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교는 경쟁하는 곳” 핀란드 “학교는 협력 배우는 곳”

  • 이효설
  • |
  • 입력 2017-10-23 07:24  |  수정 2017-10-23 08:39  |  발행일 2017-10-23 제5면
[공부의 미래 .3] 아이들이 생각하는 학교
20171023
대구 한 고교 학생들이 수능 막바지에 이르러 문제집을 쌓아놓고 입시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 <영남일보 DB>

☞ 한국
시험 0.1점 차로 등급 갈리기도
친구를 경쟁자로 만드는 시스템
과도한 학업 성적 스트레스로
OECD기준 삶 만족도 최하위권


“내가 (시험을) 잘 치르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문제는 다른 친구들이 시험을 못 쳐서 얼마나 깔아주느냐는 것이죠.”

기자가 올해 초부터 최근까지 수십 여명의 대구지역 고교생을 만나 ‘시험을 잘 봤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이는 일반고, 자사고, 특목고가 다르지 않았다. 학생들에 따르면 내신·수능 모두 시험 당일 채점을 완료하지만, 시험을 잘 치렀는지 못 치렀는지는 다른 친구들의 성적에 달려 있다. 이는 상위권일수록 더 그렇다. 0.1점 차로 등급이 갈리는 만큼 100점을 맞지 않는 한 성적표를 받기 전까지 안심할 수 없다.

지난 9월 수능 모의평가를 치르고 만난 대구 A일반고 2학년 김병준군. 김군은 사회탐구 한 과목에서 전교 9등을 했지만, 2등급을 받았다. 알고보니 1등부터 8등까지가 1등급이며, 김군은 8등과 0.2점이 부족해 1등급을 못 받았다고 했다. 김군처럼 커트라인 점수에서 근소한 차로 목표 등급을 못 받는 학생들이 적잖다. 김군은 인터뷰에서 “고작 0.2점이 부족해 1등급을 못 받았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모든 친구들이 경쟁자로 보였다”고 고백했다.

OECD가 47개국 15세 학생 54만명을 조사해 내놓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 2015 학생 웰빙 보고서’를 보면 한국 학생들의 삶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36이었다. OECD 평균은 7.31이고, 한국보다 낮은 OECD 회원국은 터키(6.12)가 유일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주된 원인은 과도한 성적 스트레스였다. 많은 학습량 덕분에 한국 학생들의 성적은 수학 1~4위, 읽기 3~8위 등으로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지만 학생 10명 가운데 7명은 시험과 성적에 대한 중압감으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학생의 75%가 “학교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것에 대해 걱정한다”고 답했다. 69%는 “시험보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걱정된다”고 응답했다.

대구 수성구에 거주하는 고2 학부모 정영숙씨(48)는 “학교 공부가 입시 경쟁·서열화되는 것은 반대하지만, 내 자식이 경쟁에서 밀려 명문대에 못 가 좋은 일자리를 못 구한다면 그것은 또다른 문제”라면서 “힘들어도 고교 졸업 때까지만 잘 참아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20171023
핀란드 헬싱키 인근 키르코노미시에 있는 한 학교 교실에서 학생들이 협력하며 수학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 핀란드
모둠식 수업 협동하는 학생들
9학년 졸업할때까지 성적 몰라
“학교는 부담없는 환경을 제공
즐겁게 생활하도록 최선 다해”


“학생들은 학교를 즐거운 곳이라 생각해요. 그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친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죠.”

지난 9월 20일 오전 9시30분 핀란드 키르코노미시 니스니쿠 학교 교무실. 10명 남짓한 교사들이 수업 준비를 하거나 소파에 앉아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수학 교사 요우니 코포넨씨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학생들이 협력해 무엇을 만들거나 체험하면서 수학의 개념을 터득하도록 유도하는데, 아이들이 무척 재밌어한다. 수업 시간에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가 없다. 즉, 입체도형 단원에선 직접 도형을 만들어 보고 만져보고, 비율을 배울 땐 막대기에 눈금을 긋고 지우는 활동을 하면서 일상 속에서 비율이 어떻게 활용되는 지 배운다. 수학 교재는 있지만 맞고 틀리고를 채점한 흔적은 어떤 교재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수업은 모둠식으로 이뤄진다. 3~4명의 학생이 한 모둠을 이뤄 수업에 참여한다. 모둠별로 리더격인 학생이 1~2명 있다. 이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거나 교사가 설명한 내용을 다시 한 번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8학년에 재학 중인 한 여학생은 “수학이 쉽고 재밌다. 친구들끼리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배우면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고 말했다.

같은 날 낮 12시쯤 방문한 핀란드 직업종합학교인 옴니아. 건축·목공·미용 등 실습 위주 교육을 하는 이곳에서도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한데 어울려 작업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1학년생 3~4명이 목공 실습실에서 연중 과제물인 ‘의자 만들기’를 하고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작은 의자를 만드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요우니 코포넨 교사는 “학생들은 9학년(중3)을 졸업할 때까지 친한 친구들의 성적이 자신보다 높은지 낮은지 모른다. ‘경쟁’이 어떤 것인지 모른 채 친구를 사귀고 배우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학교는 학생들에게 친구를 만나고 공부할 수 있는 안전하고 부담없는 환경을 제공해 학생들이 즐겁게 생활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이 가시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자 이미지

이효설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