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소고기국밥’과 깔끔한 ‘소바’로 속 채우고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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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28   |  발행일 2016-10-28 제34면   |  수정 2016-10-28
푸드로드 경남 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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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식 국밥과 달리 콩나물과 후춧가루가 들어간 종로식당의 소고기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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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바위의 기운을 품은 종로식당의 가마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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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산 정상에 있는 도깨비공원 내 망개떡 포토존.

군청 인근 66년 전통의 종로식당 국밥
욕쟁이 할매-박정희 대통령 일화 유명
일명 ‘대통령국밥’ 불리며 옛맛 이어

콩나물해장국 비주얼에 맵지 않고 밍밍
국에 밥을 만 형태로 후춧가루 뿌려내
얼큰한 대구식과 확연히 다른 맛 선사

삼성·금성·효성 ‘3개 星 낳은’ 솥바위
한우산 억새원·자굴산 일붕사 볼거리


의령읍 중동리 종로식당은 의령군청 인근 골목에 썰렁하게 앉아 있다. 허접스러운 다른 메뉴도 없다. 오직 소고깃국에만 올인한다.

44년 전 어느 날 여기서 재밌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1972년 4월22일 의병기념비와 망우당 동상제막식이 있었다. 이날 한 그룹의 청와대 검식관이 예정에도 없이 이 식당에 들이닥친다. 온 집안을 휘젓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주방에 들어와 국밥 재료까지 조사했다. 뿔이 난 주인 할매는 버릇없는 놈들이다 싶어 크게 호통을 쳤다. 전주 콩나물국밥의 대명사로 불리는 ‘삼백집’의 욕쟁이 할매와 비슷한 포스의 이봉순 할매였다. 우연의 일치로 삼백집 할매 이름도 이봉순이다. 잠시 후 박정희 대통령이 정해식 경남도지사와 함께 국밥을 먹으러 들렀다. 그런데 할매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훗날 이 집 국밥은 ‘대통령국밥’으로 통한다.

이 식당은 6·25전쟁이 터지던 해에 태어났다. 의령장에서 전을 펴고 소고깃국에다 밥을 토렴해 팔기 시작하면서 소문이 난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하루 소 서너 마리씩 팔았다. 지금은 일주일에 4마리 정도를 판다. 이씨 할매는 44년간 국밥을 말아 팔다 94년 가마솥을 맏며느리에게 물려주고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가게 옆에 같은 소고기국밥을 파는 중동식당이 인접해 흡사 ‘국밥골목’ 같다. 점심·저녁때가 아니면 골목은 너무 휑뎅그렁하다. 근처에 일제강점기에 지었을 것 같은 건물이 드문드문 보인다. 너무 풍화돼 허물어지기 직전인 회벽은 되레 멋진 포토존이다. 종로식당은 70년대 신축된 양옥집. 리모델링해야 될 정도로 낡았다. 방 안 곳곳에 해묵은 고가구, 자수병풍과 동양화 등이 걸려 있다. 오래된 장판 같은 질감이랄까. 남도의 유명 한정식 안방 같은 멋스러움이 묻어난다. 젊은 손님들은 그 늙은 물건에서 위안을 받는다.

대문 바로 왼편에 국 끓이는 부엌방이 있다. 여느 국집에선 보기 힘든 공간이다. 가마솥이 ‘본존불’처럼 중심을 잡고 있다. 국이 완성되면 보조솥으로 옮겨 뭉근하게 덥힌다. 벌겋고 얼큰한 경상도 본토 국 맛에 비하면 상당히 묽다. 경남권은 대구와 달리 국이 밍밍하고 맵지 않다. 의령에선 청양고추 같은 매운 고추는 잘 먹지 못한다. 대파는 안 보이고 콩나물이 주재료라서 콩나물 해장국 같다. 후춧가루까지 뿌려 내는데 하여튼 대구식 소고깃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솔직히 이 식당은 언론에 너무 많이 노출돼 이젠 관광업소 같다. 일부 토박이는 몰려드는 관광객을 피해 근처 수정식당, 오서방식당 등으로 가기도 한다. 물론 종로가 한강 이남에서 소고기국밥으로 한 세월을 풍미한 ‘노포(老鋪·오래된 가게)’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아쉽게도 대를 이으면서 맛이 변형된 것 같다.

대한민국 국밥문화를 추적하다 보면 세 종류의 ‘경상도표 소고깃국’을 만나게 된다. 바로 경남 의령·함양, 그리고 대구식이다. 대구식은 대체적으로 붉은 기름이 두껍게 깔리고 밥과 국이 따로 나온다. 빻은 마늘이 듬뿍 들어간다. 함양식은 갈비탕 스타일로 굳어졌다. 의령식은 국에 밥을 만, 탕반 스타일의 국밥 형태로 안착했다. 대구식이 ‘매운탕 스타일’이라면 의령식은 고춧가루가 없는 ‘지리 스타일’.

◆한우산의 억새원과 신령한 바위들

이 고장엔 영험한 바위에 기도를 드리러 오는 이들이 많다. 신령한 세 바위 때문이다. ‘솥바위·탑바위·코끼리바위’다. ‘의령의 3대 기도처’로 불린다. 이 셋은 자잘한 석판이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인 모양이다. 호암의 생가 뒤뜰 절벽도 비슷한 형국이다. 의령군은 이 세 바위에 호암의 생가를 엮어 ‘부잣길 역사문화 둘레길’로 스토리텔링하고 있다. 주말에는 1천명 이상 찾는다.

