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이없는 목함지뢰 다리절단 公傷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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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19   |  발행일 2019-09-19 제31면   |  수정 2020-09-08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예비역 중사에 대한 국가보훈처의 ‘공상(公傷)’판정을 두고 논란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발빠르게 수습에 나섰다. 문 대통령이 관련 조항을 탄력적으로 해석하라고 주문한 만큼, 앞으로 전상(戰傷)판결로 바로잡힐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번 파문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지적되어온 국가 정체성 위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는 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하 중사는 2015년 8월4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수색 작전 중 북한군이 수색로 통문 인근에 매설한 목함지뢰가 터지면서 양쪽 다리를 잃었다. 그런데도 하 중사의 공상 판정 당시 최종 책임자였던 정진 보훈심사위원장은 전상(戰傷) 판정을 내리지 않은 것에 대해 “지뢰는 피아 구분도 없고 설치나 이런 것들이 명확하지 않다. 지뢰는 (천안함 폭침 도발의) 어뢰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는 목함지뢰가 북한군이 설치한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 논란을 낳고 있다.

그럼 누가 목함지뢰를 매설했다는 것인가. 군 당국의 진상조사에서 북한군이 국군의 목숨을 노렸다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정 위원장이 이 같은 주장을 편 것은 적절치 않다. 지뢰매설은 우리 군에게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고 포를 쏜 것과 똑같은 도발로 보는 것이 맞다. 야당은 보훈처가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명백한 도발마저 북한과 무관한 사고인 것처럼 판단한 것은 아니냐고 비판하고 있다.

사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국가정체성 위기 문제가 유독 많이 거론되고 있다. 손혜원 의원 부친이나 김원봉 서훈 문제도 그렇다. 문 대통령은 추석날인 지난 13일 오후에 방송된 KBS 이산가족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긴 세월동안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남쪽 정부’든 ‘북쪽 정부’든 함께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9·19선언 당시 평양 인민 앞에서 스스로를 ‘남쪽 대통령’이라고 한 것의 연장선상의 언급이다. 이에 대해 야권 등에서 헌법상 대한민국의 기본 가치를 정면으로 위협하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온 것은 당연하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남쪽 대통령’이 아니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하는,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대통령’이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부터 이런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목함지뢰 공상’같은 오판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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