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유승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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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15   |  발행일 2017-11-15 제35면   |  수정 2017-11-15
[영남시론] 유승민의 길
박상병 정치평론가

다시 유승민 의원이 정치사의 전면에 섰다. 예상대로 국민과 당원의 압도적 지지로 바른정당 새 대표에 당선되긴 했지만, 이제 당과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놓고 사실상 벼랑 끝에 선 셈이다. 당초 33명으로 출발한 바른정당은 두 차례의 탈당사태를 거치면서 이제 11석으로 쪼그라들었다. 교섭단체의 지위도 잃어버렸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유승민 대표는 대표 수락 연설에서 “지금 우리는 죽음의 계곡에 들어섰다”고 했다. 정확한 표현이다. 사실 바른정당의 소속 의원이나 당원들보다 유 대표가 더 절박한 심정일 것이다. 조만간 자신의 정치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결단의 시간을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유승민 대표는 참 괜찮은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가 ‘보수의 혁신’을 외치며 당시 새누리당을 탈당할 때도 그의 진정성 있는 목소리에 의심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유 대표가 살아온 정치적 삶이 담백했을뿐더러 그가 꿈꾸는 새로운 미래도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대선과정에서 자신의 철학과 원칙 그리고 건강한 보수의 가치를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제4당 후보로서 얻은 220만표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건강한 보수’의 꿈에 국민이 화답한 것이다.

그러나 대선 이후 바른정당은 새로운 가치나 비전을 펼쳐 보이질 못했다. 이혜훈 전 대표의 중도 하차가 치명적이긴 했지만 당 구성원들의 ‘동상이몽’은 당의 무기력한 모습으로 표출되기 일쑤였다. 마음은 이미 콩밭으로 가 있던 일부 의원들의 이탈 움직임은 당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 어떤 처방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분열은 명확했다. 이때도 유 대표는 이른바 ‘자강파’를 이끌며 초심을 놓지 않았다. 벼랑 끝으로 몰리는 줄 알면서도 명분 없는 타협을 거부했다.

유 대표는 정말 벼랑 끝에 섰다. 유 대표로선 ‘죽음의 계곡’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며, 또 어떻게 반전의 기회를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유 대표는 대표 수락연설에서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여러분 앞에 맹세합니다. 바른정당을 지키겠습니다. 개혁보수의 창당정신, 그 뜻과 가치를 지키겠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정치적 레토릭’과는 차원이 다르다. 유승민이기에 믿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

유 대표는 ‘바른정당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 여기에 유승민의 정치인생과 바른정당의 창당정신 그리고 ‘건강한 보수’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선택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어떻게든 당의 자산을 끌어 모아서 자유한국당과 당 대 당 통합의 길을 찾는 것이다. 명분이나 가치, 창당정신보다는 당장 편하고 배부른 길이다. 대신 ‘보수의 혁신’을 지지했던 여론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둘째는 국민의당과 제3의 길, 즉 중도에서 만나는 길이다. 바른정당은 중도 보수의 가치를 지향한다. 국민의당은 중도 개혁의 가치를 지향한다. 두 정당이 만난다면 중도의 좌우 두 날개가 구축되는 셈이다. 말 그대로 중도의 외연확장에 최적의 길이다. 게다가 영남과 호남의 첫 만남이라는 시너지 효과도 간단치 않을 것이다. 이 길은 강력한 제3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바른정당 입장에서는 자유한국당으로 가는 것보다는 더 험난하고 불안할 것이다. 마지막 셋째는 내년 지방선거까지 ‘자강론’으로 가는 길이다. 독자적으로 끝까지 지방선거를 치르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것은 최악의 길이 될 수도 있다. 깃발은 남겠지만 지방선거까지 과연 몇이나 남아 있을지 알 수 없다.

이젠 어떤 길인지, 유 대표가 결심하고 행동해야 한다. 전략적 접근은 필요하지만, 자칫 지분이나 자리를 놓고 거래하는 방식은 유 대표와 바른정당에 어울리지 않는다. 죽음의 계곡에서 더 이상 무엇을 탐하겠는가. 설사 들꽃처럼 스러져도 진한 향기로 정치사에 길이 남는 그런 길을 헤쳐가길 바랄 뿐이다. 사즉생(死卽生)이라고 했다. 끝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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