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국문학] 저항시인 이상화와 빼앗긴 나라

  • 이은경
  • |
  • 입력 2019-09-05   |  발행일 2019-09-05 제30면   |  수정 2020-09-08
다양한 사투리를 사용해서
언어적 가치 높인 그의 작품
독립운동가 노력과 희생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게 해줘
망국의 통한을 잊어선 안돼
20190905

2001년 대구에 부임하고, 이듬해 벽두였다. 학과 선배 교수 한 분이 상화고택 보존에 나서달라고 요청해왔다. 상화고택은 백화점과 같은 현대식 마천루 건설 계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상화고택과 같은 낡은 집들(?)은 신설 소방도로 예정지에 속해 있었다. 나는 당시 상화고택보존본부 총무(?)로 상화고택 보존을 위해 대구문화예술회관, 약전골목 등을 돌아다니며 서명을 받았다. 방송에도 출연하여 상화를 알리고 고택 보존사업에 앞장섰다. 수많은 사람이 동참해주었기에 상화와 서상돈의 고택이 보존될 수 있었고, 그래서 지금의 ‘근대로’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대략 40년 전쯤의 일이다. 처음으로 달성공원을 구경했다. 그때 나는 동물사 뒤편 후미진 언덕에 자리한 ‘상화시비’를 보았다. 그것이 1948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현대문학 최초 문학비였다.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엮는 꿈, 사람이 안고 뒹구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歲月 모르는 나의 寢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게로”라고 노래했던 시인 이상화(1901~43), 바로 ‘나의 침실로’(1923)의 11연을 새긴 시비였다.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 ‘역천’(1935) 등 무수한 시와 비평을 남겼다. 그런데 그는 시집 한 권을 펴내지 못한 채 광복도 보지 못하고 1943년 영면했다.

이상화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1926년 6월 ‘개벽’지에 실렸다. 그러나 이 시는 대중에게 읽히기도 전에 잡지 전체가 압수 및 판매 금지를 당했다. 일제하에서 이 시가 금지된 것이다. 광복 후 이 시는 ‘부인’(1948. 4)과 ‘문예’(1950. 4)에 소개되었지만, 시행이나 연 구분이 사라지고, 글자가 빠지거나 바뀌는 등 오류가 발생했다. 그리고 백기만에 의해 상화의 시 16편이 ‘새벽의 빛’이라는 이름으로 ‘상화와 고월’(1951)에 실려 세상에 빛을 보았다. 이 시집에서도 위 시는 오자가 많고, 6연이 빠지는 등 문제투성이다. 다행히 압수된 ‘개벽’이 발견됨으로써 우리는 온전한 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시는 초창기부터 여러 사람들이 연구해왔지만, 몇몇 어휘가 논란이 되었다. 7연에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라는 구절이 있는데, ‘맨드라미’는 진작부터 ‘민들레’의 경상도 사투리로 해석되었지만, ‘들마꽃’이 문제였다. 이것은 마들꽃, 들마을 꽃, 메꽃 등 다양하게 해석이 되다가 최근 ‘제비꽃’으로 낙착되었다. 그것은 녹성이 ‘버들과 들마ㅅㄱ+ㅗ+ㅊ(菫花)’에서 ‘들마꽃’을 ‘菫花’(제비꽃)로 썼으며, 또한 박용철이 괴테의 ‘이별’의 ‘Veilchen’(제비꽃)을 ‘들마꽃’이라 번역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9연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라는 구절인데, 논자들은 ‘짬’을 ‘셈’의 오식이거나, ‘시간의 틈’ ‘철’ 등으로 해석했다. 이상화는 ‘시인에게’ 등 모두 5작품에 ‘짬’을 썼으며, 그것은 ‘철, 멋, 턱, 겁’ 등의 의미를 내포한 상황어다.

이상화는 이 시에서 맨드라미, 짬, 종조리(종달새), 깝치다(재촉하다) 등 다양한 사투리를 사용해서 시의 언어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그는 첫 연에서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하여 땅을 빼앗긴 비참한 현실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것네”라고 노래했다. ‘빼앗기것네’ 역시 사투리로, ‘봄’조차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조바심, 그러나 빼앗기고 싶지 않은 소망과 의지를 담고 있다. 그는 나라를 빼앗겼을지라도 우리의 정신만은 결코 빼앗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상화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제 다시는 한 치의 땅도 절대로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근대로에서든, 달성공원에서든, 교과서에서든, 참고서에서든 저항시인 이상화를 만날 때마다 우리는 망국의 통한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김주현 (경북대 국어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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