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군주의 조건

  • 박규완
  • |
  • 입력 2018-04-17   |  발행일 2018-04-17 제31면   |  수정 2018-04-17

‘군주의 조건’은 조선 왕조를 이끌어온 군주의 행적과 결단을 통해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일목요연하게 추린 책이다. 생생한 사례를 중심으로 왕들의 빛과 그림자를 통찰한 저자의 필치가 예리하고 묵직하다. 실록과 사료·고증을 바탕으로 조선 군주들이 펼친 리더십을 수신(修身), 의리(義理), 용현(用賢·어질고 총명한 사람을 등용함), 공효(功效·공을 들인 보람이나 효과), 건저(建儲·왕세자를 정하는 일) 등 다섯 분야 33가지 덕목으로 정리했다. 저자 김준태는 오랜 기간 조선 군주와 재상들의 정치사상 및 정책을 연구해왔으며, 세종과 정조 리더십에 대한 애착이 유난하다.

시대가 달라져도 군주의 덕목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기에 ‘군주의 조건’에 제시된 알토란 같은 경구(警句)는 현대 정치에 대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70%를 오르내리는 지지율이 웅변하듯 문재인 대통령은 비교적 잘 하고 있는 편이다. 아직 임기 초이긴 하나 가족·친척의 구설이 없고 책을 멀리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수신(修身)에 대한 평가는 나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용현 분야는 다르다. 문 대통령의 용인(用人) 철학이 용현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덕목으로 꼽히는 ‘차별 없이 인재를 등용한다’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언제부턴가 캠코더(선거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가 관행화됐고 대구·경북 출신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출신이 지나치게 득세하는 편향(偏向)도 지적받아 마땅하다. “노무현정부가 참여정부라면 문재인정부는 참여연대 정부”라는 야당의 비아냥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강력한 반대자를 가까이 둔다’는 덕목에서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문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며 반대 의견을 개진할 만한 인물이 주변에선 보이지 않는다. 중국사에서 가장 빛나는 황금기를 열며 ‘정관(貞觀)의 치(治)’란 족적을 남긴 현군 당 태종에겐 목숨을 걸고 쓴소리를 한 위징이 있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을 둘러싼 의혹과 진퇴 논란이 일파만파다. 답은 이미 ‘군주의 조건’에 나와 있다. 국민여론까지 돌아선 김 원장을 계속 감싸는 건 의리 분야의 ‘작은 의로움을 위해 큰 의로움을 버리지 않는다’ ‘어떤 명분보다 백성을 우선한다’는 덕목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규완 논설위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