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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독립극장] 법과 영화(배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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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17

오오극장 대표
사람은 살면서 억울한 일을 겪게 마련이다. 그때마다 ‘법대로 하자’는 말이 순간 떠오른다. 하지만 법대로 해봐야 법이 억울한 내 편을 들어 준다는 확신이 없다. 오히려 불이익을 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헌법재판소가 제66주년 제헌절을 기념해 설문 조사한 결과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원칙이 잘 지켜진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58.2%가 별로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는 응답도 22.8%나 나왔다. 국민 5명 중 4명은 한국 사회는 법 앞에 불평등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을 조금이라도 깨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배심원제이다. 2008년 2월12일 대한민국에 최초로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이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를 소재로 만든 영화가 바로 ‘배심원들’이다. 영화는 첫 국민참여재판에 어쩌다 배심원이 된 보통 사람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법은 억울한 한 명을 만들지 않기 위해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 추정 원칙을 지켜야 한다. 영화는 그 원칙을 지키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묻는다. 판사는 당연히 전문적인 법 해석력에서 나오겠지만, 법에 무지한 배심원은 “잘 모르겠다”는 대사에서 시작한다. 즉 배심원인 나는 법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니 섣불리 판단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억울한 사람의 이야기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한다.

사실 판사 한 명이 일주일에 수십 건의 판결을 내리며 건당 수백에서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사건 기록을 살펴야 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판사가 배심원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국민참여재판은 상대적으로 충분한 시간을 보장함으로써 억울한 피고인이 나오지 않게 하는 기반을 제공한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평범하고 다양한 시민들이 각자의 관점과 경험을 바탕으로 명백하게 유죄였던 사건에 영화는 새로운 시각을 던진다. 누구 말만 들었을 땐 무조건 유죄인 것 같다가도 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긴가민가해지면서 법정 영화는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늘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은 배심원들에게 빨리 심판을 내리라고 강요한다. 그때 자신이 결정한 첫 심판으로 피고인이 억울한 누명을 쓸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시작한 배심원은 단호히 “싫어요”라고 외친다. 현대사회에서 이 단호한 거부의 말은 대인관계에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어 거절 공포증으로 “싫어요”를 말하지 않는 현대인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영화는 무언가 부당한 것을 강요받을 때, 정의가 아닌 것을 요구받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대사가 “싫어요”라고 말한다.

영화는 ‘의심’과 ‘거절’의 언어로 억울한 사람을 배려하는 새로운 법정 모습을 통해 일반 시민들이 법에 무엇을 기대하는지 보여준다. 영화에서 법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에 “죄 지은 사람을 처벌하려고”라는 답변을 들은 판사는 “법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있다. 살다 보면 억울하게 누명을 쓸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을 함부로 처벌하지 못하게 하려고 기준을 세운 것이 법이다”라고 말한다.

이 판사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억울한 사람을 함부로 처벌하지 않는 사회,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법이 공정하게 처리해줄 거라는 확신이 드는 사회, 한국사회는 법 앞에 평등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제헌절을 맞아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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