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남북정상이 만나야 될 이유

  • 송국건
  • |
  • 입력 2018-02-12   |  발행일 2018-02-12 제30면   |  수정 2018-02-12
평창 남북이벤트 가운데
실질적이고 중요한 제안
성사 여건조성 쉽지않고
회담위한 회담 안되지만
가장 현실적인 접근방식
[송국건정치칼럼] 남북정상이 만나야 될 이유

지난 주말 온 국민의 눈과 귀는 ‘김여정’에 쏠렸다. 김일성의 손녀이고, 김정일의 딸이며, 김정은의 여동생이다. 3대에 걸쳐 북한정권을 세습한 이른바 ‘김일성 직계 가문’의 한 명이다. 이에 걸맞게 31세(추정)의 나이에 우리로 치면 차관급인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다. 이 직함은 대외용일 뿐 실제 위상은 오빠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바로 아래 ‘넘버 2’ 같았다. 평창 동계올림픽 북측 고위급대표단의 단장으로 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명목상 국가수반이고 형식상 북한 권력 서열 2위다. 하지만 그는 방남 기간 ‘단원’인 김여정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서일까.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우리 정부도 의전 서열에서 은근히 김여정을 앞세웠다. 김여정은 의도적인지, 몸에 배었는지 몰라도 문 대통령과 악수할 때도 조금 거만하게 느껴질 정도로 꼿꼿하게 행동했다.

김여정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대표단은 2박3일 동안 융숭한 대접을 받고 어제(11일) 밤 평양으로 돌아갔다. 김정은 전용기인 ‘참매 1호’가 인천공항에 내리자 우리 측 통일부 장관(조명균)과 차관(천해성),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남관표)이 ‘영접’했다. 문 대통령이 주재한 평창올림픽 공식 리셉션을 제외하고 북한 대표단만을 위한 식사 자리도 문 대통령과 조 장관, 이낙연 국무총리가 번갈아가며 세 차례나 마련했다. 문 대통령은 사흘 동안 북한 대표단과 5차례 만났다. 이런 장면들이 눈에 거슬린 국민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불과 한 달여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엔 전운(戰雲)마저 감돌았다. 북한 핵과 장거리미사일 실험을 놓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말 전쟁을 벌였다. 그러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남북 대화가 급물살을 타고 북측 선수단, 응원단, 대표단이 대거 남으로 왔다.

그 와중에 한반도 안보의 한 축인 미국은 ‘패싱’됐다. 북은 남을 향한 유화 제스처를 쓰면서도 미국을 계속 맹비난했다. 미국은 북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겠다며 이번에 방한한 펜스 부통령이 김영남 위원장과 눈 맞추기조차 피했다. 한국은 북미 대화를 북에 권유하면서도 미국의 충고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 회담에선 서로의 방점이 ‘대화’와 ‘압박’으로 엇갈렸다. 이런 모습을 보는 한미동맹론자를 중심으로 한 보수층은 불안감을 느낀다. 북의 한미 이간 전략에 남이 넘어가고, 결국 북의 페이스에 끌려다니지 않겠느냐고 걱정한다. 사실 필자의 판단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온통 형식(이벤트)뿐이고 내용(실제 대화)은 없는 교류만 하다가 평창 올림픽이 끝나면 남는 건 뭘까, 전쟁 위기는 그대론데 한미동맹에만 금이 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적어도 김여정이 자신은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왔다며 ‘남북정상회담’ 의사를 전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남북정상회담에 장밋빛 환상을 갖는 건 아니다. 당장 문 대통령이 말한 대로 성사를 위한 여건이 만들어질지조차 불분명하다. 올림픽 후 한미군사훈련 재개 같은 일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어렵게 회담이 열려도 남북이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더 높다. 지금 한반도 문제는 남북끼리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남북정상회담 외에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풀기 위한 노력이나마 할 채널이 있는지를 생각하면 거기서 효용성을 찾을 수 있다. 더구나 과거 두 번의 정상회담이 뭍밑교섭에 의해 성사됐지만 이번엔 우리 국민과 북한 인민,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식 루트로 제안됐다. 모든 남북 현안을 쏟아 넣는다면 모처럼 내용이 형식을 압도하는 회담이 될 수도 있다.
송국건기자 song@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