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대통령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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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9-12

명절 때면 정성이 담긴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오래된 우리의 미덕이다. 역대 정권의 대통령들도 예외 없이 각계 주요인사와 사회 배려계층, 국가유공자 등에게 명절 선물을 보냈다. 다만 청와대 선물에는 감사·격려의 의미와 함께 대통령의 의중이나 시대상황, 국정철학이 담겨 있다. 군사정권인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은 인삼을 보냈다. 봉황문양이 새겨진 고급 나무상자에 10여 뿌리를 담아 은연중에 권위와 보스 기질을 드러냈다. 선물을 받는 대상도 주요 정관계 인사나 측근들에 한정했다. 이들과 달리 노태우 전 대통령은 떡값 명목의 현금을 전달했다.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선물 품목이 지역특산물로 바뀌고 대상도 늘어났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향사랑이 남달랐다. YS는 임기 내내 거제도 등 남해안 멸치만 고집해 ‘YS멸치’라는 별칭까지 생겼고, DJ는 고향 신안군의 특산품인 김을 애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그의 철학을 담았다. 2003년 취임 첫 명절인 추석을 맞아 당시 청와대는 호남의 복분자와 영남의 한과를 함께 담은 국민통합형 선물을 마련했다. 술을 즐겼던 노 전 대통령은 한산 소곡주, 김포 문배주, 완주 송화백일주 등 전국의 민속주도 많이 보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황태·참기름·대추·표고버섯 등 농특산물을 선물로 선호했다. 다만 기독교인인 이 전 대통령은 술을 제외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박 전 대통령 때는 대상자 선정을 두고 ‘뒤끝’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6년 박근혜정부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국회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선물을 받지 못하면서 ‘유치한 보복’이라는 말이 돌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번 추석에 제주도 오메기술, 울릉도 부지갱이나물 등으로 구성된 5종 세트 선물을 1만여명에게 보낸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같이 보낸 쪽지글에서 “우리는 지금 세상을 골고루 비춰주는 보름달처럼 함께 잘 사는 경제를 위해 땀 흘리고 있다”고 썼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올 추석도 선물은커녕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우울하게 보내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구만 해도 지난 7월말까지 발생한 체불임금이 1만7천469명, 809억원에 달한다. 폐업 위기에 몰린 영세자영업자와 폭염·폭우로 한 해 농사를 망친 농민들도 울상이다.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선물은 특산품도 술도 아닌 일자리와 경제 활성화가 아닐까.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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