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원의 ‘영남일보로 보는 인물열전' .10] 주경진

  • 김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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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2 00:00  |  수정 2018-09-21
광복 혼란 틈타 생필품 매점매석으로 폭리 취해
2018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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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불편부당하고 보도에 충실할 것은 신문이라면 고연한 사이요 특히 오사의 전매가 아닙니다. 연이나 해방 후 2년을 경과한 금일에도 통일독립이 막연하고 민생이 도탄에 빠져 바야흐로 민족의 흥망이 단석에 있는 차제에 본지를 통하여 미력하나마 절대중정으로써 일층 건국에 헌신하려 합니다. 건국은 삼천만의 목표이오, 단결은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1947년 9월23일자 부녀일보에 실린 사장의 취임사다. 신문은 본디부터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공평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사명으로 광복 후 건국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힘쓸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 같은 나라를 제대로 세우는 방법으로 단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취임사를 게재한 이는 주경진이다.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그는 편집체제와 지면의 변화를 꾀한다. 신문사에 주필제를 채택한 것이다. 주필제는 당시 신문제작 인력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신문 편집굛제작을 실제로 지휘하기 위해 다른 신문사에서도 채택한 제도였다. 부녀일보의 형편은 더 어려웠다. 창간 직후부터 자금난을 겪으면서 신문을 발행해왔다.
 

부녀일보 사장을 거친 외에도 그는 대구 신문계에 한참을 머물렀다. 대구합동신문 창간 때도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대구합동신문은 3개의 신문이 합해져 창간한 신문이다. 그는 신문의 책임대표를 맡았다. 합동신문 역시 발행을 시작한 이후 휴간과 속간이 잦았다. 자금 부족으로 인한 경영난 때문이었다. 경영난이 심화되자 그가 발행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신문체제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왜 신문업계에 발을 디뎠을까. 그는 일찍부터 문자로 세상을 보는 일, 즉 신문업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가 부녀일보 사장을 포함해 대구합동신문 사장, 대구신보의 이사회 회장을 역임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언론인으로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과거 행적은 언론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했다. 대구시의원 출마나 대구상의 의원에 입후보한 것은 그 같은 행보를 희석시키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언론계 생활을 하던 중에 옥고를 치렀다. 비판신문 경북지사장을 하면서 ‘무고명예훼손’ 등 혐의로 구속되었다. 신문 지상에 사실을 왜곡해 게재함으로써 고소를 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구속된 것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광복되자마자 모리배 단속에 적발되어 이름을 올렸다. 일본에서 대학 상과를 졸업한 때문인지 그는 당시 국제회관을 운영하며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폭리폭행 등 여러 가지 범죄사실이 백일하에 폭로되어 방금 대구지방법원에서 취조를 받고 있는 국제회관주 주경진에게 또다시 새로운 범죄사실이 드러났다. 삼중정 백화점을 불법탈취 했다. 이를 기화로 창고에 들어있는 상품 30여 가지, 시가 약 백만 원 되는 것을 남정 그의 자택으로 옮겨간 것이 발각되어 폭행 불법감금 절도 죄명으로 추가 기소하게 되었다.’
 

영남일보 1946년 1월29일자 ‘끝없는 주경진의 죄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그는 많은 물품을 사재기해 집안에 숨겨놓았다가 적발되었다. 이 같은 매점매석은 극심한 생활난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고통과는 아랑곳없는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그는 조사과정에서 대구 북성로에 있는 삼중정 백화점을 불법 탈취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게다가 일본인 지점장과 한국인 종업원을 감금하고 상품 100만원어치를 자신의 집으로 가져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공무집행방해를 제외한 절도와 불법감금 등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덕분에 그는 언론계에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언론활동을 하며 “보복은 막다른 길(死路)인 반면 너그러운 용서야말로 살아나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마도 광복 직후 구속 등의 수난을 당하며 터득한 나름의 소리일 것이다. 아니면 지난날의 허물을 묽게 하려 언론계에 몸담은 해명일 수도 있다. 어디 그에게만 해당하랴.

박창원(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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