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양심적 병역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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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1-09

영화 ‘남한산성’에서 병졸들 대부분은 그냥 불시에 끌려나온 양민들이다. 훈련은 고사하고 추위에 아무런 대비 없이 전장에 나섰다. 비 한 방울, 바람 한 점 가릴 의지간도 없이 한데서 혹한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는다. 홑 것과 허술한 넝마로 가린 몸은 산성의 매서운 칼 바람과 눈보라에 동상이 생기고 문드러진다. 밤을 못 넘기고 얼어 죽는 병졸이 속출한다. 조정은 다행히도 추위를 견디는 데 쓰라며 짚과 거적을 나눠 주는 은덕을 베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말이 배고프다며 짚과 거적을 도로 빼앗는다. 다시 맨몸에 와 닿는 삭풍과 얼어붙은 땅바닥은 거적 덕을 보기 전보다 더 춥고 견디기 어렵다.

‘돈도 빽도 없는 X이 군대는 XX러 왔나 ~’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를 개사한 노래가 한 때 유행했었다. 군에 가기 전에는 뜻을 모르는 채 입대해서는 고단한 신세를 자조(自嘲)하면서 불렀다. 그 표현의 저속함은 말단 부대 병(兵)들에게 비참한 생각을 갖게까지 했다. 군대는 돈도 빽도 없는 이가 갈 만한 곳이 못 되지만 실상은 그것이 없기 때문에 간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군, 특히 졸병은 천대를 받아왔다. 입대하면 암기해야 하는 것 중 ‘병의 책무’라는 것이 있다. ‘병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보람과 긍지를 ….’ 그러나 병에게는 사회에서부터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복무에 충실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김대중정부는 남녀 차별이라며 군 가산점을 박탈했다. 20여 개월간 죽을 고생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공무원 시험 등에서 군필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취지였다. 국가에 바친 인생의 황금기가 고작 그 정도의 보상 대상도 되지 않음을 말해주는 처분이었다. 군복무를 하고 가산점을 받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그 결정은 군필자들에게 적지않은 모욕이었다. 병의 책무, 국군의 사명, 복무신조 등을 외우며 그 길이 애국의 길이라고 믿어온 것에 회의를 갖게 했다.

이번에는 병역을 거부하는 것을 양심으로 규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상대적으로 군복무자들은 병역을 거부할 양심과 용기가 없는 자가 됐다. 남한산성을 지키는 병졸들에게 거적조차 아까웠듯 이 시대의 법정은 그들로부터 알량한 명예마저 거둬들였다. 이 나라는 병들을 얼마나 더 비참한 처지로 몰아갈 것인가?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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