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렬의 미·인·만·세] 200개의 캠벨 수프 깡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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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6   |  발행일 2017-04-26 제30면   |  수정 2017-04-26
[김옥렬의 미·인·만·세] 200개의 캠벨 수프 깡통
캠벨 수프 깡통
[김옥렬의 미·인·만·세] 200개의 캠벨 수프 깡통
현대미술연구소 소장

예술의 존재감은 독창성이었다. 다수가 아니라 단 하나인 것에 대한 가치가 중요했다. 앤디 워홀은 이를 뒤집었다. 흔한 것이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미지로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팝아트의 대표적인 작가로 부른다. 확실히 워홀은 대량소비를 위해 생산한 제품을 미술품으로 만들어 고급미술과 대중미술의 경계를 넘어섰다. 그리고 미술품을 상업시스템에 종속되는 상품으로 파악했다. 1962년 ‘200개의 캠벨 수프 깡통’으로 미술품이 발하는 아우라(Aura)를 워홀은 벗겼다.

워홀이 주제로 삼은 것은 누구나 먹고 마시는 수프 캔이나 콜라병 그리고 만화 캐릭터나 인기스타였다. 뒤샹에 필적하거나 또는 능가하는 우상타파적인 제스처였다. 이러한 시도가 미학적인 신념에 근거한 그의 전위적인 태도였을 테지만, 실상은 그 어느 것에도 가치를 두지 않는 소위 ‘미학적 몰가치’의 반영이었다. 그는 고상한 미술에 반기를 들고 저속한 대중문화와의 통합을 시도했다. 고도로 산업화된 1960년대 미국에서 가능한 시도였다.

당시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면이 강조되었던 추상미술에 대한 권태도 한몫했지만,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현실에 눈뜬 신세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의 시선은 일정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현대사회의 단면이나 대중적인 아이콘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세대였다. 워홀로 대표되는 미국의 팝아트는 대중사회의 현실을 조작하거나 형식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었다. 코카콜라, 깡통, 만화나 잡지 등 싸구려가 대중에게 골고루 나누어져 있거나 친화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을 선택하여 미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소재의 선택에 있어서 이미 보편화된 것을 취했다. 60년대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워홀의 팝아트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워홀은 현대의 대중문화 속에서 흔히 보는 이미지를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형식이나 법칙에 구애받지 않고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동시에 드러냈다. 이 점은 워홀을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경계가 없는 새로운 예술의 가능성을 제시한 인물로 평가한다. 스스로 기계가 되길 원했던 워홀, 그는 기계적 반복을 위해 작가의 개성을 배제하고 기계적인 생산을 위해 실크스크린의 공정을 택했다. 예술은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보고 느끼고 발견하는 것임을 명백히 했다. 그의 대중문화 아이콘은 ‘평등주의적 익명성’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이 점은 ‘200개의 캠벨 수프 깡통’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대량생산된 통조림, 반복된 수프깡통의 이미지는 고급미술과 통속미술의 벽을 허물었다. 그리고 지금 대중적인 이미지가 어떻게 고급미술이 되는지, 그 역전 역시 가능한 사회에서 미술, 모든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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