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한미관계 재정립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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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3   |  발행일 2017-08-23 제30면   |  수정 2017-08-23
긴장 고조되는 北美관계 속
한반도 군사적 행동 결정 등
한국인의 생존이 달린 문제
美, 일방적으로 다뤄선 안돼
오랜 기형적 의존 구도 청산
양국 호혜적 관계로 개선돼야
[수요칼럼] 한미관계 재정립을 위하여

북한과 미국 간에 날로 높아지는 군사적 긴장 때문에 남북 관계와 한미 관계가 꼬이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계속된 스캔들로 본인의 탄핵이 거론되는 수준까지 악화된 정치적 궁지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책략으로 북미 군사대결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하는 여러 정황이 있다.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고 미국 내 언론과 야당의 공세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한반도 주민 몇십 만명쯤 죽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미국 정치 지도자의 언사를 접하는 우리는 이른바 ‘한미 동맹’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한미 관계는 정치, 외교, 군사, 문화, 역사 등 여러 차원에서 형성되고 진전되는 것이지만 한미관계의 군사적 측면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토대로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공동 방어 체제라는 점을 전문(前文)에서 밝히고 있다. 하지만 ‘공격’을 가하면서 ‘방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가 2003년에 감행한 이라크 침공도 바로 그런 경우였다. 공격과 방어의 구분을 허물고 전쟁을 하면서 그것이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의 자못 독특한 입장이 국제법 질서에 과연 합치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하지만 논란이 없는 조항도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2조는 당사국 중 일방의 안전이 외세의 무력 공격 위협에 놓여 있다고 판단할 경우 양 당사국은 상호 협의하도록 규정한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의 무력 공격 위협에 놓여있다고 판단한다면 미국과 한국은 상호 협의해야 한다. 한국과 협의도 없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화염과 분노’ 운운하는 것은 상호방위조약 제2조에 반한다. 특히 제2조 제2문의 마지막 부분은 “양국은 조약을 이행하고 조약의 목적을 증진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 하에 취할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남한의 합의없이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 조치를 취한다면 그것은 상호방위조약을 미국이 스스로 파기하는 것이 된다. 이번 8·15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는데, 이는 바로 한미동맹의 근간을 이루는 상호방위조약 제2조에 근거한 입장이다.

양국 간 협의나 합의가 불필요한 부분도 있다. 상호방위조약 제2조는 “무력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유지하고 개발하는 행위는 당사국이 제각각으로도, 공동으로도, 자구책으로도, 상호원조로도 수행할 것이다”라고 규정한다. 예를 들어 북한의 무력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한이 미사일 무기를 개발하는 행위는 미국과 공동으로 할 수도 있고, 남한이 단독으로 자구책의 일환으로 (미국 외의 국가와 협력하여) 추진할 수도 있다. 한미 간에 관행적으로 반복되어 왔던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 중량 등에 대한 ‘협의’는 특허나 영업 비밀에 대한 회사 간의 합의를 위한 것이라면 몰라도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하여 ‘협의’를 요구할 아무런 조약상 근거가 없고, 미국이 한국에 대하여 협의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반하는 행위다. 한국이 미국 군대의 무기 개발에 대하여 참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한국 군대의 무기 개발에 대해서 참견할 상호방위조약상의 근거는 없다. 오히려 상호방위조약은 무기 개발에 대해서 양국이 서로 참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뒷받침한다.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증가시키는 미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남한의 경제와 무역 활동이 세계 시장에서 입게 되는 피해는 계산하기 어려운 규모다. 전쟁 위험이 높은 지역에 선뜻 투자하겠다는 자는 별로 없고, 한반도의 전쟁 위험은 한국 기업에는 협상과정에서 불리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물론 전쟁은 돈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생명과 생존이 달려 있는 문제를 함부로 다루는 미국의 경솔한 태도는 한국인의 존중과 신뢰를 받을 수 없다. 한미 동맹은 지난 60년간의 기형적 의존 구도를 청산하고 이제 근본적으로 개선된 시각에서 호혜적으로 재정립할 때가 온 듯하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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