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대학입시를 어떻게 바꿀까

  • 이은경
  • |
  • 입력 2019-10-28   |  발행일 2019-10-28 제30면   |  수정 2020-09-08
지금 대한민국 대학입시는
세계에서 가장 졸렬한 제도
복잡한 전형은 단순화하고
내신·수능·개인재능 가운데
한가지만 잘 해도 대학가야
20191028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며칠전 국회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학입시에 정시 비율을 높이는 것을 언급했고 지난 금요일 교육관계 장관회의에서 다시 이것을 확인하였다. 이런 방향에 대해 우리 사회는 급속히 찬반 양쪽으로 갈라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두 개의 패배주의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부동산, 또 하나는 교육이다. 즉 어떤 정책수단을 써도 부동산투기를 잡을 수 없고, 대입제도를 아무리 바꾸어도 입시지옥은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 두 개의 패배주의는 우리 사회에 아주 널리 퍼져 마치 진리이자 대세가 돼버린 느낌이다. 두 개의 패배주의 위에서 부동산과 교육에서 늘상 승리의 미소를 짓는 곳이 바로 강남이다. ‘강남 불패’ 신화가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과연 이런 패배주의는 옳은가? 아니다. 다른 나라들을 보라. 모든 나라에서 부동산과 교육이 골치 아픈 문제이지만 우리나라만큼 부동산투기가 심하고, 우리나라 같은 입시지옥도 드물다. 이것은 우리도 사회구조와 정책, 제도를 잘 바꾸면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면 부동산투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대학입시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면 입시지옥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이 두 고질병에 대해 정면승부하지 않고 비겁하게 도망을 쳐왔기 때문이다. 진정성과 정확한 무기를 가지면 이런 문제라고 해결 못할 이유가 없다.

대학입시는 그동안 수없이 개편해왔지만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거나 오히려 개악 쪽으로 치달아왔다. 수십년 전 대학별 고사나 예비고사, 학력고사로 대학가던 시절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상당히 일리가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입제도는 단언컨대 세계 최악의 졸렬한 제도다. 학생들을 극단적으로 고문하고 부모들을 괴롭히면서 학생들의 지적 성장, 인성 계발에는 도움이 안 되는 제도다. 복잡다단하기 그지없어 아무도 전체 실상을 파악할 수 없다. 여기저기 뒷골목과 미로가 얽혀 있어서 이번 조국 사태 같은 반칙, 새치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첫째, 우리가 대학에 목매는 이유가 노동시장의 엄청난 학력차별에 있으므로 사회경제적 개혁을 통해 대학 안 가도 인간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경제적 개혁 없는 교육개혁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둘째, 대학입시에서 쓸데없이 복잡한 것을 다 걷어내야 한다. 악마는 복잡한 미로에 숨어 있다. 단순화가 미덕이다. 자기소개서, 상장, 봉사, 이런 번잡하고 허점투성이의 제도는 모두 없애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셋째, 내신·수능·재능 중 하나만 잘 해도 대학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행 제도는 이들 요소를 다 잘하도록 요구하고 있어서 학생들의 등골이 휜다. 내신 + 수능 + … 끝없는 and, and에서 or로 바꿔야 한다. 수학 하나만 잘 해도 수학과에 가고, 무용 하나만 잘 해도 무용과에 갈 수 있어야 한다. 수능에 자신이 있으면 수능으로 대학 가고, 내신이 좋으면 내신으로 대학 가면 된다. 넷째, 외고·자사고·영재고·과학고 등이 원래의 취지를 벗어나 위장된 형태의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므로 모두 폐지함이 옳다. 이것은 인간교육에 역행하고 부잣집을 위한 급행 선로를 깔아주는 것에 불과하다. 다섯째,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만들어 연합 입시, 그리고 어디서나 수업 듣고 졸업할 수 있게 하자. 그래서 연합국립대와 사립대들이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면 좋다. 서울대가 몇 년 전 법인화해서 국립대 대오를 이탈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므로 집나간 서울대는 조속히 귀가하는 게 옳다.

이상 다섯 가지 개혁이 정시냐, 수시냐 하는 논쟁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개혁으로 입시지옥이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크게 해소될 것이다. 문제는 그런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왜 우리만 길이 없겠는가.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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