둘레길 첫걸음은 정곡면을 가로지르는 월현천 남쪽 둑길을 걷는 2㎞ 구간. 평지가 끝나고 제법 가파른 산길을 따라 300m 정도 오르면 첫 쉼터 격인 탑바위를 만나게 된다. 탑바위는 의령군이 선정한 의령 9경 가운데 제6경. 사진 찍기 좋은 명소다. 탑바위의 높이는 8m. 전설에 따르면 애초 탑바위에는 암·수탑이 나란히 있었다고 한다. 건너편 함안군에서 해마다 곱사등이와 언청이가 한 명씩 태어났는데 그 연유를 물으니 강 건너 절벽에 있는 두 개의 돌탑 때문이라고 했다. 얘기를 들은 함안의 장정 수십 명이 돌탑 하나를 쓰러뜨렸는데 그 순간 장정들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후 함안지역에서 곱사등이나 언청이는 태어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탑바위에서 내려와 호미교를 건너, 예동마을을 거쳐 무곡마을에 이르는 4.6㎞ 구간은 강과 들녘을 바라보며 걷는 전형적인 힐링 코스. 무곡마을을 지나면 본격적인 호미산 코스에 접어든다. 호미는 말 그대로 호랑이 꼬리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 그러나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00m 정도여서 큰 부담은 없다. 정상 부근에 이르면 허물어진 호미산성(경남도 기념물 제101호)을 만나게 된다. 산성의 대부분은 무너졌고, 200m 정도 토성 흔적만 남아 있다. 잊힐 뻔한 산성은 망우당의 전적지라는 역사의 현장으로 되살아난다. 호미산은 호암 이병철 생가의 풍수지리와 연관된 지형이어서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필수코스다.

의령군 관문인 남강 한쪽에는 솥뚜껑 모양의 바위가 있다. 물에 잠긴 바위 밑에는 가마솥의 발처럼 세 발이 달려 있어 ‘정암(鼎岩)’, 또는 ‘솥바위’로 불린다. 논개의 의혼이 묻어있는 진주 촉석루 의암(義巖)과 함께 남강의 양대 바위다. 정(鼎)은 예로부터 부귀를 뜻하고, 풍수지리설에서는 식복과 재물을 상징한다. 솥바위 전설에는 20리(8㎞) 반경 내 부귀가 끊이질 않고, 나라에 공헌하는 인물이 태어난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 반경 안에서 이병철 회장,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 효성그룹 조홍제 회장이 태어났다. 이들은 솥바위를 중심으로 일정한 간격과 거리를 두고 태어난 데다 기업명에도 삼성·금성·효성, 모두 별(星)을 사용했다. 이어 두 명의 재벌 총수가 추가됐다.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의 GS 허만정 회장, 의령군 용덕면 정동리의 삼영 이종환 회장이다.

둘레길 종착지를 향한 걸음은 성황리 소나무에서 또 한 번 멈춰선다.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성황당을 따 마을 이름까지 ‘성황리’다. 마을 뒷산 경사면에 있는 소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59호. 높이 13.5m, 둘레 4.8m의 크기로 1∼2.7m 높이에서 가지가 4개로 갈라지고 옆으로 넓게 퍼져 경이롭다. 성황리 소나무를 배경으로 한 일몰도 장관이다.

그 일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요즘 캠핑족에게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한우산 정상의 억새원이다. 경남 화왕산 정상부의 억새 정도는 아니지만 늦가을 일몰녘에 오면 지리산급 일몰·월출을 품을 수 있다.

한우산은 별 사진을 찍거나 백패킹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알려진 명소다. 캠핑데크까지 완비됐고 정상 근처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우산은 ‘겨울에 내리는 차가운 비’와 같다고 해서 ‘찰비산’으로 불리다가 ‘찰 한(寒)’과 ‘비 우(雨)’ 자를 써서 한우산으로 개명된다. 의령읍을 지나 가례면으로 들어가는 지방도 1037번을 타고 갑을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좌측 자굴산 방향으로 좌회전, 한우산 정상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임도를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서 정상 근처 주차장이나 나무계단 앞에 주차를 하고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멀리 풍력발전기가 돌고 있고 차도와 임도가 뱀처럼 구불거리며 기어가는 라인이 선명하게 보인다. 정상부에는 데크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다. 커플용 벤치에 앉으면 산과 조각보처럼 짜인 논의 묘한 대비를 만끽할 수 있다. 봄에는 철쭉 명소다. 도깨비공원에 가면 아무리 무뚝뚝해도 웃음을 쏟아내게 만든다는 의령의 명물 망개떡 조형물이 포토존으로 마련돼 있다.

한우산의 임도는 사진작가에게 큰 영감을 준다. 꼬불꼬불 15㎞ 넘게 한우산을 감아 도는 임도의 산세는 여느 산에선 쉽게 만나기 어렵다. 90년대 한 감독이 그 풍광에 반해 영화의 주요 촬영지로 찜한다. 98년 상영된 이광모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마지막 장면이 이곳의 한 임도에서 촬영된다. 이 감독은 어느 자동차 회사의 동호회 소식지에 실린 사진을 보고 이곳을 찾았고,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리얼하게 묘사하기 위한 최적지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우산은 의령의 최고봉인 자굴산을 마주하고 있다. 산행을 즐기고 싶다면 궁류면 벽계마을에서 등산로를 따라 한우·자굴산을 거쳐 가례면으로 가는 코스가 제대로 된 산행이다. 하지만 2~3시간 코스의 자굴산 둘레길을 걸어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 한우산을 충분히 즐겼다면 궁류면의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알려진 일붕사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이곳은 동굴법당(높이 4m, 660㎡)이 두 개나 있으며 세계 최대 동굴법당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사찰이다. 수차례 불에 타 복원과 소실을 거듭해 오다가 한동안 방치되어 있었지만 8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바위에 구멍을 뚫어 법당을 만들어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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