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극대화 논리와 적절화 논리

  • 이은경
  • |
  • 입력 2017-07-07   |  발행일 2017-07-07 제22면   |  수정 2017-09-05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개인·기업·국가 할 것 없이
자신의 이익 극대화하는 건
궁극적으로 승자독식 지향
상대 배려하는 적절화 통해
지속가능 공동체 만들어야
20170707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어릴 때 집안 어른들로부터 ‘적당히 해라’ 혹은 ‘그만하면 됐다’ 등과 같은 말을 자주 들었다. 이런 표현은 특히 영남지방에서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이 치명상을 입은 자신을 계속 공격하는 상대에게 경상도 사투리로 “고마 해라. 많이 묵었다 아이가”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언뜻 들으면 어떤 일을 완벽하고 철저하게 하지 말고 대충하라는 전근대적 태도로 오해할 수도 있으나 숙고해보면 가족이나 이웃, 조직, 그리고 국가와 같은 사회공동체의 유지에 꼭 필요한 원리가 숨겨져 있다.

어떤 행동방식이 바람직한가를 다루는 사회이론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극대화 논리’고, 다른 하나는 ‘적절화 논리’다. 그중 현대 산업사회에서 주류를 형성한 것은 극대화 논리다. 개인이나 기업, 국가 할 것 없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극대화 논리가 현실 세계에서 구현된 것이 바로 시장관계다. 시장에서 거래하는 상인들은 법을 어기지 않는 한 각자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상식이다.

1990년대 이래 무한경쟁을 내세우며 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는 극대화 논리의 극단적 형태다. IMF 위기를 계기로 우리나라에도 확산된 신자유주의는 각자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사회발전의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업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종업원들을 정규직으로 유지하면서 비용부담을 떠안지 말고 인건비가 훨씬 싼 비정규직으로 전환해서 필요할 때마다 쓰면 된다는 주장이 신자유주의적 극대화 논리에서는 당연히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 종업원들끼리도 서로 경쟁해서 제한된 인건비 예산을 승자가 독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성과급적 연봉제 또한 극대화 논리를 구현한 예다.

그러나 극대화 논리가 놓치는 것은 자신의 이익 극대화에 의해 타격을 받는 상대방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상대의 이익도 극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자원제약 때문에 불가능하다. 또한 ‘극대화’라는 개념 자체가 이익추구에 상한선이 없고 많을수록 더 좋다는 논리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승자독식을 지향한다. 따라서 극대화 논리로는 상생이나 협력, 동반성장의 실현이 불가능하며 상대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상대방도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 나의 이익을 빼앗아가야만 한다. 기업의 오너와 경영자가 자신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구조조정과 비정규직화를 선택하면 종업원들도 자신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전투적 노조로 맞불을 놓기 때문에 결국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헬조선과 양극화로 표현되는 우리 사회의 현재 상황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행동의 논리 자체를 극대화로부터 적절화로 전환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상황에 맞게 상대방을 고려해 적절한 수준의 이익을 추구하는 적절화 논리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예를 들면 명절에 친구들끼리 모여 카드나 화투놀이를 하다 보면 도박판이 아니라 우의를 다지는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패가 좋으면 ‘올인’을 불러 분위기를 망쳐버리는 사람이 꼭 있다. 상황에 적절하게 행동하지 않고 극대화의 논리를 따랐기 때문이다.

적절화 논리는 손해를 보라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적절하게 상대방을 고려해 이익을 조금 덜 추구함으로써 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하라는 것이다. 적절화 논리가 작동하려면 상대의 형편을 헤아리는 배려, 자신의 이익추구를 자제하는 양보, 그리고 자기의 개인적 이익을 넘어서 전체 공동체 관점에서 미래를 조망하는 성숙함이 필요하다. 적절화 논리는 법으로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 일단 적절화 문화가 정착되면 그 사회는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다. 누가 지켜보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규칙을 지키며 상대를 배려하는 선진문화란 다름 아닌 적절화의 논리가 지배하는 문화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정치진영간, 노사간, 계층간, 그리고 세대간 관계에서 극대화 논리가 만연한 것 같아 우려된다.

이은경 lek@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