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에 관하여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6-09-29   |  발행일 2016-09-29 제30면   |  수정 2016-09-29
20160929

감기처럼 인간 감정도 전파
불만·불확실성에 대한 불안
삶을 우울하고 두렵게 전환
웃음은 부정을 극복하게 해
내게 속한 것들에 더 집중을


가을이 오면 때로 안톤 슈낙의 산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생각난다. “울고 있는 아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래서 가을날, 비는 처량히 내리고, 그리운 이의 인적은 끊어져 거의 일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독일 작가의 산문이 교과서에 실린 이유는,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작가의 섬세한 관찰과 낭만적 서정을 사춘기 학생들이 한 번쯤 느껴보길 바라서였을까. 이 글에 표현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슬픔을 느끼는 미세한 세포들을 가만히 일깨우는 듯하다.

어떤 사람의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공감, 감정이입, 감정의 전이 혹은 전파라고 하는데, 감기 바이러스만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도 전파되고 전염되고 전이된다. 정, 기쁨, 의로움, 슬픔, 화, 분노 같은 감정들.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기쁨보다는 슬픔, 즐거움보다는 우울함, 행복보다는 불행의 감정에 더 쉽게 전염이 된다는 것이다. 웃는 것보다 우는 것, 누군가를 웃게 만들기보다 화나게 만드는 게 더 쉽다. 기쁘고 행복한 감정은 애쓰고 노력해야 얻어지는 반면 슬프고 우울한 감정은 수시로 나를 사로잡는다. 이제는 미처 손쓸 수 없는 지나간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과 후회, 현재 충족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과 결핍,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확실함에 대한 불안과 걱정 같은 것들이 나를 슬프고 우울하고 두렵게 만드는 것들이다.

언제 보아도 긍정적 에너지를 주는 좋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트랩 대령 아이들의 가정교사가 된 마리아는, 폭풍우 치는 밤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방으로 달려온 아이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면 무서움이 사라질 거라고 말한다. 장미 꽃잎에 맺힌 빗방울, 아기 고양이의 수염, 코와 눈썹에 내려앉은 눈송이들, 갈색 소포…. 잠옷을 입은 채 침대에서 함께 웃고 노래 부르며 아이들은 금세 두려움을 잊고 마리아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마리아 역의 줄리 앤드류스와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는 내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흐른다.

긍정적 감정 중에서도 웃음은 특히 부정적 감정을 억제하고 극복하는 힘을 주는데, 억지로 웃는 웃음에도 우리의 뇌는 진짜 웃음에 보이는 것과 똑같은 반응을 한다고 한다. 웃을 때 사용되는 얼굴 근육을 자극하면 행복했던 기억을 더 많이 떠올리고 같은 책이라도 더 재미있게 읽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웃음은 전염성이 강해 혼자보다 여럿이 모였을 때 훨씬 더 많이 웃게 된다고도 한다. 웃음 나라의 신비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보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생각하면 그 마법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맑고 푸른 하늘에 흩뿌려진 하얀 깃털 구름, 얼굴을 간질이는 부드러운 햇살과 상쾌한 바람, 다정한 이들의 관심과 배려 같은 것들을 생각한다면.

고대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 ‘우리에게 속하지 않은 것’과 ‘우리에게 속한 것’을 구분하라고 한다. 전자는 육체, 공동체, 신분 등 우리 자신의 행동과 무관하게 이미 결정된 모든 것이고, 후자는 믿음, 행동, 감정 등 우리 자신이 행하는 일들이다. 그는 후자인 ‘우리에게 속한 것’ 영역에서 진정한 개인의 자유와 의지가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생각해보면 내 힘이 미치지 않은 것들에 대한 걱정과 후회도, 내 힘이 미치는 것에 대한 염려와 불평도 모두 나의 선택이다. 나는 슬픔 대신 기쁨을 선택할 수 있으며, 그것은 전적으로 내 자유의 문제다. 그렇다면 ‘내게 속하지 않은 것들’을 내려놓고 ‘내게 속한 것들’에 집중한다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아니라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을 더 생각해본다면, 내 슬픔과 걱정의 반 이상은 저절로 사라지고 더 멋진 가을과 세상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안혜련 참문화사회연구소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