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인도적 지원?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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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0   |  발행일 2017-09-20 제31면   |  수정 2017-09-20

1997년 7월, 한 TV방송국이 북한의 옥수수 수출을 보도했다. 북한 선적의 만경봉호가 일본의 북방 항구 아오모리항에서 옥수수를 하역하는 장면이 모니터에 나왔다. 만경봉호는 북한 청진항에서 가져온 옥수수 1천30t을 내리고 있었다. 이 옥수수는 북한이 요코하마에 있는 조총련계 무역회사를 통해 아오모리현의 한 축산회사에 사료용으로 판매하는 것이었다. 당시 옥수수 1천30t은 국제시장 가격으로 우리 돈 1억여원어치였다.

아마 이 옥수수는 국제시장 가격에 비해 훨씬 싸게 거래됐을 개연성이 높다. 그렇지 않으면 아오모리현의 축산회사가 굳이 북한산 옥수수를 사는 께름칙한 거래를 했을까 싶다. 당시 북한은 수백만명이 굶어 죽는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수출한 옥수수가 북한산인지 아니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방의 인도적 지원물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다만 식량을 인도적으로 지원한 국가들은 수많은 인민들이 굶어 죽는 마당에 옥수수 1천여t을 이웃 나라에 사료용으로 판매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옥수수가 북한산이든 인도적 지원물이든 북한을 지원한 국가들은 뒤통수를 얻어 맞은 꼴이 됐다.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한 식량이 굶어 죽을 위기에 있는 인민들에게 제대로 가는지 확인하려면 주민의 입으로 들어가 소화되고 배설되는 과정까지 감시해야 할 지경임을 보여준 것이다.

청와대는 최근 북한에 800만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WFP)의 아동·임산부 대상 영양강화 사업에 450만달러, 유니세프의 아동·임산부 대상 백신과 필수의약품, 영양실조 치료제 사업에 350만달러 등 총 800만달러를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발표 시기가 절묘해 반대 여론을 자극하고 증폭시키는 효과도 컸다.

청와대는 반대 여론을 의식해 지원 물품이 정확히 전달되는지 확인하겠으며 이것은 인도적인 지원임을 강조했다. 또 북한 미사일과 관련한 트랙과 인도주의적 트랙은 다르다며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 상황과 관련 없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덥지 않은 마음은 여전하다. 국제기구를 통해 충분히 사용처를 검증할 수 있는 지원이라지만 사실상 북한이 어떤 조화를 부릴지는 확인 불가다. 20년 전 옥수수가 소화되고 배설되는 과정까지 감시하고 확인할 수 없었던 것처럼.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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