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알화덕만두·두유꿀호떡·츄남츄러스…주전부리 행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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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09   |  발행일 2018-03-09 제34면   |  수정 2018-03-09
■ 푸드로드…전주 한옥촌‘新먹방 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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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덕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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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르트소스에 찍어 먹는 치즈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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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촌의 명물 메뉴 1호에 등극한 문어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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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골 육수로 밥을 짓고 치자물을 들인 황포묵이 들어가야만 되는 전주비빔밥. ‘가족회관’은 관광객 배려 차원에서 날계란은 고명으로 올리지 않는다.


전주는 무채색인데 한옥마을(이하 한옥촌)은 ‘유채색’이다. 2000년 극장이 몰려 있던 고사동에서 출범한 ‘전주국제영화제’. 그게 전주의 빛깔을 상당히 모던하게 돋워놓는다. 이에 앞서 1979년 3월 영화거리 고사동에서 오픈한 카페 ‘빈센트반고흐’도 전주의 세련미에 한 방점을 찍어준다. 이 카페는 토박이에겐 ‘객사카페’로 불리는데 아직 추억의 사이펀커피를 맛볼 수 있다. 참고로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다방은 경원동에 있는 ‘삼양다방’이다. 1952년 문을 열었고 현재 전주의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거기 가면 2013년까지 사용하던 비품을 구경할 수 있다. 한옥촌을 십자로 관통하는 태조로와 은행로. 그 사이를 개울물처럼 파고드는 골목길이 경기전길, 최명희길, 어진길, 오목대길, 향교길 등이다. 이 언저리만 챙기려고 해도 하루로는 부족하다. 최소 2박3일. 태조·은행로는 주말엔 구름인파에 파묻힌다. 대다수 먹거리투어에 취해버린다. 그래서 전주스러움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시설들을 지나쳐버린다. 교동아트센터, 최명희문학관, 전주부채문화관, 전주한옥생활체험관, 국창 오정숙기념관, 마당창극을 볼 수 있는 소리문화관, 국악방송, 전주전통술박물관, 강암서예관, 완판본문화관, 전주전통문화관, 국립무형유산원, 한벽문화관 등이 그것이다. 한옥촌을 조금 벗어나 덕진구 필복동에 가면 전주한지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전주한지박물관도 둘러보라. 왜 조선조 왕실 주요 문서가 전주한지로 제작됐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관광객 ‘別食 투어’
현란한 먹거리 리스트 이동 구름인파
토박이 몰리는 들깨칼국수·쌀 떡볶이
보러오는 곳보다 먹으러 오는곳 변화

전주스러움
보릿고개 피해간 곡창지대 富鄕 입지
맑아서 푸른빛의 사투리 ‘표료옴하다’
아름다운 한복 선 같은 전주심성 대변

정중동의 미학 ‘전주 비빔밥’
놋그릇에 담겨져 강렬한 오방색 기운
사골육수로 밥 짓고 황포묵 사용 원칙
전주비빔빵·크로켓·도너츠·만두 등장

◆ 먹방 끝판왕 특구로 변한 한옥촌

그나저나 현재 한옥촌은 ‘먹방 끝판왕 특구’. 처음은 인파에 놀라고 다음은 별식(別食)의 행렬에 놀란다. 요모조모 챙기려면 예습은 필수.

일견 아수라장 같은 행렬이 토박이에겐 다소 불편해 보일 수도 있지만 관광객은 주전부리 투어가 마냥 즐겁기만 하다. 초창기 한옥촌을 쥐락펴락한 먹거리가 있다.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은 아니다. 문꼬치(문어꼬치), PNB풍년제과의 수제 초코파이, 수제만두, 바게트버거, 화덕호떡, 치즈구이, 완자꼬치, 비빔밥와플, 비빔밥빙수, 꽈배기, 지팡이아이스크림, 츄남츄러스 등이다. 이젠 3년 전 서울 인사동에서 히트를 친 조민호씨의 용알전주화덕만두 등도 몸값을 올리고 있다.

‘문꼬치’는 삶은 문어꼬치를 초벌구이한 뒤 소스를 바르고 가쓰오부시를 위에 뿌려 완성한다. 요즘은 치즈를 푸짐하게 올리는 게 유행이다. 2013년쯤 문을 연 ‘문꼬집’이 붐을 주도했다. 여긴 대왕오징어 등을 사용하는 유사 업체와 달리 생 문어를 사용한 문어꼬치 맛집.

