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대세인 중도층이 마음 줄 곳이 없다면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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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1   |  발행일 2019-06-21 제23면   |  수정 2019-06-21
[조정래 칼럼] 대세인 중도층이 마음 줄 곳이 없다면

‘자유한국당으로선 공수처법보다는 선거법이 더 중요한 사인인 만큼 보수 분열의 도미노를 초래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저지하는 방향으로 선거법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한국당 곽대훈 대구시당위원장은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제를 어떻게 하든 무산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곽 위원장의 이날 정국 진단은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등 여야 4당이 합작한 패스트트랙안의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정치공학적 속셈과 정략을 제대로 꼬집은 동시에 바람 앞에 등불 격인 한국당의 위태위태함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패스트트랙을 왜, 어떻게 저지하고 나아가 그보다 더 나은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지 그게 없다는 거다. 한마디로 진퇴양난, 속수무책이다.

홍문종 의원이 탈당해 대한애국당 입당이 가시화되고, 공천 과정에서 낙천자들의 이탈에 따른 보수 진영의 이합집산도 예상된다. 이쯤이라면 총선 정국에서 다른 정당들도 한번쯤 으레 거치게 되는 통과의례이자 홍역으로 보여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당의 분열조짐은 예사롭지 않다. 예측을 불허한다. 이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비상시국이지만 한국당의 대응은 진부하거나 안일하다. 황교안 대표는 여전히 외곽을 도는 대권 행보에 치중하고 있다. 당 조직의 전열 정비와 결속 다지기는 뒷전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은 각자도생에 바쁘다.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웰빙 정당의 면모다.

한국당의 이 같은 지리멸렬은 보수 외연 확장은커녕 오히려 잠재적 지지층인 중도층의 이탈을 야기할 게 틀림없다. 이대로 가다간 총선 필패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지난 19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발표에 의하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 대북 환경 악화와 어두운 경제지표 및 전망에도 불구하고 40% 후반 콘크리트지지율을 보였다. 역으로 보면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장외투쟁과 젊은층 및 중도 끌어안기 행보가 우경화에 이은 지지층 결집에만 주효했을 뿐 중도층 흡수에는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주관적 이념 성향의 경우 중도가 40%에 달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이런 중도가 대세이고, 아직 갈 길을 못 찾고 있다.

문재인정권도 애시당초 중도층을 공략하기는 틀렸다. 청와대는 한국당 디스와 갈라치기에 진력하며 치졸함을 더해 가고, 정부는 법무부 장관의 기자 없는 기자회견으로 안하무인의 코미디를 연출하며, 집권 여당 민주당은 불면 날아갈세라 조심조심 위로는 대통령 아래로는 고정 지지층 눈치나 보며 스스로 축소지향 ‘좌향좌’ 일색이다. 적전분열 상태의 한국당과 이대로 선거를 치르면 필승이라는 계산서를 이미 뽑아놓고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한국당의 안이함과는 다르면서 유사한 또다른 무사안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와 보수 양자가 다 중도층의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은 안간힘을 써보지만 여의치 않고, 민주당은 집토끼 지키느라 산토끼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모양새다. 여기에 지향하는 바 정강과 정책 또한 한국당이나 민주당이나 초록이 동색이고 오십보 백보이니, 양당을 보수와 진보란 기준으로 가름하는 것도 이제 틀린 것 같다. 전혀 진보적이지 않은 보수 꼴통에 가까운 ‘두 진영’ 혹은 이념을 기준으로 한 우파와 좌파 정도로 이름짓는 게 맞다. 변화를 거부하는 진보는 형용모순일 뿐이다. 이러하니 안정 속에 개혁을 지향하는 세력이라 할 만한 중도, 이른바 합리적 보수와 개혁적 보수가 한국당에도 민주당에도 섞이길 거부하는 게 당연하다.

중도가 좌에도 우에도 의탁할 수 없다면 직접 나서서 ‘빅 텐트’를 칠 수밖에 없다. 정당 선택의 여지가 없었거나 선택을 강요당해 온 대구경북은 더욱 ‘제3섹터’ 조성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선거 때만 반짝 허리를 굽히고 당선된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여론을 무시하고 시민에 군림하는 지역 정치인들의 고질을 수술할 수 있지 않겠나. 아니면 주민소환제를 도입하든가. 주민소환이 소환당해야 할 청와대의 입에 올려지는 게 ‘웃픈’ 현실이지만 그 필요성은 부정하기 어려운 불편한 진실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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