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이젠 촛불을 내려야 할 때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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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20   |  발행일 2017-01-20 제23면   |  수정 2017-01-20
[조정래 칼럼] 이젠 촛불을 내려야 할 때

이제 그만하면 됐다.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았고, 세월이 지나도 사그라지지 않았으니 그 위용(威容) 만방에 알리고도 남았다. 풍상(風霜)과 세월을 이겨낸 촛불이지만, 이제 우리 스스로 그만 끌 때가 됐다. 촛불의 메시지는 충분히 알려지고도 남았다. 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 과잉은 경계할 수밖에 없다. 촛불의 명령이 우리 사회 곳곳을 강타하고 있지만, 촛불의 무한질주에 대한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태극기 물결에 촛불의 자리를 내주는 건 애써 모은 민심의 분열이다. 촛불 본래의 취지와 목적이 연소될 수도 있다. 이젠 촛불을 갈무리할 시점이다.

촛불의 찬미, 촛불의 미학도 그만하면 됐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촛불은 꾹꾹 눌러왔던 시민의 분노, 그 타오름이었다. 민심은 성나서 오히려 차분했고, 천만 흥행의 장엄한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것은 바로 헌법에 명시됐지만 빼앗겼던 주권 찾기 행진이었다. 과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에 대한 엄중한 질문이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가’에 대한 부정이고 회의였다. 집단화된 ‘신민(臣民)’ 혹은 ‘국민’에서 천부인권의 ‘시민’으로 깨어나겠다는 외침과 몸부림이기도 했다. 전근대적 의식의 근대화였다. 촛불 잔치, 광장의 정치는 그만하면 됐다.

이제 다시 대의정치다. 거리로 끌려나 온 정치인과 대권주자들은 먼저 제자리로 돌아가라. 더 이상 촛불에 편승하거나 촛불을 조장하지 마라. 스스로 개념 없고 출구전략 없음을 자인할 텐가. 촛불의 일렁임에 따라 줏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대권주자들에게 과연 대한민국을 대표할 자격이나 소양이 있기나 하나. 광장 아고라(Agora)에서 그리스 시대의 직접민주주의를 하고 도편추방을 할 요량이 아니라면, 이쯤에서 분노의 촛불을 꺼야 한다. 촛불의 의제와 타깃은 대통령 탄핵과 하야를 넘어 우리 사회 각 분야 기득권 세력의 반성과 개혁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촛불의 질주는 이제 그만 됐다.

과속을 제어할 브레이크, 누군가든 밟지 않으면 안된다. 중뿔나다 소리 듣고 돌을 맞더라도. 그러나 보수는 용기와 지혜를 잃었고, 진보는 유불리 주판알 굴리기에 여념이 없다. 광장에 호명된 기득권 세력들은 선명성을 증명하느라 희생양을 찾고 돌팔매질로 날을 지새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무차별 여론몰이가 무섭다. 특검의 전방위 수사가 무소불위 초법적인 것은 아닌지, 언론의 대서특필은 구르는 눈덩이처럼 선동과 비방을 더하는 것은 아닌지, 이 광풍과 언제 어디까지 세를 불려갈 것인지…. 사냥 끝난 사냥개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될지. 촛불압박은 이제 그만 됐다.

물론 개혁의 대상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면 설 자리도 없애야 한다. 말로만 개혁을 해 온 국회는 타율개혁을 당하기 십상이고, 셀프개혁으로 시늉만 해 온 검찰은 입법의 견제를 받아 마땅하다. 언론은 시장논리에 의해 강제 조정과 재편을 감당할 수밖에 없고, 우리 사회 최대 권력인 재벌들 역시 거센 개혁의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게다. 그러나 촛불이 언제까지 권력의 일탈을 손보고, 불합리와 부조리를 징치하는 또 다른 권력으로 작동할 수는 없다. 촛불은 이제 그만 내려놓아야 한다.

촛불은 그러나 필시 언제든 다시 타오를 수 있다. 비정상이 횡행하는 사회는 언제든 촛불의 재점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국정농단에도 나라가 이만큼이나마 굴러가는 것은 제자리를 지키며, 묵묵하게 제 몫을 감당하고, 기득권자들의 착취와 횡포에도 욕지기를 삼키며, 간난한 삶을 살아내 온 시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촛불 만능에 대한 우려와 경계론은 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내외적 외교·안보와 경제 위기는 말할 것 없이 촛불의 내생적 한계가 너무나 분명하다. 강성 일변도가 혁명의 실패로 이어졌음을 동서고금의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광장의 함성과 요구를 대의 정치의 장으로 돌리는 성숙된 시민의식이 다시 요구되고, 촛불 국면의 전환은 시급하다.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분노로 촉발된 촛불이 그래도, 민주의 최후 보루인 ‘법치’와 ‘제도’를 넘어서는 건 자가당착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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