‘전동호떡’도 한옥마을에서 태어났다. 군산의 명물호떡인 중동호떡과 비슷한데 기름으로 튀기지 않고 나폴리피자처럼 화덕에서 구워낸 것이다. 기본인 두유꿀호떡은 전주 인심을 반영하듯 꿀이 많이 들어가 단맛을 내고 크림치즈호떡은 반죽과 크림치즈가 한 몸이 된 듯하다. 새로운 개념의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다. ‘소복(昭福)’이다. 인절미아이스볼, 녹차달고드름 등이 인기다. 경기전 맞은편 상가에 가면 ‘지팡이 아이스크림’도 만날 수 있다.

한옥촌의 명물이 된 무척 큰 개가 있다. 바로 ‘칸’인데 츄러스카페인 ‘츄남(츄러스 만드는 남자)’의 인기도 칸 덕분이랄 수 있다. 인기 메뉴인 ‘츄남츄러스’는 츄러스 안에 크림치즈가 들어 있어 달달한 츄러스에 크림치즈의 깊은 맛이 매력이다. 스페인 간식인 츄러스에 커피를 더해 카페 형식의 츄러스 가게를 선보여 성공했다.

사용자 참여형 맛집 추천 서비스인 ‘식신 핫플레이스(www.siksinhot.com)’가 2014년 전주 주요지역 맛집 지도를 공개했다. 당시 한옥촌의 베스트 업소는 PNB풍년제과, 문꼬치, 소담골, 촌놈의손맛, 츄남, 두레박, 족떡이네, 임실치즈농협, 외할머니솜씨, 다우랑, 길거리야, 교동고로케, 베테랑분식, cafe1723, 교동석갈비, 조점례피순대, 풍남피순대, 종로회관, 교동떡갈비, 한옥전통수제떡갈비 등이었다.

현란한 한옥촌 먹거리 리스트에 살짝 가려진 한옥촌의 선배 격 국숫집이 하나 있다. 전주 들깨칼국수의 지존이 된 ‘베테랑칼국수’다. 대구 사람이 보면 죽 같은 국수랄 수 있을 정도로 들깨가 많이 들어가 있다. 베테랑은 77년 성심여중고 학생들을 상대로 시작한 분식집이다. 고사동에 있는 ‘옴시롱감시롱’은 쌀로 만든 졸깃한 떡볶이로 토박이의 퇴근길 발목을 잡은 곳이다. 전북대 앞 ‘해이루’의 감자탕도 전주식 감자탕의 한 자락을 보여준다.

이제 전주는 보러 오는 데가 아니고 먹으러 오는 곳인 것 같다. 김승범 단국대 연구교수(건축학)가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에 발표한 ‘전주 한옥마을 방문자들의 경험 변화에 관한 블로그 텍스트 분석’이 그걸 입증해준다. 2011년까지 자주 언급되던 한옥·전동성당·경기전도 치즈와 만두보다 낮은 비율로 언급됐다. ‘먹자투어’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전주스러움의 정체는

전주는 보법을 부풀리지 않는다. 행간에 숨겨 둔다. 풍세가 참 무덤덤하다. 겸손이 아니라 ‘관망(觀望)’과 ‘좌시(坐視)’의 도시 같다. 왜 그럴까? 모르긴 해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한국 최대 평야인 김제평야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농경시대 땐 매머드 곡창지대 그 자체가 ‘권력’이었다. 전주는 경상도와 달리 상대적으로 ‘부향(富鄕)’이 될 입지였다. 전주는 그래서 여타 도시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던 보릿고개도 피해갈 수 있었다.

전주는 백제 때 ‘완산(完山)’으로 불렸다. 현재 전주를 에워싼 산 역시 완산이다. 통일신라시대인 756년(경덕왕 15)에는 ‘완(完)’을 의역하여 전주(全州)라고 고쳤다. 지명에서도 느껴지듯 전주는 한때 ‘완전’했고 이후에는 ‘온전’했던 공간이다.

전주에는 양반과 선비가 공존한다. 같아 보이지만 다른 부류다. 서로 추구하는 길이 다르다. 양반은 이해를 도모할 수밖에 없고 선비는 수신과 이치를 추구했다. 둘은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무난하고 평화롭기만 하던 전주, 조선 중기에 날벼락 같은 피바람이 불어친다. 바로 전주 출신의 혁명사상가 정여립(1546~89) 때문이다. ‘천하는 공물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느냐. 임금이란 누구나 될 수 있다’란 취지의 ‘천하공물론(天下公物論)’을 주장하며 세습왕권제에 정면도전했다. 전주의 양반들은 좌불안석이었다. 그는 심지어 양반과 노비가 함께하는 ‘대동계(大同契)’도 만들었다. 그의 의지는 능지처참 당했고 이로 인해 호남 선비문화도 철퇴를 맞는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정여립의 대동정신은 동학농민혁명으로 흘러들어간 것 같다. 1894년 전주성에선 단군 이래 처음으로 정부가 혁명세력과 마주 앉아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바로 동학농민과 정부 관리가 평화롭게 앉아서 만든 ‘전주화약(全州和約)’. ‘한국 민주주의의 시원’으로 봐도 좋지 않을까.

