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미술관으로의 산책

  • 조진범
  • |
  • 입력 2017-03-02   |  발행일 2017-03-02 제31면   |  수정 2017-03-02
[영남타워] 미술관으로의 산책
조진범 문화부장

대구미술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실’로 연결된 설치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엄청난 크기다. 프랑스의 설치작가 피에르 파브르의 작품이다. 제목은 ‘vibrant colorls’. vibrant는 영어로 쓰일 때 ‘강렬한, 선명한’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프랑스어로는 ‘떨리는, 진동하는’이라는 의미다. 대구미술관 어미홀을 가득 채운 작품이다. 작가에 따르면 지금까지 해온 실내 작업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작가는 바람과 섬유재료를 이용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미술 작품을 언급한 이유는 문득 세상이 너무 ‘심각해졌다’는 생각 때문이다. 미술관에라도 가서 한숨을 돌렸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지금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휩쓸려 들어갈 것 같은 어지러움이 지배한다. 하긴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조차 쉽지 않다. 흥분과 분노가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당최 정신이 쉬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 말했다. 긴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고. 과연 그런가. 또 다른 이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거론한다. ‘봄이 왔는데 봄 같지 않다’고 한다.

주장과 선동이 넘쳐난다. 진실과 정의는 안중에도 없다. 막말도 빠지지 않는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한 발언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뇌물 먹고 자살한 사람’이라고 했다. 도를 넘었다. 홍 도지사의 머리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라면 입만 시궁창이지만, 의도가 있다면 사악하기 짝이 없다. 이런 막말의 소유자가 여권의 대선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수준 이하다. ‘이 정도에 놀라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거리에서 나오는 말들에 때로 모골이 송연해진다. 큰소리로 계엄령을 얘기한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이라니 어이가 없다.

자주독립을 내걸고 만세 시위를 벌였던 3·1절엔 성조기가 나부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집회에서다.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가 대량으로 뿌려졌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한 역사학자의 말처럼 “1919년 3월1일, 목숨을 걸고 만세를 부른 넋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또 하나 심각한 것은 ‘편가르기’다. 도무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내 편이 아니면 배척해야 한다는 식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그렇게 나왔다. 블랙리스트 사건의 후유증도 우려된다. 일각에서 박근혜정부의 ‘문화 부역자’ 명단을 만들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른바 ‘반(反)블랙리스트’인 셈인데, 결국 또 다른 편가르기다.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가보자. 미술관에서 심각해질 이유는 없다. 차분해지고 진지해지는 기분은 느낄 수 있다. 물론 심각한 정국을 ‘나몰라라’고 외면하자는 말은 아니다. 예술작품들을 보면서 작가들의 ‘성찰’을 한 번쯤 살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각한 세상에 덩달아 심각해지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참고로 피에르 파브르의 작품 설치에는 엄청난 시간이 들어갔다. 파브르의 지휘 아래 30명 이상이 한 달 이상 매달렸다. 수천 가닥의 실이 단 한 군데도 엉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대구미술관의 다른 작품들도 흥미롭다.

2일부터 시작되는 대구예술발전소의 ‘대구예술생태보감’전도 의미가 있다. 대구 작가들이 펼쳐놓은 예술지도를 감상할 수 있다. 젊은 작가와 중견 작가들이 함께 어울려 열린 형식의 전시를 만들었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전시인 셈이다. 극단으로 요동치는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대구미술관과 대구예술발전소는 공공미술관이다. 산책하듯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다. 날이 완연히 풀렸다. 편한 날 편한 복장으로 가볍게 다녀오길 권한다. 심각한 시대지만 잠시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조진범 문화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