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 '할매할배의 날'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 ③ 해외사례와 道의 실천방안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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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24 07:33  |  수정 2017-10-24 07:34  |  발행일 2017-10-24 제12면
“전담기관 운영·타지자체와 공조…전국적 공감대 형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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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가 지정해 운영하고 있는 할매할배의 날은 조부모, 부모, 손자녀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지난해 구미 호텔금오산에서 열린 ‘할매할배의 날 밥상머리체험교육’에 참가한 할머니와 손녀가 웃으며 식사를 하고 있다. <영남일보 DB>

2014년 매월 마지막 토요일을 ‘할매할배의 날’로 지정한 경북도는 전국적인 공감대 형성과 함께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할매할배의 날은 고령화, 가족공동체 붕괴, 노인문제 등 각종 사회문제를 가정 내에서 조부모를 중심으로 해결하기 위해 마련됐다. 부부의 날, 어버이 날, 노인의 날 등 가족과 관련된 각종 기념일과 유사한 점이 있지만 할매할배의 날만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할매할배의 날과 각종 가족 관련 기념일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할매할배의 날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점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일본 유일하게 공휴일로 지정

대표적인 노령국가인 일본은 노인의 날과 경로의 날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일본 노인의 날은 1년 중 기후가 가장 좋고 농한기에 해당하는 9월15일이다. 효고현 다가군 촌장이 노인을 소중히 여기고, 노인의 지혜를 빌려 지역을 만들어 가자는 취지로 이날 경로잔치 등을 개최한 것이 시초가 됐다. 이후 일본에서 노인이라는 용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1965년 노인의 날을 경로의 날로 변경했지만 노인단체 등의 반발로 경로의 날(9월 셋째주 월요일)과 노인의 날(9월15일)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일본 노인의 날은 국민의 노인복지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노인 자신의 생활향상을 위해 의욕적인 노력을 촉진시키기 위해 제정됐다. 반면 국가공휴일로 제정된 경로의 날은 노인세대와 손자녀세대가 교류하는 날이다. 세대 간 교류를 증진시키고 가족공동체 강화를 위해 노인의 날과 별도로 기념일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노령화사회 일본
노인의날·경로의 날 동시운영
경로의 날은 국가공휴일로 지정
조손간의 교류 촉진 환경 제공
싱가포르선 3대 참여행사 확대

해외사례 벤치마킹해 발전시켜
일방적 감사 표시·봉사 아닌
조부모·손자녀 함께하는 날 돼야



할매할배의 날이나 조부모의 날처럼 일본 경로의 날에는 학생들이 인근 양로원이나 요양원을 방문하거나 손자손녀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감사편지와 선물을 전달한다. 이처럼 일본이 노인의 날과 별도로 경로의 날을 정해 기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로의 날은 국가휴무일로 지정해 모든 국민에게 기념일의 의미를 널리 알릴 수 있다. 또한 노인에 대한 존경, 그리고 손자녀와의 교류를 촉진할 수 있는 물리적·정서적 환경을 제공한다. 세계 각국에서 노인의 날이나 조부모의 날 등을 제정·운영하고 있지만 공휴일로 지정한 국가는 일본이 유일하다. 권용신 경북행복재단 책임연구원은 “할매할배의 날은 일본 경로의 날에서 확장된 개념, 즉 노인과 부모, 손자녀 세대가 교류할 수 있는 기념일과 교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할매할배의 날이 세대 간 교류 프로그램이 전개되고 있는 만큼 이를 벤치마킹해 국가 차원의 행사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3대가 참여하는 가족산책행사 눈길

싱가포르도 국제노인의 날(10월1일)과 조부모의 날(11월 넷째주 일요일)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1991년 유엔 회원국이 제정한 국제 기념일인 국제노인의 날과 별도로 1998년부터 국가 차원의 기념일로 조부모의 날을 제정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조부모의 날이 중요한 행사로 다뤄지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손자녀를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부모의 날이 생겨난 계기는 제이 림(Jay Lim)이 어머니 리수란(Lee Su Lan)을 기리기 위해서 제정을 촉구하면서부터다. 리수란 여사는 2차 세계대전을 경험했고 일본의 통치시기를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5명의 자녀와 22명의 손자녀, 30명 이상의 증손자녀를 두었다.

싱가포르도 핵가족화, 맞벌이 가정 증가, 급속한 고령화 등으로 인해 가족 간 유대감 약화 및 소통의 부재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조부모의 날 운영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9월 중순에는 초등학교에서 조부모와 시간을 보낸 경험 등에 대해 그리는 그림 경진대회를 개최한다. 입상한 그림은 엽서로 만들어 조부모의 날에 학생들에게 배포한다. 이 엽서들은 사랑과 감사를 담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전달된다. 또 대가족이 함께 식사할 경우 호텔과 식당 이용료 등을 지원한다. 3대가 참여하는 가족산책 행사도 개최하고 있다

전용호 인천대 교수는 “싱가포르가 노인의 날이 있음에도 조부모의 날을 제정한 것은 가족관계 형성에서 조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이라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가족공동체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조부모의 날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 내에서 가족주의 경향이 짙으면서 노령인구가 일본 다음으로 많은 이탈리아도 조부모의 날을 운영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노인의 날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자율적으로 기념한다. 주로 65세 이상 은퇴대상자를 대상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축제 등이 열린다. 조부모의 날은 2015년 10월2일 정부 차원에서 국가기념일로 제정했다. 이 날은 가톨릭의 수호천사의 날이기도 하다. 교황청에서는 가족에 대한 가치를 중시해 동시 기념일로 추진하고 있다. 조부모의 67%가 손자녀를 돌보고 있을 만큼 조부모의 사회적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할매할배의 날 어떻게 운영할까

조부모의 날을 운영하는 외국 사례를 통해 할매할배의 날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할매할배의 날에 손자녀와 조부모 등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할매할배의 날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해 어색하지 않게 즐기면서도 의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면 손자녀는 조부모에게 직접 카드나 케이크를 만들어 선물하거나 조부모가 키울 수 있는 화분을 제공해 조손이 같이 키워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부모에게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가족파티를 하거나 자녀와 가족 사진을 보면서 옛날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이민홍 동의대 교수는 “할매할배의 날에 문화적으로 익숙하거나 친근한 내용의 프로그램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온가족이 모여 식사를 같이하거나 할머니를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 농사일을 도와주는 것 등을 고려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할매할배의 날이 감사를 표시하거나 봉사하는 일방적인 날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서로가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즐겁고 의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만약 할매할배의 날을 어버이날처럼 운영하면 손자녀, 며느리, 자녀 등이 또 다른 형태의 어버이날이라고 여겨 부담을 느낄 수 있다. 이 경우 어버이날과의 차별성을 가지기도 어렵다.

따라서 싱가포르의 경우처럼 거리나 경치를 함께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저렴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전담기관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조부모의 날을 홍보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해 배포하는 전담기관이 있다.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해 일반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구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할매할배의 날을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안내하고 실제 프로그램을 전담하는 기관을 운영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북도에서 시작한 할매할배의 날에 대한 전국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자체와 업무협약 등을 통해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엄기욱 군산대 교수는 “미국과 호주 등 일부 지역에서 시작된 조부모의 날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던 것처럼 경북도에서 시작된 할매할배의 날의 의미와 경험을 전파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여러 지역에서 할매할배의 날을 실천하고 확산시킨다면 정부에서도 국가기념일로 도입하는 것을 적극 고려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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