아니라 후삼국시대 왕건, 임진왜란, 한말의병전쟁, 6·25전쟁까지 다양한 전투가 이어져 왔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와 문화재적 보존의 필요성 때문에 당국이 10여 년 전부터 문화재 지정을 추진해 왔고, 곧 지정을 받을 상황이 됐다.

하지만 문제는 산성 아래쪽의 땅 주인이 바뀌면서 늦어진 문화재 지정이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산성 아래에 위치한 휴게소가 수십년째 영업을 해왔고 최근 휴게소가 매매되면서 토지 주인이 바뀌었다. 새로 사들인 측에서는 대대적인 리모델링과 증축에 나섰다. 수십억원을 들여 휴게소를 사들인 측에서는 당연한 과정이지만 휴게소 증축이 문화재 경관을 해친다는 여론에 부딪히면서 10년이 넘도록 문화재 지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늑장행정이 도마 위에 올랐다.

2005년 경북도 문화재 신청을 처음 시작한 고모산성의 문화재 지정은 유교문화권사업 추진으로 2006년 문경시가 지정신청을 취하했고, 3년 뒤 다시 지정 신청을 했으며, 2009년 말 경북도는 문화재 지정을 가결했다.

하지만 경북도는 고모산성이 국가지정 문화재 가치가 있다며 승격준비를 요청했고, 3년 뒤인 2012년 문경시는 국가지정 사적 신청을 했으나 보완 등의 절차를 거치느라 올 1월이 돼서야 다시 사적 지정신청을 문화재청에 하게 된다. 그리고 또 보완작업을 하느라 아직 지정을 못 받은 상태다.

문화재적 가치야 이미 검증을 받았으니 언젠가 문화재 지정이 되는 것은 논란이 없다. 휴게소를 사들인 측에서는 문화재보호구역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검토해 매입했을 것이고 아직 고모산성이 문화재 지정 전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들의 증축을 저지할 행정행위는 근거가 미약하거나 애매할 수밖에 없다.

현재 영업 중인 휴게소를 고치는 것이 문제될 것이 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건물형태가 특정 종교단체의 일률적인 모양을 띠고 있는 데다, 높이도 경관을 가릴 정도로 상당히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지역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문화재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휴게소 건물이 1천500년이나 된 산성 밑에 새로 들어서는 모양새가 되니 당국이 막아달라는 것이 주민들의 요청이다. 문경시가 10여 년 전부터 산성의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면서 경북도 문화재로라도 지정을 받았더라면 이번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이 산성에 대한 학술조사는 훨씬 전부터 이뤄져 문화재 보호 대책은 진작 세워야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화재 지정은 인근 사유재산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는 있지만 때를 놓치면 문화재가 훼손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남정현기자<경북부/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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