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세계 손씻기의 날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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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6   |  발행일 2017-10-16 제31면   |  수정 2017-10-16

19세기 중반 유럽 산부인과 의사들의 고민은 산모 사망원인 1순위로 꼽히던 산욕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산욕열은 분만 때 생긴 상처가 감염돼 고열이 발생하는 병이다. 사망률이 10~30%로 매우 높았다. 당시 오스트리아 빈종합병원 산부인과 조교수였던 이그나즈 제멜바이스(1818~65)는 2개의 분만병동 가운데 의사들이 아이를 받는 1병동이, 조산원이 아이를 받는 2병동보다 사망률이 높은 데 주목했다. 그는 부검할 때 의사의 손에 묻은 ‘어떤 물질’이 산모의 혈관으로 흡수돼 산욕열을 일으킨다고 믿고 의사들과 의과대 학생이 병동 출입 전 염소용액으로 반드시 손을 씻도록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1846년 3월 18%까지 치솟았던 산욕열 사망률이 1~2%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손을 씻지 않아서 산욕열이 발생한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만 해도 의학계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결국 원장의 눈 밖에 난 그는 좌천 끝에 해고돼 병원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프랑스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제멜바이스가 주장한 ‘어떤 물질’이 세균으로 밝혀지면서 이제 손씻기의 감염병 예방 효과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손씻기를 ‘셀프백신’이라 부를 정도다. 비누 등으로 30초 이상 제대로 손을 씻으면 묻은 세균의 99.8%를 없앨 수 있고 수인성 감염병의 50~70%, 호흡기 질환의 21%를 예방할 수 있다.

손씻기의 뛰어난 효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질병관리본부가 2015년 9월 전국 17개 시·도 지하철·공항 화장실 이용자 1천190명을 관찰 조사한 결과 용변을 보고 나서 손을 씻는 사람은 73.7%였지만, 용변 후 비누로 손을 씻는 사람은 26.2%에 불과했다. 손 씻는 시간이 21초 이상인 경우는 2.5%에 그쳤고, 1~5초 만에 마치는 사람이 46.4%로 절반 정도나 됐다.

미국 CDC와 세계보건기구 등의 통계를 보면 아직도 매년 180만 명 이상의 지구촌 5세 이하 어린이가 설사와 폐렴 등 감염질환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유엔은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어린이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2008년 총회에서 ‘세계 손씻기의 날’을 제정했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기념일이지만 바로 어제(10월15일)가 그 날이다. 우리나라도 2015년 메르스 사태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만큼 손씻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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