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김정은의 머릿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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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3   |  발행일 2018-03-03 제23면   |  수정 2018-03-03
[토요단상] 김정은의 머릿속
최병묵 (정치평론가)

2017년 12월.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비밀보고서를 받았을 것이다. “국제연합(유엔)과 미 제국주의자들의 무모한 제재 도발로 공화국 경제가 어려움에 처했다. 중국도 국제연합과 미제에 부화뇌동하고 있는 만큼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핵보유국’ 북한을 향한 유엔과 미국의 제재와 압박이 전에 없던 방식으로 현재 진행형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후 벌어진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북한 ‘무시’ 전략을 ‘압박과 관여’로 바꾼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제사회와 한국에서 처음엔 “저러다 말겠지”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취임 1년이 지난 2018년 현재 트럼프의 의지는 예측을 뛰어넘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미국과 북한의 조건 없는 대화를 잡아끄는 데도 미국은 부동자세다. 이번엔 끝장을 보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전략·전술 차원의 밀고 당기기일까.

이쯤 되면 김정은도 헷갈릴 법하다. 김정은은 작년 말 심각한 경제위기보고를 받은 뒤 제재 틈새를 벌려보자고 판단했을 것이다.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 “북남 사이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적 환경부터 마련하여야 한다” 이런 신년사는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미국에는 핵무기 위협, 한국에는 평화공세를 펼쳤던 것이다. 핵 위협을 받은 트럼프는 “김정은이 방금 ‘핵단추가 항상 책상 위에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가 가진 것보다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다”고 맞받아쳤다. 반면 한국 정부는 김정은의 평화 제스처에 고무돼 당국 간 회담을 했고,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이끌었다.

북한 전문가라면 김정은 신년사 이후 벌어질 미국-한국-북한의 움직임을 실제 진전 상황과 비슷하게 예측했을 것이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 핵보유국 미국이 핵위협에 굴복할 리 없다. 하지만 한국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 의향에 부응함은 물론 미국과 북한의 중재자 역을 자임할 것임을 꿰뚫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한미관계의 거리는 멀어질 것이라는 예상 역시 그의 머릿속을 맴돌지 않았을까. 여기까지 김정은의 분석과 대처는 적중했다. 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해 우리 정부 외교안보라인과 연쇄회담을 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의 보고를 받은 김정은은 만족스러움을 나타냈을 것이다. 문제는 이후부터다. 복잡해진다.

트럼프는 북한의 대화용의에 대해 “적절한 조건에서만”이라고 못 박았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없이 대화 테이블에 앉아봤자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할 것이란 상황인식이다.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 북한과 많은 대화를 했지만 핵개발,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확인한 뒤 대화를 해도 실제 결실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중도 결렬될 수도 있다. 북한은 한두 달이면 핵보유국이 된다. 김정은은 미국과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핵을 동결할 테니 제재·압박을 풀어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미국의 비핵화 요구를 ‘미끼처럼’ 꺼내들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미끼를 물면 김정은으로선 전략 성공이다.

‘비핵화’란 말만 꺼내는 것과 실제 비핵화는 하늘과 땅 차이다. 과거 6자회담, 4자회담에서 봤듯이 시간 끌기에는 상당한 노하우를 갖고 있는 나라가 북한이다. 북한이 몇 달 안에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이 된다면 그때부터 김정은은 돌변할 것이다. 핵을 보여주면서 핵보유국 대우를 요구할 것이다. 김정은은 지금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런 장면을 상상하면서 흐뭇해하고 있지 않을까.

미국은 어떻게 나올까. “과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말이 핵심포인트다. 11월 중간선거나 트럼프 대통령 본인의 러시아 스캔들 특검 등과 같은 미국내 정치적 변수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을 현혹하기 쉽지 않다. ‘속아본’ 경험자를 비슷한 방식으로 또 속이기란 어렵다. 미국이 속지 않을 땐? 김정은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그로선 한미 이간계 외엔 방법이 없다. 한국 정부에 끊임없이 위장평화공세를 벌여 미국이 한반도 위기의 주범인 양 몰아갈 것이다. 성공하면 대박이다. 실패하면 김정은판 고난의 행군을 각오해야 한다. 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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