평화 속에서 전쟁을 생각하고 전쟁 속에서 평화를 다져가는 정중동(精中動)의 고장. 그래서 그런지 전주는 ‘내가 낸데’란 으스댐이 없다. 혁명의 피를 판소리로 다스릴 줄 알았다. 전주인은 남이 싫어도 절대 싫다고 안전에서 쏘아대지 않는다. 그런데 같은 전라도권이라고 해도 전남·광주권은 어투가 아주 세고 단도직입적이다. 음식만 해도 전남은 홍어권이지만 전주권은 홍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사투리도 광주권은 ‘~껭’, 전주에선 ‘~게’라 한다. 그래서 전주는 같은 전라도이면서도 전남권과 기질이나 문화가 사뭇 다르다.

전주의 심성을 대변하는 사투리가 있다. ‘표료옴하다’란 말이다. ‘너무 밝고 맑아서 차마 푸른빛 감도는 빛’이란 뜻인데 한복마을의 기와선, 그리고 한복의 선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전라도만의 사투리 어휘를 가장 잘 이용했고, 대하소설 ‘혼불’에 청춘을 헌정하고 죽은 소설가 최명희도 한옥촌의 딸이다. 그녀의 삶 자체도 표료옴하달 수 있다.

◆ 섞임의 미학 & 전주비빔밥

정중동의 미학이 가장 잘 반영된 전주음식이 바로 ‘전주비빔밥’이 아닐까. 전주는 빼고 그냥 비빔밥이라고 하면 안 된다. 반드시 ‘전주’를 붙여놓아야 제맛이 난다. 차려놓고 사진을 찍었을 때 가장 사진을 잘 받는 게 ‘전주비빔밥’이다. 오방색의 기운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한 점의 ‘민화(民畵)’ 같다. 스테인리스스틸 용기가 아니다. 놋그릇에 담기기 때문에 그 색채가 더 강렬할 수밖에 없다. 비단으로 만든 ‘꽃댕기’ 같달까.

대표적 비빔밥 유래는 ‘궁중음식설’이다. 조선시대 임금에게 올리던 수라의 종류에는 흰수라, 팥수라, 오곡수라, 비빔 등이 있다. 그런데 이 중 점심때 가까운 종친이 입궐했을 경우 가벼운 식사로 이용됐던 비빔에서 전주비빔밥이 나왔다는 것이다. 축하연이 끝나면 임금은 어상을 ‘퇴선(退膳)’했다. 그 음식은 1가지씩 한지로 싸 종친과 당상관 집에 실려 보냈다. 이것을 ‘사찬(賜饌)’이라고 하는데 이게 전주음식문화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수밖에 없다. 전주객사에선 시도 때도 없이 주안상의 일종인 ‘교자상’이 차려졌다. 그 솜씨를 익힌 자들이 훗날 한정식문화에 일조한다.

하지만 전주비빔밥과 관련해 학술적으로 정리된 정보는 일천하다. 군산대 주종재 교수가 겨우 ‘향토음식조리백서’를 냈을 정도다. 언론인 출신에서 이제는 대체의학박사가 된 전주대 정진영 대체건강관리학부 교수가 전주스러운 약선음식, 그리고 전주민과 동고동락한 식문화탐구에 힘쏟고 있다.

전주는 타 도시 비빔밥과 다른 몇 가지 요소가 있다. 일단 밥은 반드시 맹물이 아니라 ‘사골 육수’로 짓는다는 것. 그리고 ‘황포묵’이 빠져선 안 된다. 이 두 가지 원칙에서 벗어나면 전주비빔밥이 아니다. 황포묵은 해남 쪽에서 자란 치자를 물에 우려내 청포묵에 섞어 노란빛이 스며나온 묵이다.

전주비빔밥의 원형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가가례이니 집집마다 사용하는 식재료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표준레시피란 존재할 수도 없다. 하지만 산업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전주가 마케팅을 하기 시작한다. 관계자가 모여 전주비빔밥 표준안을 정리했다. 홍성윤 단장은 여의동에 <주>전주비빔밥을 열어 1회용 비빔밥 등 비빔밥 국제화에 앞장섰다.

더 구체적인 비빔밥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전주음식명인 1호인 김년임씨(81)가 1979년 문을 연 중앙동 ‘가족회관’을 찾아갔다. 회관 근처는 전주감영 복원 공사가 한창이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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