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김영란법’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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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4   |  발행일 2016-09-24 제23면   |  수정 2016-09-24
[토요단상] ‘김영란법’ 그 이후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 김영란은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을 못내 좋아했다. 사석에서 “이재용처럼 청렴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그의 부인과 경기여고 동창이자 친한 친구 사이라는 점이 작용을 했으리라 싶다. 그래도 그렇지 대통령을 아무나 하나. 그녀의 정치적 감각은 꽝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맑고 깨끗한 세상을 꿈꾸는 소신만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싶었는데, 결국 그녀가 일을 냈다.

다음 주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된다. 이 법은 헌정사상 최초의 포괄적 반부패법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나아가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선례가 없는 데다 부정청탁 등의 개념이 모호해서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술집마다 식당마다 삼삼오오 모여앉아, 내가 맞다 네가 맞다, 떠들어 대는데 사람마다 주장이 달라 시끄럽다.

예를 들면 이 법에는 100만원이라는 금액이 자주 등장을 한다. ‘직무관련성이 없어도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은 안 된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90만원은 받아도 상관이 없을까. 물론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에는 100만원 이하라도 문제가 된다.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형법상 뇌물죄로 처벌이 가능한 행위가 과태료만 문다니 이것도 이상하다. 이렇게 따지고 들면 끝이 없다. ‘란파라치’도 헷갈릴 지경이다.

적용범위도 논란이 많다. 언론이 적용대상이라면 포털사이트도 포함되어야 하지 않나? 정기간행물은 어떻게 되나? 대학교수가 적용대상이라면 명예교수와 시간강사는? 사학재단의 이사진은 그렇다 치고, 급여도 받지 않는 자문위원들은 왜? 그러고 보니 지역의 어느 지방대학 이사장을 맡고 있던 검찰 총장 출신의 인사가 잽싸게 사표를 냈다는 소문도 들린다.

한때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이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말이 나돌아 누리꾼들 사이에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실제로 법 제5조에서 부정청탁의 예외조항을 두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때문에 모든 선출직 공직자들이 브로커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우려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선출직 공직자들도 적용대상에 포함된다. 음식 3만원, 선물 5만원, 부조 10만원이 모두 해당된다. 대통령도 그럴까?

논란은 더 있다. 당초 이 법은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가 핵심내용으로 들어있었다. 그러나 국회 통과과정에서 너무 포괄적이라는 이유로 통째로 빠졌다. 그래서 반쪽짜리 법이 되었다.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로 한정한 것도 문제다. 당초에는 부모, 자녀, 형제, 자매가 다 포함됐고, 같이 살 경우에는 장인, 장모, 사위, 며느리, 처남, 처제까지 들어있었다. 전직 대통령들을 보더라도 부인보다 형제, 자녀가 더 문제가 많지 않았나.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김영란법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법이 ‘복지부동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일하기 싫은 공무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핑곗거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김영란 그녀의 입장은 추상(秋霜) 같았다. 이 법은 ‘더치페이법’이자 ‘인맥단절법’이라고 잘라 말한다. 각자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계산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것이다. 그리고 인맥을 쌓기 위해 날마다 술집을 전전하는 버릇도 없애자는 것이다.

그녀는 말했다. “졸속입법, 위헌논란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시행도 하기 전에 개정 얘기를 꺼내는 것은 너무나 성급하다.” 그리고 호소했다. “이 법의 가장 큰 적은 우리 자신이다. 부패심리와 싸워, 구습과 관행을 고쳐나가자.” 무조건 김영란 그녀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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