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호랑이 대신 범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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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06   |  발행일 2016-10-06 제29면   |  수정 2016-10-06
[기고] 호랑이 대신 범을 쓰자
최영배 시인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호랑이라는 동물은 없었다. 호랑이라는 동물이 등장한 기원은 문헌에 확실히 기록돼 있다. 1924년 침략주의자 일본이 이 땅을 식민지화하고 조선총독부가 이 땅을 지배할 때다. 그때 개과 동물인 늑대, 이리, 승냥이 등 맹수가 민가에 출몰해 사람을 해치고 가축을 물어 죽이는 등 피해가 심각해지자 일본 총독부의 지휘 아래 군경과 포수들을 모집해 맹수 사냥에 나섰다. 그러나 일본의 속셈은 앞에서 말한 맹수 사냥이 그 목표가 아니었다. 그들 섬나라에는 없는 ‘백수의 제왕’이라 불리던 ‘범사냥’이 목적이었다.

범사냥은 그들의 축제였고, 그렇게 잡은 범은 가죽을 벗겨 말렸다. 범가죽은 고가품이고 희귀품이었다. 그들에게는 범가죽이야말로 상전에 바치는 최고의 충성 선물이었다. 한번 재미를 본 그들은 연중행사처럼, 우리나라 백두대간을 타고 오르며 천적이 없던 범의 씨를 말리듯 포획했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게 범의 존재는 단순한 맹수가 아니라 영험하고 신성한 동물로서 경외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사찰에 들러보면 산신각이 있고, 그 산신각 탱화에는 흰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이 구름 위에 앉아 계신다. 그분이 우리 민족 민간 신앙의 한 대상인 범이다. 그뿐 아니다. 조상이 돌아가시어 산에서 장례를 치를 때 또는 묘제를 모실 때 반드시 제일 먼저 산신에게 제사를 올린다.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정서 속에 범은 두려우면서도 친밀감을 지닌 동물이었다.

그런 범을 그들은 마구잡이로 사냥하고, 그들 뜻대로 범(虎)에 이리(狼)를 붙여 호랑이라 불렀다. 그때부터 호랑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 또한 해괴하다. 어떻게 고양이과 동물인 범에다 개과 동물인 이리를 붙여 고양이과와 개과가 혼혈된 듯 비합리적이고 자연 과학으로도 인정되지 못할 이름을 붙였을까. 그래도 그것까지는 파시스트들이 자기 마음대로 지은 이름이라 그렇다고 치자.

왜 우리는 일제 식민치하에서 벗어난 지 7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들이 부르던 대로 호랑이라 쓰고 있을까. 우리의 교학과 한글 학자들은 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한 단어마저도 바로잡지 못하고 멀거니 눈 뜬 장님이 돼 청산하지 못한 과거에 그냥 머물러 있는가.

더욱 가관인 것은 표준어 사전에서조차 ‘범: 호랑이의 또 다른 이름’이라 적고 있다. 주객이 전도된 인식이다. 민족의 자긍심마저 외면한 채 반성조차 하지 않으려는 의존적 세력들의 민낯과 과거로의 회귀를 본다. 더하여 우리글, 우리말 하나도 씻겨내어 제자리에 앉히지 못하면서 무슨 국론통일이라 외치는가. 우리 글, 말을 향하여 세계 언어학자들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언어보다 우수한 글, 말이라고 칭찬했듯 글, 말이 없는 소수민족 국가에서 우리 한글을 그들 문자로 사용하고자 해서 각 사회단체와 정부가 나서서 그 일을 한참 진행하는가 싶더니 감감무소식이다. 나라의 경제 사정이 튼실치 못하여 그런 한글 보급 및 교육 사업에 투자할 능력이 없노라 하면 아쉽지만 어찌할 수 없다. 그런 일을 나 같은 일반 대중이 왈가왈부할 범위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446년, 지금으로부터 570년 전 세종대왕께서 반포하신 훈민정음-우리말 우리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한글날이 다가오는 시점에 오랫동안 묵혀왔던 나의 생각 중 하나, 즉 범과 호랑이 하나만이라도 고쳐 바로잡아 자주와 자존을 잃어버린 채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지 못한 의존·수구세력으로부터, 침탈의 역사로부터 해방시켜 우리 가슴속에 살아있는 범 하나라도 제대로 된 우리말 큰 사전에 당당히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정부와 교육부는 이 잘못된 사실을 모든 국민에게 알리고 ‘호랑이라는 명칭을 범이라 고쳐 쓴다’ 하고 모든 호랑이라는 이름을 지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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