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祭祀, 레임 덕에 빠지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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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18   |  발행일 2019-09-18 제30면   |  수정 2019-09-18
수명을 다한 500년산 제사
디지털 모드로 수정돼야
유교식 제사 틀 극복하고
가족간 안부를 확인하는
‘포트럭 파티’로 바꾸자
20190918
이춘호 주말섹션부 전문기자

제사(祭祀). 그동안 지고지순(至高至純)한 한민족 최고의 문화아이콘이었다. 과연 지금도 그럴까. 형식만 남고 본질은 ‘사망’해버린 것 같다. 무조건적인 제사가 조건적인 제사로 전락한 것이다. 제사를 대수술해야 된다고 믿는 이들은 이런 경고를 한다.

‘조선에야 맞았겠지, 허나 이젠 아니다. 즉시 제사를 리모델링 못하면 가족 죽이는 시한폭탄이 될 것이다.’

그 찬연했던 제사문화가 이제 그 생명을 다한 것 같다. 가정의례준칙(1969년)에 의해 제사는 ‘간소화 모드’로 수정된다. 그건 예고편이었다. 이젠 디지털 모드로 부품을 전면 교체해야 될 시점이다.

세상이 확 달라졌다. 대가족 문중문화는 핵가족 개인문화로 대체돼 버렸다. 이젠 문중보다 개인의 성공을 위해 산다. 가족의 운명은 직장의 명운에 달려 있다. 직장의 명령이 문중보다 더 강력하다. 직장 때문에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종손이 외국에 살기도 한다. 제사를 없앤 기독교권 집안도 적잖다.

우리의 민법은 더이상 유산상속에 있어 장남을 배려하지 않는다. 딸자식도 N분의 1 권리가 있다. 그렇게 짱짱하던 장남문화도 용도폐기됐다.

그 시절에는 과거급제로 입신양명했다. 그게 종묘사직과 가문을 위한 일이었다. 문중사의 백미는 단연 ‘4대 봉제사’였다. 이를 봉행하는 사당과 선영은 각 문중의 심장이었다. 24절기, 추석과 설, 관혼상제, 최상층부엔 기제사가 있었다. 종손은 ‘제생제사(祭生祭死)’, 제사를 위해 태어났고 제사 지내다 죽었다. 조선 팔도가 제사란 집단최면에 걸렸다. 종손과 종부는 제사와 동의어. 그걸 실천해 효자(孝子) 문중으로 존경받으려 경쟁했다.

그 효자들이 일제강점기부터 슬금슬금 문중을 등지며 사회와 국가 속으로 뛰어든다. 그러는 사이 농업은 제조업으로 건너간다. 문중은 가족으로 강등된다.

부부싸움이 엄존했던 핵가족시대의 가장은 어느덧 남성에서 여성으로 교체된다. 이젠 시집살이도 사망선고를 당했다. 맞벌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자녀 교육은 학교·학원의 몫. 양가 어르신의 설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조부모와의 유대는 이미 절멸돼 버렸다. 대입과 취업이 제사보다 우선순위가 된 탓이다. 시험에 매몰된 아이한테는 사촌조차 낯설다. 제사? 아이에게는 솔직히 UFO나 마찬가지다.

이 틈바구니를 파고 든 ‘괴물’이 있다. 바로 휴대폰이다. 부모와 친척의 정보다 카톡친구가 더 절실한 세태다. 반려견도 한몫한다. 이제 그 누구도 ‘제사가 우선이라고 말 못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다들 눈치만 본다. 일부 제사지상주의자들은 안 지내면 조상이 자기 집안을 해코지할까봐 강행한다. 조상보다 기복의 욕망이 작동한 것이다. 실직, 파산, 집안갈등 등으로 고개 숙인 자들에겐 제사가 자신의 아픔을 더 증폭시키는 것 같아 원망스럽기만 하다. 제사를 걸림돌이라 여긴 자들은 서둘러 제사를 사찰과 성당에 맡겨버렸다.

보다 못한 현명한 어르신이 절충안을 내놓는다.

‘이제부터 명절에는 알아서들 쇠고…. 그래도 가족끼린데 생사확인은 필요하지 않겠니. 해서 1년에 한번 너희들 편한 날 묘소로 가족여행을 가자. 그래도 늘그막에 믿을 건 가족밖에 없지 않겠니.’

그래, 제사 대신 ‘가족’이란 말이 더 짠하게 다가선다. 지금도 제사가 웃음이 아니라 한숨이 된 적잖은 집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선뜻 제사에 방울을 달 사람도 없다.

수명을 다한 제사의 지난 세월을 위해 무슨 헌사를 던져야 할까. 그리고 지금 댁의 제사는 무사한가. ‘가족식사’ 이상의 큰 의미를 가질 수 없는 제사라면?

이참에 제사란 말을 버리고 대신 그냥 식구끼리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고 포옹해주는 ‘포트럭 패밀리 파티’라고 하면 조상님들이 진노하실까.
이춘호 주말섹션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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